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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기 독도아카데미를 다녀와서

생애 처음으로 우리 땅 끝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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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30일(금) 저녁, 어김없이 S동 211호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다른 기자들이 중간고사 전 기사 마감을 열심히 하고 있을 무렵, 기자는 기사 마감을 빠르게 끝낸 후 설레는 마음으로 시계만 바라보고 있었다. 한두 시간 후에 독도로 떠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독도라는 상징적 공간에 간다는 떨림,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신남 등의 감정이 어우러져 기자는 한껏 들떠있었다. 오후 11시 30분, 마감에 지친 몸을 이끌고 독도아카데미 집결 장소인 광화문에 도착했다. 광화문 광장에서 독도 아카데미 독도수호 국제 연대 집행 위원장이신 고창근 교수는 일본의 역사 왜곡이 계속되고 있고, 독도에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점을 상기시켜주셨다. 독도. 막연하게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만 인식하고 있었지, 한 번도 “왜”라는 질문을 해보지 않았던 것 같아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복잡한 마음을 안고 다섯 시간을 달려 경북 울진군 후포항에 도착했다. 넓게 펼쳐진 동해 위 붉게 떠오르는 일출을 보며 잠시나마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었다. 후포항에서 울릉도까지 배로 두 시간,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배로 한 시간 반이라고 했다. 장시간 배를 타는 경험이 처음이라 무서웠지만, 독도를 볼 수 있다는 설렘이 더 컸기에 멀미약도 먹지 않는 패기를 보이며 과감히 배에 올랐다. 기자는 배에 올라 탄 지 단 5분 만에 이 패기가 ‘객기’였음을 알 수 있었다. 동해의 파도는 생각보다 아주 매서웠고, 기자의 신체는 생각만큼 건강하지 않았다. 꼬박 두 시간을 위생봉투를 두 손에 꽉 쥔 채 시체처럼 보냈다. 울릉도에서 독도까지의 배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들었다. “파도가 너무 높아, 독도와의 접안이 불가능합니다. 이번 관광은 접안이 아닌 독도 선회 관광으로 대체합니다.” 그 순간 선내 분위기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몇 초간 이어진 정적과 이어 터져 나오는 아쉬움의 탄식이 선내에 가득 찼다. 너무 아쉬웠지만, 독도 앞바다에 도착해 독도를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것도 행운이라는 담당자의 위로에 기자는 울렁이는 속을 부여잡고 갑판으로 나갔다. 나오자마자 기자의 눈 앞에 펼쳐진 건 푸르다 못해 시린 바다와 그 위를 맴도는 말로만 듣던 수많은 괭이갈매기 떼들, 그리고 우뚝 솟아있는 우리의 독도였다. 자그마한 섬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실제로 본 독도는 꽤 커 웅장함을 한껏 뿜어냈다. 한참을 서서 독도를 바라보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울릉도로 돌아왔다. 일과를 마치고 하루를 되짚어 보니 독도와 울릉도에 대해서 우리가 참 많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 이제껏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외쳤던 많은 지난날의 모습이 정당한 근거 없이 내 것을 내놓으라 떼쓰는 어린아이 같다고 생각되어 얼굴이 뜨거워졌다. 독도 의용수비대기념관에서 큐레이터는 설명을 마치며 독도의용수비대 외에도 독도를 위해 맞섰던 많은 이들의 노고와 독도가 우리의 땅이라는 여러 근거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현재 일본은 초·중 교과 해설서에 독도를 일본의 고유영토라 명시하며 여론을 선동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적절한 교육적 활용을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2016년부터 독도 수호연대에서 서울대, 연세대 등 몇몇 대학과의 독도 주권 교육 교양 강의 MOU 체결을 추진해왔고, 개설된 학교도 있지만 낮은 학점 배정 등 그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생애 처음으로 우리나라 동쪽 끝에 닿았던 날, 기자는 우리 스스로 독도의 주권을 망설이지 않고 말할 수 있도록, 많은 사람이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지금의 위치에서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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