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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된 세상에 완결되지 못할 질문을 던지는 『표백』(2011)당신이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과연 이 소설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단순히 줄거리만 이야기한다면 가능한 일이다. 장강명 작가의 데뷔작『표백』은 주인공인 ‘나’가 대학에서 만난 세연이라는 후배의 자살 선언과 그 추종자들의 연이은 자살로 인해 ‘나’를 포함한 남겨진 주변 인물과 사회에 미친 파장을 다루고 있다. 소설이 담고 있는 것에 비하면 건조하기 짝이 없는 요약이다. 그러나 기자는 더 이상의 해석을 시도할 수 없었다. 책장을 넘길수록 제목처럼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것 같았다. 니체의 저서 『선악을 넘어서(Jenseits von Gut und Bose)』(1886)에 이런 말이 나온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자신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들여다봤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 기자에게는 소설의 핵심 인물인 세연이 이러한 괴물이었다. 자신의 목표를 위해 타인을 조종하고 자신의 목숨마저 도구화시키는 인물이 만약 현실에 존재한다면 기자는 그로부터 최대한 멀어지려고 할 것이다. 세연은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일화와 저서를 인용하며 논지를 전개해나갔다. 글을 읽을수록 당연히 반박할 수 있을 것 같던 주장이 자꾸만 외면했던 무언가와 맞닥뜨리게 했다. 이러다 결국 그녀에게 동화될 것만 같은 위기감이 들었다. 기자는 소설의 공간을 따라가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세연이 던진 물음에 대한 나름의 답을 내놓을 각오로 길을 나섰다. 어느 때보다 무거운 발걸음이었다.

그런데 이제 나는 세상이 아주 흰색이라고 생각해. 너무너무 완벽해서 내가 더 보탤 것이 없는 흰색. 어떤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이미 그보다 더 위대한 사상이 전에 나온 적이 있고, 어떤 문제점을 지적해도 그에 대한 답이 이미 있는, 그런 끝없이 흰 그림이야.

주인공 ‘나’는 세연이 종말을 앞둔 세상의 예언자처럼 묘한 매력을 가졌다고 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눈에 띄는 예쁜 외모와 사람을 다루는 능력을 지녔고 들어가기 어렵다는 대기업 입사까지 단기간에 달성할 만큼 똑똑했다. 그렇게 비범한 그녀는 현 사회를 ‘빅 화이트 월드’, 모든 것이 완결되어 발전할 수 없는 세계로 명명하였다. 아무것도 이룰 수 없고 누구도 위대해질 수 없는 완성된 세상에서 젊은이들은 성취할 수 있는 것이 한정된 상태이기에 필연적으로 좌절할 수밖에 없다. 세연은 이런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항거 방법으로 자살을 말하고 이를 충실히 수행하였다. 허리에도 닿지 않을 높이의 연못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된 것이다.

시멘트로 만든 연못은 아주 작았다. 문과대학 건물 뒤쪽의 음침한 구석에 고인 물 탓에 썩은 냄새를 풍기는 물웅덩이. 난데없는 이 연못의 용도는 아무도 몰랐다. 분수대를 만들다 만 것일까?

작가의 모교와 주변 묘사를 미루어보았을 때 소설 속 인물들이 다닌 학교의 배경은 비교적 명료해 보였다. 한창 중간고사 기간일 캠퍼스에는 학생들을 비롯한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일상에 치여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온 캠퍼스를 돌며 찾아다녔지만 연못은커녕 그 비슷한 장소마저 물이라곤 찾을 수 없는 구덩이였다. 버석하게 말라붙은 사각형 홈을 보면서 어떠한 징후도 없었던 갑작스러운 죽음을 떠올렸다. 세연의 죽음을 기점으로 재벌가의 장남인 선우, 세연의 친구이자 ‘나’의 연인이었던 윤영이 차례로 자살했다. 모두 남들이 부러워 할 성과를 내는 과정 중에 자살하여 패배자들의 도피가 아닌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항거의 의미를 퇴색시키지 않고자 했다는데, 그렇다면 이들에게 있어 삶은 그저 목표를 위한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았을까. 정말 잠깐이라도 기뻤던 순간이 없었을까. 무의미한 질문임을 알지만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언론사 취재 차량 수십 대가 마포대교 바깥 차선을 채우고 서 있었다. 구경꾼도 100명은 족히 넘어 보였고, 이들 중 일부는 카메라 기자 못지않은 망원 렌즈가 달린 DSLR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직접 와보니 마포대교는 길이가 1킬로미터가 넘었다.

외출하기 전 목적지를 묻는 말에 마포대교에 다녀오겠다는 말이 나오자 다시 생각해보라는 장난스러운 만류의 답이 돌아왔었다. 검색창에 마포대교를 입력하면 자동 완성되는 단어 중에 단연 상위권에 위치한 것은 자살이었다. 이 다리 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생을 마칠 결심을 했으면 하나의 상징이 되어버렸을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지하철에서 내린 후에도 괜스레 물을 마셨다가, 신발 끈을 맸다가 하면서 걸음을 골랐다. 오전까지만 해도 흐렸던 하늘이 점점 개더니 강렬한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네 번째 자살자는 주인공의 후배인 병권이었다. 세연의 글이 올라오는 ‘와이두유리브닷컴’ 사이트의 게시글을 통해 마포대교에서의 자살예고를 한 그는 자살 장소가 마포대교가 아닌 서강대교라는 걸 글의 마지막에 숨겨두었다.

건너편의 서강대교를 보기 위해 구조물이 얼기설기 엮인 틈으로 고개를 집어넣으려다 주변을 의식하며 카메라 렌즈만 내밀어 이를 담았다. 저 멀리 보이는 서강대교에서 병권이 목을 매는 부분을 떠올리니 다리에 소름이 돋으며 저렸다. 마포대교가 자살명소라는 낙인을 벗기고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생명의 다리로 탈바꿈한다는 기사를 읽었던 적이 있었다. 다리에 온 사람에게 말을 거는 형식의 문구와 더 높게 쌓은 보호벽이 강 너머의 시야를 가로막았다. 그에 비해 트여있는 아래를 보지 않으려 애쓰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나는 약속 시간보다 30분 일찍 양화대교에 도착했고, 사이트 운영자가 그 앞에서 기다리라고 했던 양화대교 위 카페는 물론 문을 닫은 상태였다.

‘나’는 세연이 은연중에 흘린 말대로 공무원이 되었고 윤영의 죽음을 계기로 함께 어울렸던 휘영을 다시 만나게 된다. 놀랍게도 휘영 역시 세연이 제안한 대로 기자가 되어있었다. 과거에 대한 회상, 연쇄 자살 사건, 세연이 썼던 글 등을 분석하며 지금 일어난 사태가 세연과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알고 이들 역시 먼저 죽은 그들처럼 자살을 택할까 봐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마침내 사이트 운영자를 만나게 된 ‘나’는 그마저도 모두 계획된 것임을 알고 허탈해하지만 그래도 세연이 던진 삶의 이유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분투할 결심을 한다. 하지만 결국 그가 이에 대한 답을 찾았는지 그리고 그 답이 무엇인지에 대한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그 답을 해보겠다며 호기롭게 여정을 나선 기자는 답은커녕 질문조차 이해한 것이 맞는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해 몇 번이고 글을 썼다가 지웠다.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양화대교 위에서 복잡하게 얽힌 하얀 철근이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로 뻗어있는 모양새를 바라보고 있으니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누군가는 하고 있을 그 고민은 과정 자체로 의미가 있을 것이고 기자처럼 논리적이지 못한 막연한 긍정으로 털어내는 것 역시 나름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다소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어느새 색이 변하기 시작한 하늘을 머리에 이고 그저 다리를 건넜다.

정민주 명예기자  tjzero2004@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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