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봇물은 무겁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봇물(洑-), 보(洑)에 괸 물 혹은 그곳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의미한다. 흔히 ‘봇물 터지다’라는 관용구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보에 모아 두었던 물이 터져버려 주변 농가를 휩쓸어 망가뜨린다는 의미로 주로 사용되는 어구이다. 같은 맥락에서, 기자는 봇물을 열심히 쌓아두는 경향이 있다. 웬만한 무게는 견뎌내며, 흐르는 물도 어기적어기적 모아 담아 터지지 않도록 수습하고 안간힘을 쓴다. 그랬던 기자에게 신문사는 365일 폭우가 내리치는 강둑이었다. 이 글을 쓰며 지난해 5월 발간된 기자의 첫 기사를 회상해보았다. 여기저기 망한 밭들과 곳곳의 ‘물 자국’들을 알아채지 못한 채 순진하게 이 S동에 발을 들였을 기자의 모습이 보일 듯하다가도 이제는 잘 떠오르지조차 않는다. 기자가 신문사에 몸담은 고작 1년 동안, 계절은 4번이 아닌 24번쯤은 지나간 것만 같다. 벌써 희미해져버린 그동안의 많은 일들을 어떤 순서로 떠올려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몇 가지의 지난 ‘봇물 사 건’들은 지속적으로 기자의 머릿속에 맴돌고 있어, 그 순서에 따라 회상을 해보고자 한다. 

  기자는 여유를 즐기지 못한다. 무엇이라도 손에 쥔 채로, 어느 곳이라도 가고 있어야 직성이 풀린다. 이러한 무모한 자가진단 덕분에 신문사에 겁 없이 발을 내민 기자의 보(洑)에 밀려온 것은 기나긴 장마였다. 이제껏 잘 버텨오던 기자의 보(洑)는 어느 순간 순식간에 터져버려 기자의 온 생활을 잡아먹어 버렸다. ‘이런 걸 두고 바쁘다고 하는구나’. 괜히 순진한 허세를 부리다가 한 대를 얻어맞은 채 ‘1차 봇물’ 이후 기자의 지난해 여름은 지나가 버렸다. 그렇게 이미 망해버린 기자의 ‘생활 논밭’을 바쁘게 수습하던 찰나, S동에는 구조대가 슬그머니 들어왔다. 동기 8명. 난생처음 많은 동기들을 맞닥뜨린 기자는, 마치 구조 봉사자를 처음 본 난민처럼 이들이 어떤 일을 하러 이곳에 왔는지도 자각하지 못한 채 그저 묵묵히 논밭만을 가꾸었다. 그 와중에 시간은 어영부영 지나가 지난해 겨울, 또다시 ‘2차 봇물 사건’이 발생했다. 2017년 2학기 10번째 마감을 모두 마친 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기진맥진해진 기자는, 아무 감흥 없이 신문사의 회식자리에 참석했다. 이때 갑자기 쏟아진 ‘고생했다’라는 선배들의 말들은 어느새 메말라 쩍쩍 갈라져 있던 보(洑)에 급격한 장맛비를 내렸다. 전혀 모르고 있었던 비 소식에 당황스럽던 기자에게 그 빗방울은 일종의 각성을 주었다. 정신없이 바쁘고 지쳐서, 지쳤다는 감정조차도 깨닫지 못하고 있던 순간, ‘잘했다’라는 뜬금없는 속보는 기자의 보(洑)를 순식간에 터뜨려 강가를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지금, 정신을 차려보면 넘쳐흐르고 있는 빗물 아래에는 구조대가 논밭을 정돈해주고 있다. 한참 동안 그들의 존재에 적응하지 못하던 기자는 이제야 이들의 봉사를 깨닫고 함께 쟁기질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결국 좋은 물인지 나쁜 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잔뜩 모여있는 이 물들을 낡은 보(洑)로 지탱하면서 기자는 또다시 망가진 논밭을 가꿔가고 있다. 이제는 신문사의 봇물이 터질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터지지 않으면 뱃속 체기가 쌓여가는 듯하다. 아마도 기자는 내심 봇물이 터지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체기를 내려보낼 검은 피처럼, 두렵고 두렵지만 기자는 그 시원함을 확실히 안다. 이번 주도 그 봇물의 날 금요일 마감을 향해 내 위장 속 체기를 쌓아가 고 있다.

 

SNS 기사보내기

저작권자 © 홍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기사

하단영역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