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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택(국어국문·예술05) 동문전시라는 이름의 작품을 제작하는 독립 큐레이터

전시는 작가의 작품들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일까? 우리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는 하얀 벽, 하얀 바닥의 화이트 큐브만을 품격 있는 전시장이라고 여긴다면 큰 오산이다. 온 벽과 바닥이 ‘핑크색’으로 도배된 전시장, 복잡한 도심 속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휴식을 취할 친숙하고 작은 다락방 등, ‘전시 공간’의 정의에는 어떤 한계도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민 미술관 및 갤러리 등 기관 내에서 시작된 장진택 동문의 큐레이팅 이야기는 아트 스페이스 ‘인터랙션 서울(Interaction Seoul)’ 등 어느덧 틀에 박힌 기관 밖의 새로운 전시 공간을 창출해내고 있다. 지금부터 전시의 개념과 기존 큐레이팅의 정체성에 의문점을 던지며 전시장 내부의 새로운 연결고리를 이끌어내고 있는 그의 소통 관계망 ‘인터랙트(Interact)’ 내부로 함께 들어가 보자.

▲장진택(국어국문·예술05) 동문

Q. 동문이 큐레이터의 직업을 가지게 된 계기와 본교 학부 졸업 이후 어떠한 과정을 통해 현재의 활동을 하게 되었는지 듣고 싶다.

A. 사실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할 당시에는 미술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저 본교 미술대학의 명성이 강했기 때문에, 호기심으로 미술대학의 수업을 수강해 보곤 했다. 그 과정에서 미술수업에 흥미를 느꼈고 또 미술이론에 대한 관심을 키울 수 있었다. 이를 기점으로 외부 갤러리에서 6개월간 일을 배우고 경험을 쌓았으며 이어 예술학과를 복수전공하였다. 나는 학내에서보다 외부 활동을 통해 주로 일을 경험하고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미술대학의 타 과 동문들이 작가로 진출하는 비율이 높지 않듯이, 예술학과 역시 졸업 이후 실질적으로 큐레이터 활동을 이어나가는 동문들의 비율은 다소 낮은 편이었다. 또한 나는 미술대학 내 실기 및 이론과 학계가, 현장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느꼈다. 때문에, 개인적으로 외부 현장에서 일을 구하고 배우기를 즐겼던 것 같다. 다만 외부 미술계에서 활동하는 인원들 중 본교 동문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워낙 높았기 때문에 결국 본교 동문들에게 많은 지도를 받은 셈이다. 또 본교 미술대학은 인원수가 매우 많고 그들끼리의 내부적 친밀감이 강하기 때문에, 졸업 후 현장에서도 동문들과 함께 일하며 많은 교류를 나누게 되는 것 같다.

Q. 동문은 미술관 등 기관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기관 큐레이터가 아닌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함에 있어 차별점과 장점 혹은 고충이 있다면 무엇인가?

A. 우선 기관 큐레이터들은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는 데에 다소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기관 내에서는 기관의 요구가 우선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그들만의 표현을 주장하기에는 비교적 현실적인 제약들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주어진 전시 주제 내에서 본인 색깔을 잘 드러내는 기관 큐레이터들은 분명 존재한다. 반면 독립 큐레이터의 경우 전시 기획의 시작 단계에서부터 자신이 스스로 원하는 주제를 선정하고, 직접 작가들을 선택하여 전시를 진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제약 없이 더욱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며 활동할 수 있다. 물론 독립 큐레이터만의 고충들도 있다. 바로 큐레이터가 여러 명의 ‘팀’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일들을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다. 전시의 규모는 전시에 투입된 금액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그 규모가 작다고 해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적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매번 모든 부분들을 마치 1인 기관처럼 혼자 담당해야 한다는 점이 다소 고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아직 독립 큐레이터라는 개념 자체가 확립되지 않아 겪게 되는 어려움도 있다. 실제로 ‘독립 큐레이터’란 한국 내에 전파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용어로, 아직 그 개념이 정착되지 않았다. 큐레이터 본인들조차도 독립 큐레이팅의 정의 및 역할 수행에 혼동을 겪는 경우들이 간혹 발생하기도 한다.

▲ 예술 공간 ‘인터랙션 서울(Interaction Seoul)’, <Make a Pinky Wish!> 전시 공간

Q. 미술계 내에서 큐레이터의 입지와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큐레이터와 작가 간의 교류 및 관계가 궁금하다.

A. 우선 큐레이터에 대한 이론적인 해석으로 ‘매개자’라는 정의가 있다. 여기서 ‘매개’가 핵심적으로 가리키는 부분은 ‘관람객과 작품, 작가 사이의 연결’이다. 이와 같이 이론적인 개념에서도 전시 기획 구성원들 간의 소통과 연결은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결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전시 제작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작가가 큐레이터들을 전시에 초청해 이들을 활용하는 일반적인 방식에서, 작가와 큐레이터 간의 상호 이해는 비일비재하게 무너진다. 작가와 큐레이터 간의 평등한 교류를 추구하기보다, 작가를 좀 더 우대해주고 작가들이 원하는 시스템이나 방향으로 진행해 나가는 것이 기존에 지속되어온 방식이었다. 이러한 경향에는 과거 작가들의 높은 기관 진입장벽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당시 ‘청년작가’로 불리는 작가들의 연령대는 40대 이상이었고, 전시에서 접하게 되는 작가들은 경력이 막대하고 연령대가 높은 ‘선생님’ 작가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권위 차이 때문에 당시 큐레이터들은 항상 저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작가들의 연령대는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20대 작가들 또한 기관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권위적인 장벽이나 경향들이 많이 쇄신되었다. 또한 큐레이터들도 충분히 작가들과 평등하거나 오히려 더 높은 위치에 서게 된다. 실제로 과거에는 큐레이터가 작가와 함께 의견 개진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이제는 오히려 ‘치프(Chief) 큐레이터’와 20대의 젊은 작가들이 협업하게 되는 경우 작가들이 큐레이터를 어려워하는 상황들도 발생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권위들과는 무관하게, 서로가 솔직한 의견을 전달하고 존중한다면 전시 기획의 모든 관계자들 간 교류가 바람직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덧붙여, 큐레이터들은 개인의 큰 흐름이나 성향을 가지고 활동하는 작가들과 달리 구체적인 분야를 가지지 않는다. 설치작가 혹은 조각가 등의 작가 개념은 존재하지만, ‘설치 전시 큐레이터’ 혹은 ‘조각 전문 큐레이터’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큐레이터가 작가의 작품을 연구하고 분석하는 것이 당연시되듯이, 작가들도 함께 작업을 진행하는 큐레이터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원활하고 유연한 소통이 가능해지리라 생각한다.

Q. 과거부터 본래 큐레이터는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자료 및 작품들을 연구하는 관리자로 일컬어졌으나, 현대에는 활발해진 기획전시의 흐름들에 따라 큐레이터의 ‘전시 기획력’이 강조되고 있다. 이를 포함하여 과거에 비해 확장된 현재 큐레이터들의 역할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A. 현재 한국의 경우 일명 ‘스타 큐레이터’와 같이 자신의 정체성을 많이 드러내는 큐레이팅의 방식이 굉장히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다. 미술계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들어서면서 작품들의 매체와 그에 대한 해석 방식들이 다양해졌다. 이에 작가들에게는 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는 문제가 중요하게 여겨졌고, 또 작품이 작가의 손에서 완성된 후 그들의 손을 떠나 전시 내부에서 맥락화되는 과정이 핵심적인 역할이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작품의 ‘컨트롤 및 맥락화’를 담당하는 큐레이터들의 역할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큐레이터들은 이를 통해 자신만의 취향을 드러낼 수 있는 여지들이 많아졌으며, 점차 작가들과도 활발히 교류하게 되었다. 실제로 요즘 작가들은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큐레이터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더 나아가 큐레이터 개인의 취향과 의견들을 드러내길 원하기도 한다. 이제는 작가들이 자기 작품의 맥락을 한 가지로 고정시키지 않으며, 전시의 맥락에 따라 작품이 재해석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 역시 큐레이팅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것을 선호해왔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또한, ‘독립 큐레이터’의 개념이 새롭게 생겨난 것도 이러한 변화의 한 갈래라고 할 수 있다. 기존 큐레이터들은 무조건 기관 혹은 갤러리에 들어가 소위 ‘새끼 큐레이터’로서 일을 배우고 경력을 쌓아야 했으며, 이후 ‘치프 큐레이터’로 거듭나는 일반적인 경로를 따라왔다. 독립 큐레이터는 기관에서 벗어나 큐레이터의 ‘프리랜서’적인 성향을 좀 더 확대시킨 것이 다른 점이다.

▲ 예술 공간 ‘인터랙션 서울(Interaction Seoul)’, <보라, 내가 너희를> 전시 공간

Q. 동문은 지난 2016년 12월부터 2017년 2월까지 장종완 작가, 정희민 작가와 함께 대안예술공간 ‘인터랙션(Interaction)’에서 전시 <보라, 내가 너희를>을 주최한 바 있다. 동문은 전시에서 ‘저기 저 언덕 너머에는’이라는 제목의 자전적 소설을 선보였다. 당시 작가들과의 교류 상황 및 그로 인한 결과물에 대해 동문의 의견이 듣고 싶다.

A. 이 전시에서는 큐레이터와 작가의 역할에 대해 새로운 배분을 시도하려고 했다. 이때 비교적 논란이 되었던 부분은 큐레이터인 나의 소설 작업과 작가들의 작업이 함께 전시장에 배치되었다는 점이었다. 이는 거의 시도된 적 없는 다소 새로운 포맷의 전시 형태였다. 이러한 방식을 처음 사용했던 전시는 2016년도 3월 서정빈 작가와 진행한 <육종학적 다층문화 지형도>라는 전시였다. 이때 ‘서정빈×장진택’이라는 이름으로 소규모의 공간에서 전시를 진행하게 되었다. 당시 많은 인원을 초청하지 않았음에도 소규모의 전시 오프닝에 대규모의 미술계 작가, 큐레이터, 평론가들이 200명 가까이 방문해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그 인파들의 논란 속에서 가장 많이 들려왔던 의견은 ‘왜 큐레이터의 이름이 부각되어야 하는가’라는 것이었다. 큐레이터의 이름이 전시에서 작가와 동등하게 등장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목소리였다. 특히나 작가들은 큐레이터의 작업이 작가의 작품과 함께 전시에 위치하는 것에 대한 반감을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내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큐레이터의 작품 활동이 아닌, 새로운 전시방식에 대한 시도였다. 전시 자체를 하나의 작품처럼 여기고, 작가와 기획자 간의 관계를 새롭게 해석해보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

Q. 큐레이터를 꿈꾸는 본교 학우들 혹은 미술계로 진출하려는 젊은 청춘들에게 한 마디 조언을 부탁한다.

A.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활동을 이끌어나가기 위해 필요한 태도는 이해심이라고 생각한다. 전시를 기획하다 보면 계속되는 선택의 순간을 맞닥뜨리게 된다. 이때 나의 선택에 대해 모두의 동의가 필요하며, 또 그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전시를 통해 결과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이러한 선택 과정 속에서, 좁은 미술계 사람들 간의 관계를 잘 아우를 수 있는 큐레이터가 좋을 자질을 가진 큐레이터라고 생각한다. 물론 참신한 전시 기획력, 이론적인 지식들이 요구되겠지만, 무엇보다도 후배들에게 있어 정해진 길은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길은 자신이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이며, 또 찾아 나선다고 해도 그것들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을 함으로써 오는 즐거움을 최대한 많이 찾았으면 좋겠다.

홍준영 기자  (mgs05038@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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