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사랑하는 이의 뒷모습만을 바라보던 남자, 백석

못다 이룬 사랑의 애절함을 담은 「통영(統營) 1,2」 (193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고등학교 국어 수업시간이었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생이던 기자는 수험생활이라는 감옥에 갇혀 문학 작품을 시험의 일부로만 취급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백석(1912 ~ 1996) 시인의 작품을 공부하던 도중 「통영(統營) 1,2」이라는 시를만나게 되었다. 「통영(統營) 1」을 읽을 땐 그저 경상남도의 통영이라는 도시를 아름답게 묘사한 작품이라고 생각했지만, 2편을 읽으면서 백석 시인에게 통영이란 곳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닌 어떤 사연이 담긴 장소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후 관련 서적을찾아보다 이 작품이 백석의 이루지 못한 실제 사랑 이야기를 담은 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는 메말라 있던 기자의 감성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켰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백석 시인은 평안북도 정주 태생으로통영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는 동경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조선일보에서 여성지편집 담당으로 근무하던 중 1936년 3월 친구 허준의 결혼식에 가게 된다. 그리고 그 곳에서 통영 출신 동료 신현중의 소개로 통영여인 박경련을 만났다. 당시 이화여고 학생이던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 백석은 통영으로 내려가 그녀의 부모님을 만나고 청혼하게 된다. 이에 박경련의 외삼촌인 서상호는지인이었던 신현중에게 백석의 신상을 물었다. 그러나 박경련에게 마음이 있던 신현중은 가난한 백석의 집안에 대해 험담을 하며자신이 그녀와 더 어울린다며 그를 구슬리게 된다. 결국, 박경련은 1937년 신현중과 결혼을 하게 되고, 백석은 절친한 동료에게 사랑하는 여인을 빼앗기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게 된다. 드라마에서나 다룰 법한 절절한 사랑 이야기는 기자의 가슴 속에 계속해서 맴돌았다. 그리고 지난 2일(일), 기자는 백석 시인이 실제로 사랑을 하고 또 실연의 상처에 아파했던 아름다운 도시 통영에서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다.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선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5시간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경상남도 통영시. 기자는 터미널에 내리자마자 또 택시를 타고 통영시 명정동으로 향했다. 명정동의 옛 명칭은 명정골로 「통영(統營) 2」에 등장하는 마을 이름이다. 목적지에 내리니 눈앞에 백석 시비가 있었다. 시비에는 「통영(統營) 2」의 전문이 새겨져 있었고, 한편에는 백석 시인의 사진과 그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있었다. 현재 명정동은 ‘서피랑’이라는 이름으로 문학·예술 관련 관광특구로 지정되었다. 그래서인지 주민분들도 백석 시인의 자취에 대한 물음에 막힘없이 대답해 주셨던 듯하다. 시비 앞에서전문을 읽고 돌아서 이리저리 걷다 보니 꼭시에 나왔던 것처럼 바람에도 짭짤한 소금맛이 나는 듯 어디선가 바닷냄새가 풍겨와 다음 목적지를 향해 걷는 발걸음이 조금 더 가벼워졌다.

 

난(蘭)이라는 이는 명정골에 산다는데(중략)

명정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백석 시비에서 횡단보도 두 개를 건너자 바로 정당샘이 보였다. 정당샘은 명정(明井)샘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사체나 상여가 물위를 지나면 곧바로 물이 흐려지는 이변(異變)에 의한 별칭이다. 얼마 전까지 마을 사람들의 식수원이었다는 두 개의 우물 뒤로는 기다란 빨래터가 있었다. 일요일 오후, 냇가를 뛰어노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당시 삼삼오오 모여 빨래를 했을 마을 처녀들의 모습이 그려져 웃음이 났다. 그러나 작품 속정당샘이 등장하는 대목에서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동백꽃 피는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라는 두행은 사랑하는 여인을 동백꽃이 만개할 4월에 다른 남자에게 보낸 백석 시인의 아픈 상처와 배신감이 고스란히 느껴져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햇볕도 따뜻하고맑은 우물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이 좋아한참을 가만히 앉아 여유를 부리다 훌쩍 지나버린 시간에 얼른 다음 목적지인 충렬사로 걸음을 옮겼다.옛날엔 통제사(統制使)가 있었다는(중략)옛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돌층계에 주저앉어서 나는 이 저녁울 듯 울 듯 한산도(閑山島) 바다에뱃사공이 되어가며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열나흘 달을 업고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통제사(統制使)는 이순신 장군의 옛 직급이다. 삼도수군통제사로 통영에 머물던 이순신 장군의 위패가 모셔진 곳이 지금의 충렬사이다. 백석 시인은 정당샘 건너편 충렬사홍살문 계단에 앉아 박경련을 향한 연애편지나 시를 썼다고 한다. 서울에서 통영까지내려와 그녀만을 보다 때가 되면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것이 그의 여행의 전부였다고하니 첫사랑인 그녀에게 얼마나 헌신적이었는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기자는 사람이지나다니지 않는 틈을 타 그 계단에 앉아보았다. 그곳에 앉아 정당샘을 바라보니 늘어진 나뭇가지에 빨래터가 살짝 가려져 당시사랑에 빠진 백석 시인을 애달프게 했을 것같았다. 충렬사로 들어가 사당을 구경했다.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그 날 보수공사를 하는 중이라 외삼문(外三門)의 모습을 보지 못해 아쉬웠다.

낡은 항구(港口)의 처녀들에겐

옛날이 가지 않은 천희(千姬)라는 이름이 많다

미역오리 같이 말라서 굴 껍질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이 천희(千姬)의 하나를

나는 어느 오랜 객주(客主)집의

생선 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만났다.

작품에 나온 천희(千姬)라는 단어는 시집을가지 않은 처녀에 대한 통영·거제 지역에서의 방언이다. 「통영(統營) 1」에서 천희(千姬)는 박경련을 가리킨다. 천희(千姬)라는 말에는 ‘남자를 죽게 만드는 여자’라는 뜻도 있다고 하니 백석 시인이 박경련에 대한 원망을이렇게 표현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해 보았다. 이곳 명정동에는 박경련이 실제로 살았던 생가인 명정골 396호 기와집이 남아있다. 지금은 다른 사람이 거주하고 있는 사유지라고 하나 외관이라도 보고 싶은 마음에충렬사를 나오며 매표소에 계신 아주머니께 박경련 생가가 어디 있는지 아시냐고 여쭈었다. 아주머니께서 알려 주신대로 길을찾아갔지만, 그곳엔 박경련의 생가인 명정골 396호 기와집이 아닌 다른 기와집이 있었다. 근처 기와집이 있는 골목 구석구석을찾아봤지만 396호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녀의 생가를 직접 보진 못했지만,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명정골 어딘가에 있을 박경련을 찾아다녔을 백석 시인의 애타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화장사 영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처녀들은 모두 어장주(漁場主)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 한다는 곳.

이왕 서피랑 공원까지 올라온 김에 높은 곳에 올라서 바다나 보자는 마음으로 서포루에 올라섰다. 넓게 펼쳐져 있는 바다와 잘어울리는 해안가 건물들의 모습에 통영이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백석 시인은 박경련을 사랑하면서 통영도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박경련이 결혼한 이후에도 두 차례 더 통영과 주변 남도(南島)를 방문했다고 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향토성이 짙은 백석 시인의 대표적인 작품이 아닌 사랑의 절절함이 가득 담긴 작품으로 기자는 봄날의 아름다운 통영을 마주했다.

SNS 기사보내기

저작권자 © 홍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기사

하단영역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