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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동양의 그림 읽기의 의미

수업시간에 동양의 옛 그림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동양화는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라고 운을 떼면 하면 학생들은 금세 지루한 표정을 짓고 만다. 일단 현란한 색과 형태, 움직임까지 갖춘 이미지가 범람하는 요즘 시대에 흑백이 주조를 이루는 모노톤의 동양화는 보는 이에게 즉각적인 기호를 일으킬 만큼 충분히 자극적이지 않다. 게다가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무엇을 읽어내야 한다는 것, 또 그러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빠르게 지식을 습득해야하는 현대인의 생리와 맞지도 않을 터다. 그래서 읽어낼 도상이 가득한 종교미술이 아닌 동양화로 학생들의 흥미를 이끌어 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에 나는 동양화가 왜 이리 어렵기만한 감상의 방식을 요하는지 그 이유를 역사적으로 설명하고 그 필요성을 논함으로써 조금이나마 여러분의 관심으로 환기해보고자 한다.  

  이해하고자 한다면 읽어내야 하는, 동양화의 이 특별한 성질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 비밀은 그림의 탄생에 있다. 중국 당나라의 장언원(張彥遠, 815-879)은 중국 최초의 회화사서라 불리는 『역대명화기』를 저술하였다. 그 중 서화의 원류를 서술하는 부분에서 그는 도화(圖畫)의 시작이 하도낙서(河圖洛書)임을 밝히고 있다. 하도낙서란 상고시대 제왕인 복희씨가 황하 가운데 나타난 용마의 등에서 얻은 도형과 헌원씨가 낙수의 거북이 등에서 얻은 도형을 일컫는다. 팔괘와 태극의 원형이 되는 이 도형들이 인간 세계에 알려지자 조화의 신인 자연은 자신의 비밀을 감출 수 없게 되었고 신령도 그 형체를 감출 수 없어 귀신들이 밤새 울었다고 했다. 즉, 그림은 인간을 이롭게 하고자 신이 내린 메시지이며 우주와 자연의 법칙을 드러내는 매체였던 것이다. 게다가 그림은 자연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지 인간이 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동양에서 그림은 태초부터 예술가의 창작의 영역이 아닌 인간의 세계 인식을 위한 도구임을 분명히 한다. 우주의 법칙을 담고 있는 이 신물(神物)은 인간 세계에서는 국가의 비밀을 담은 지도로 발전하였고 그 행방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결정되기도 하였으니, 하나라와 상나라의 멸망에는 지도를 지니고 새 왕조에 투항한 중신들이 연루되어 있는 것이다. 읽어 내어야 할 그림 속 비밀은 이후 동양화의 요체라 불리는 “전신(정신을 전함)”과 “사의(뜻을 그려냄)”의 개념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서양의 그림은 어떠한가? 서양에서의 그림 탄생의 동기는 로마의 정치가이며 학자였던 플리니우스(Plinius, 24?-79)의 『박물지(Naturalis Historia)』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 모델링을 “발명한” 최초의 예술가의 이야기가 전한다. 고대 그리스 코린트의 시키온에 살던 도공 부타데스에게 딸이 하나 있었는데, 애인이 먼 길을 떠나자 딸은 아쉬운 마음에 벽에 드리워진 애인의 그림자의 윤곽을 그려 남겼고 부타데스는 여기에 진흙을 발라 부조를 제작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그림의 시작이 살아있는 존재에 내재된 “소멸”이라는 자연의 법칙을 거슬러 영원성을 획득하려는 인간의 욕망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인다. 한편, 걸출한 화가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의 그림 대결 이야기로부터는 서양에서 자연과 그림의 관계가 동양의 그것과는 얼마나 다른지를 알 수 있다. 제욱시스의 포도 그림은 새들을 속일 정도로 사실적이었으며, 파라시오스는 그 포도 그림 위에 다시 휘장을 실감나게 그려 제욱시스의 눈을 속였다. 제욱시스의 패배라는 표면적 결론을 넘어 이 일화는 두 화가의 역량이 모두 새와 인간의 시지각력, 즉 자연을 능가하였음을 강조하며 예술의 승리를 증언한다.         

  동양에서의 그림은 인간이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인간 존재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었으며, 서양에서의 그림은 자연을 극복하기 위한 인간 도전의 결과였다. 이처럼 시작 지점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동양과 서양의 그림은 사뭇 다른 길을 걸어왔다. 그림은 시각적으로 인지되는 세계와 주체인 인간의 관계를 반영한다. 동양화는 오랜 역사를 거쳐 형성된 동양인들의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리는 아니다. 아무리 동, 서양을 너와 나로 구분하는 일이 촌스럽게 느껴지는 세계화 시대라지만, 나 자신을 아는 일은 상대를 이해하기에 앞서야 함은 굳이 부연할 필요가 없겠다. 동양화와 동양화 읽는 법, 동양화를 읽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는 일은 넓게 보면 동양인으로서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다듬어보는 일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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