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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호(시각디자인10) 동문사람이 아닌 것을 사람으로 보는 능력

제가 어렸을 적 부모님께서는 저를 데리고 자주 여행을 다니곤 하셨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이 나이가 드시고 저도 졸업 후 점점 바빠지면서 어느새 가족 여행은 먼 과거의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던 중 오랜만에 부모님과 강원도 시골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는 차마 못 하셨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산책을 하던 와중에 근처 밭에서 문득, 햇볕을 받아 퍼렇게 돼버린, 혼자 버려져 있는 감자 한 알을 발견했습니다. 그 감자가 너무 외로워 보였던 탓일까요, 결국 그것을 주워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식물을 키우는 것이라고는 초등학생 시절 강낭콩을 관찰하는 것이 전부였던 제 인생에 난데없이 감자 한 알이 불쑥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가 나간 컵에 물을 담아서 그 위에 감자를 얹어둔 것일 뿐이었지만 제 마음은 마치 초등학생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두근거렸습니다. 그날부터 아침에 집을 나서며 물을 갈아 주고 밤늦게 집에 오자마자 감자의 상태를 살피는 것이 일과가 되었습니다. 그러기를 1주일, 싹이 올라온 걸 봤을 때는 정말 뛸 듯이 기뻤습 니다. 이 숨 막히는 빌딩 숲 사이 생기라곤 없는 잿빛 방에서 초록빛 싹을 틔워준 녀석이 정말 기특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별것도 아닌 감자에 정을 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싹을 틔운 걸 보고 너무 안심했던 것일까요, 어느 날 감자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계속된 밤샘으로 늦잠을 자면서 물을 갈아주지 못하고 3일 정도 허겁지겁 집을 나섰습니다. 하루 이틀 정도는 내버려 둬도 괜찮겠지 했던 것이지요. 아차 싶어 물을 갈아주며 검색을 해 보니, 이미 감자 내부가 썩기 시작했을 거라는 글을 봤습니다. 다 읽기도 전에 애써 창을 닫아 버렸습니다. 도시의 숨이 턱턱 막히는 아파트 숲에서 싹을 틔울 정도로 굳센 아이가 3일 만에 망가졌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매일 물을 갈아 줘도 점점 더 냄새는 심해져만 갔습니다. 햇빛을 못 봐서 그런가 싶어 베란다에 내놓아 보기도 했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습니다. 냄새가 악취로 변하고 표면에 흰색 곰팡이 같은게 피기 시작한 것을 보고 나서야 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이 녀석을 죽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렇게 도심 사이의 초록빛 새싹은 사라지고 상해버린 쓰레기가 하나 남았습니다. 하지만 그새 정이 들어버린 저는 차마 음식물 쓰레기통 안에 녀석을 두고 올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아파트 화단에 그 감자를 버리듯이 던져놓고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지막만큼은 제대로 보내주고 싶었기에 원래는 흙 속에 묻어 주고 싶었습니다. 혹은 내 잘못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흙에 심으면 어떻게든 살아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무리한 바람이 무의식적으로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 귀가 시간은 항상 밤 11시가 넘었고 오밤중에 누군가가 화단을 파고 있는 모습은 누가 봐도 수상한 것이겠지요. 앞으로 저는 집을 나설 때마다 잡초가 무성한 화단에서 그 감자가 외롭게 점점 더 썩어가고, 시들어가는 모습을 보게 되겠지요. 저는 그것이 매우 괴롭습니다. 누군가에게 키우던 감자가 죽어서 너무나도 침울하다고 말하면 바보나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혹자는 사람의 제일 뛰어난 능력이 다름 아닌 '사람이 아닌 것을 사람으로 보는 능력'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감자 하나 때문에 울적해져서는 새벽까지 잠을 못 이루고 장문의 글을 적는 저 자신이 뭔가 한심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김은성 기자  (ppicabong@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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