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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홍대신문은 무엇을 위해가 아닌 무엇을 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2년 2개월. 26개월간 쉴 틈 없이 달려왔다. 6개월 후면 본인은 신문사를 떠난다.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달려왔을까’. 이 질문에 과연 뭐라 답할 수 있을까. 지난 5월 초, 홍대신문 페이스북에 한 요청이 왔다. 성균관대학교의 교지편집위원회인 성균지였다. 요청 내용은 ‘본인에게 대학언론은 ○ ○○이다’에 답변해달라는 것이었다. 질문을 받고 난 후, 언론 관련 서적에서 보던 언론의 역할과 존재 가치를 떠올렸다. 흔히 언론의 역할과 존재 가치는 독자들의 알 권리를 충족하고, 사건·사고의 사실을 전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실에서 이와 같은 추상적 언론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을까. 적어도 대학신문에서는 그 실현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추구했던 목표와는 너무도 멀어진 것 같아 때로는 대학 기자로서의 존재 가치를 잊어버리곤 했다. 언젠가 한 번, 마감 당일 동료 기자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본 적이 있다. 인쇄된 종이를 뽑느라 바삐 움직이는 몸, A4 용지에 빼곡히 적힌 글을 교정하는 두 손, 거듭되는 취재에 마감 당일 기사를 쓰느라 피곤한 눈이 보였다. 마감이 끝나도 할 일은 끝나지 않는다. 다음 호에 발간할 기사를 생각해야 한다. 이런 신문사 생활에 이골이 나 나 간 사람도 있다. 또 신문사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답답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수습 기자를 비롯한 후배 기자들을 볼 때 마음이 편치 않다. 무언가 해보겠다는 열정 넘치던 눈은 점차 피로와 삭막함에 생기를 잃어 갔다. 

  결국 ‘무엇을 위해 달려왔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내릴 수 없었다. 나름의 목표와 책임감을 갖고 달려왔으나 그 ‘무엇’이 무엇인지 알기란 어려웠다. 질문을 바꿔보기로 했다. 무엇을 위해가 아닌 무엇을 할 수 있느냐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각은 변 했고, 하고 싶은 일은 달라졌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따라서 홍대신문이 어디에 와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과연 홍대신문은 읽어야 하는 신문인가 아니면 있기 때문에 읽기도 하는 신문인가. 혹자는 대학신문이 현시점에서 무엇을 할 수 있냐고 말한다. 많지 않은 인원으로 과연 기성 언론 만큼 기사를 작성할 수 있냐는 지적이었다. 타당한 지적이다. 하지만 때로는 한계가 장점이 될 수 있다. 대학신문의 한계는 할 수 있는 일이 대학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기성 언론 이 다루는 주제에서 유일하게 차별성을 갖고 다룰 수 있는 주제는 대학이다. 그렇기에 대학신문은 대학 문제에 더욱 천착해야 한다. 실제 몇몇 대학신문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연세대학교의 <연세춘추>, 고려대학교의 <고대신문>, 경희대학교의 <대학주보>, 서울대학교의 <대학신문>, 부산대학교의 <부대신문> 등 은 학내 사안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내용 또한 사건·사고에 그치지 않고 학교의 주요 사안을 기획으로 다루고 있다.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코너는 신문 비평이었다. 흔히 신문 비평은 ‘신문 잘 읽었다는’ 주례 비평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고대신문>, <대학신문>에서 하는 신문 비평은 디자인 구성에서부터 지면 내용과 제목, 사진, 맞춤법까지 꼼꼼하게 읽어 야만 가능한 내용이었다. 고대신문에 실린 한 독자의 비평은 이를 잘 보여준다. 

  “홍보지인 줄 알았다. (중략…) 동일한 사안을 기사로 다룰 수 있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면 단지 홍보일 뿐이다. 이전 정책의 결과를 분석해 방식의 차이나 정책의 실효성을 평가하는 등의 취재가 필요한 것 아닌가.”, “얕다. (중략…) 홍보관 철거로 기존에 자리했던 기구들은 어떻게 되는가. 합리적인 상식의 눈으로, 충분히 궁금한 내용 아닌가.”(<고대신문>, 1848호) 

  결국 지적도 신문에 관심이 있어야만 할 수 있다. 홍대신문 역시 사건·사고를 기사로 다룬다. 하지만 매번 사건·사고 내용이 이미 커뮤니티에서 알려지고 난 후에야 보도하는 형태가 대다수다. 자연스레 독자들은 신문보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정보를 얻기 시작했다. 독자투고 코너 역시 신문을 비평하는 글은 없었다. 어쩌면 독자들에게 홍대신문은 읽어야 하는 신문보다 어쩌다 한 번씩 보는 신문으로 더 잘 알려진 셈이다. 독자 없는 신문은 그 존재 가치를 스스로 잃는 것과 다름없다. 따라서 앞으로 홍대신문은 학내 사안들을 중점적으로 다루며, 독자들의 평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앞서 성균지가 요청한 질문에 본인은 ‘대답 없는 메아리’라고 답변했다. 그간 우리가 말하고자 했던 얘기들은 이미 독자들 이 아는 내용이었다. 되돌아본 홍대신문은 미약했다. 그러나 여전히 가능성은 있다. 끝까지 취재하겠다. 독자들이 읽어야 하는 신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무엇보다 애정 어린 관심과 비판을 기다린다. 홍대신문은 대답 없는 메아리보다 더 큰 소리로 돌아오는 메아리를 간절히 원한다.

 

편집국장 김민우  (kimsioa@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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