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7.11.16 목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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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어른이고자 하는 것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나는 이 글귀대로 충분히 ‘어른’이라 불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특히 어렸을 적 어른이라는 존재에 대해 무조건적인 반항심과 반발심을 가졌던 나에게는, 그 단어의 기준이 남들보다는 조금 더 높았을 지도 모른다. 남들과 다를 바 없이 고달팠던 가정사 때문인지, 혹은 유년 시절 겪었던 어른과의 몇몇 일화들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어른들. 그들 중 일부는 그들의 나이를 위시한 공세로 청춘을 겁박한다. ‘나이도 어린 것이 못하는 말이 없다.’ ‘나 때는 안 그랬는데 요즘 것들은 참...’ 내세울만한 본인의 무기가 얼마나 없기에 생을 마감하지 아니하고 끝끝내 버티면 자동으로 올라가는 지표를 무기로 삼는가. (버티는 삶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언은 단연코 아니다. 혹여나 기분 나빴다면 사과드린다.) 그리고 당신의 시절과 지금 나의 시대는 다른 것이 당연하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런 어른들을 꽤 많이 만나왔고, 그에 대한 거침없는 반항을 주저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자면 객기어린 행동이었을 수 있겠다. 그러나 나와 또 다른 젊음들이 어른 같지 않은 어른에게 상처받아온 일을 생각하면, 또한 내가 그런 어른이 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어른 같지 않은 어른’에 대한 배타는 평생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유치원을 몇 번이고 옮겨 다녔다. 부족한 사회성 덕에 적응이 더뎠다고 말 할 수 있겠고, 극성인 할아버지의 바짓바람이 원인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동네 유치원이란 유치원은 모두 찾아다닌 뒤 교회 내 어린이집에 정착했다. 그곳에서의 기억만큼은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비교적 생생히 남아있는 편이다. 그런데 최근에, 아버지의 입을 통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일화 하나를 듣게 되었다. 교회 어린이집에 정착하기 전 다니던 유치원에서의 이야기이다. 요약하자면 이러하다. 그저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또래 유치원생에게, 그리고 우리 아이가 장애인과 같은 공간에서 하루 일과를 보낸다는 사실이 불편했던 학부모들에게 배척당하던 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 친구와 참 친하게 지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친구에 대한 여러 이유 없는 질타가 점점 심해지자 나는 열성적으로 그 친구를 변호하고, 보호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그 아이는 세간의 사정에 따라 유치원을 나오게 되었다. 당시 유치원 측에서 절대 다수 학부모들의 ‘컴플레인’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식 밖의 일이었음은 여지없이 분명하다. 유치원생이었던 나는 사건의 전말을 아버지 앞에서 전했다. 그리고 그때 아버지가 본 아들의 눈물은, 그가 여태껏 본 눈물 중에 가장 서럽고, 가슴 아픈 것이었다고 했다. 못다한 울분을 마저 터뜨리기엔 너무 작고 어렸던 나를, 타인의 아픔에 울며불며 공감해줄 수 있었던 소년을 난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개강을 하루 앞둔 밤, 최근 종영이 결정된 JTBC의 <말하는대로>라는 강연 프로그램을 보았다. 3명의 게스트 중 한 명인 허지웅 작가의 강연 주제는 오늘 이 글의 것과 흡사했다.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것. 그는 아버지의 부재와 사회에서 어른들과 마주하며 겪은 일들로 인해 상처받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결국 본인이 기댈 수 있을 만한 어른, 일종의 롤모델로 삼을 만한 좋은 어른이 없었던 만큼, 그 처지를 잘 이해하는 자신만은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요지였다. 재미있게도, 나는 허지웅을 고등학교 시절부터 한동안 동경의 대상으로 생각해왔다. “누구에게나 사랑 받는 말을 하는 이가 되느니, 아무 말도 안 하고 사는 것이 낫다.” 그가 미디어를 통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이후, 쉼 없이 언행일치를 실현해온 문장이다. 나는 매사에 다소 공격적이고 냉소적인 말투를 쓰며 살아왔다. 그렇기에 그의 그러한 태도를 접한 이후로, 나는 그가 나의 언행에 무언가 정당한 변명을 해주는 사람처럼 보였다. 내가 막연히 꿈꿔온 어른의 모습에 근접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허지웅 작가의 자서전인 『버티는 삶에 대하여』가 비록 조금 재미없었지만, 돈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아침이 밝으면 나는 정말 대학교 2학년이다. 하지만 마음만은 고등학교 5학년이나 다름없다. 그도 그럴 것이 해가 바뀌고, 생일이 지나 만 19세가 되고, 대학교만 입학하면 갑자기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아직 나는 어른이 아닌데 세상은 나더러 어른 행세를 하라고 한다. 법적으로 어른인 것, 사회가 날 어른으로 대한다는 것이 몹시 두렵다. 그래, 이왕 그렇다면 제대로 된 어른이고 싶다. 아직 먼 훗날의 그림이겠지만, 청춘들에게 조언과 따뜻한 말을 아끼지 않고 해줄 수 있는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그럴 수 있다면 불의를 저지르는 어른들에게 상처받았던 기억 저 밖의 소년까지도 따스하게 보듬어 줄 수 있는 내가 되지 않을까.

 

최태진  (역사교육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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