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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너희가 시험을 믿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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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폐지되기까지 천년이 넘는 기간 동안 중국에서 과거 시험은 제국의 공공성을 상징하였다. 누구에게나 이론적으로는 열려 있고 공정성을 보장하는 세밀한 절차를 갖춘 대규모의 필기시험 결과를 기준으로 인재를 선발하고 기회를 부여한다는 아이디어에 우리는 지금 매우 익숙하다. 그러나 전근대사회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관료를 선발한 곳은 중국, 한국, 베트남뿐이었다. 근대 이후 과거제는 동아시아의 낙후의 원인으로 온갖 비난을 받았지만, 이미 이에 대한 다양한 비판과 논쟁은 과거제의 역사만큼 축적되어 있었다. 몇 단어만 바꾸면 입시, 공무원 시험, 사시와 로스쿨의 대립에 대한 어제의 뉴스를 읽는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유사한 문제들이 과거제의 역사 속에서 계속 제기되어 왔다. 반복적 논쟁과 폐지 주장에도 불구하고 일단 과거제를 도입한 사회는 20세기로 넘어오는 시기까지 (한국은 1894년, 베트남은 1919년에 폐지) 이를 지속시켰다. 중국을 연구한 학자들은 과거제의 지속성을 거대한 제국의 통합을 위한 통일된 엘리트 교육의 필요성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작은 영토를 지닌 한국과 베트남에서의 생명력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가능한 답변의 하나는 과거제가 지닌 “공정성의 아우라”이다. 공정한 선발이라는 개념이 의식 안으로 일단 들어온 사회에서는 과거제보다 공정성이 결여되어 보이는 어떠한 제도도 대안이 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물론 표면적 공정성이 현실에서 실질적 공정성으로 작동했는가는 또 다른 논쟁거리지만, 과거제가 지닌 “공정성의 아우라”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과거제의 선발 방식은 근대 이후 서구에도 큰 영향을 끼쳤고, 동아시아는 근대 서구에서 과거제의 영향을 받아 개발된 많은 표준화된 시험제도를 역으로 도입하였다.  

  ‘공정사회’에의 열망이 높은 지금, 각종 선발 방식의 공정성 문제는 우리 사회의 큰 화두이다. 외적 요인의 개입이 최소화된 필기시험의 객관적 성적에 의한 선발만이 공정성을 보장할 수 있다는 주장은 다각도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강한 대중적 지지를 얻고 있다. 대입 방식으로 다양한 학생활동의 반영보다는 수능시험을 기준으로 한 선발이 가장 공정하다고 다수가 믿고 있으며, 로스쿨 비판과 함께 2017년 폐지된 사법고시 부활의 요구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엄청난 공무원 시험 열기도 신분의 안정성 보장 때문만이 아닌, 선발과정이 오로지 시험 성적만으로 결정된다는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주요하다. 필기시험에 의존한 선발 방식의 공정성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이것이 이상적 사회로 나아가는 제도라 생각하여 옹호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오히려 현재의 논의는 차선도 아닌, 두 개의 디스토피아 중 그나마 차악을 선택하자는 논리에 가까워 보인다. 첫 번째 디스토피아는 일그러진 메리토크라시이다. 시험 준비로 왜곡되는 교육, 피폐화되는 인생은 차치하고라도, 마이클 영(현재는 주로 긍정적 의미로 사용되는 메리토크라시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회학자로 그는 원래 이를 디스토피아로 그렸다)이 경고한 능력과 노력에 의해 철저한 위계가 형성되는 사회의 근본적 위험성, 나아가 그 능력과 노력도 결국 타고난 환경에 의해 결정되어 오히려 불평등을 정당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 그리고 실상은 간간히 밖에 출현 못하는 개천의 용들 또한 바람직하지 않은 욕망의 노예가 되기 쉽다는 것 등등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차악으로 만드는 더 강력한 두 번째 디스토피아는 자본주의화된 새로운 귀족사회이다. 조부모의 재력과 부모의 정보력의 결합이 자녀의 대입 결과이고 계층이동의 마지막 사다리조차 고시와 함께 사라졌다는 절망감은 과장되어 보이지만, 합격자의 95%가 청탁에 의해 결정된 것으로 밝혀진 공기업 입사 비리가 버젓한 현실이기에, 그래도 누구에게나 기회가 있고 자신이 직접 써낸 시험에 의해 결과가 결정된다는 기본적 공정성의 보장에라도 의지하고픈 것이다. 사회의 다양한 분야가 신뢰할 만할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고, 타고난 가정환경의 차이를 줄여주는 사회적 노력이 경주되지 않는다면, 모두 똑같이 홀로 적어냈다는 점에서는 그나마 동등할 수 있는 시험답안지의 희미한 공정성의 아우라가 마지막 희망의 빛으로 보이는 것을 어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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