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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인의 뒷모습

등굣길과 하굣길, 교내를 지나다니는 학우들의 발걸음은 대부분 유사한 곳으로 향한다. 이들 무리에 섞여 함께 같은 방향으로 걷다 보면, 서로의 등과 목덜미에 시선을 둔 채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모두가 함께 걷고 있지만 모두가 서로 마주 보지 않고 있는 지금, 우리는 서로의 뒷모습을 보며 각각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곧 홀로 서야 한다는 무게감에 짓눌려 어딘가 모를 축 처진 뒷모습을 지닌 이들이 들려줄 그 ‘뒷이야기’에 함께 귀 기울여 보자.

장유리(회화2) 학우

내가 가장 믿었고, 나의 기반이 되었던 ‘어떤 것’들로부터 나의 존재 의미가 사라지고 인정받지 못할 때 가장 외롭고 힘들다. 혹자는 우울함이 나르시시즘(Narcissism)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우울함과 나르시시즘은 모두 타인의 부정성을 거세하여 나타난 결과라는 것이다. ‘우울’을 즐기는 습관을 가진 나에게, 이와 같은 정의는 우울증에 대한 다소 부정적인 시각을 제시했다. 나는 이 정의를 마주하고는 마치 공격을 받은 것만 같았다.

조수범(국어교육2) 학우

고등학교 때부터 몸이 아팠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본가에 내려갔고 몸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근처의 큰 병원에 입원을 했지만 돌아오는 건 죽을 수도 있다는 말 뿐이었다. 대학교에 가면 마냥 행복하고 찬란한 인생이 펼쳐질 줄 알았다. 그러나 다른 또래의 아이들처럼 그렇게 지낼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우울했다. 하지만 병원에 있을 때, 비록 몸이 아파도 나는 아직 하고 싶은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아직 진짜 죽은 것은 아니니까,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긍정적으로 살아보려고 한다.

익명의 학우

대학에 와서 짝사랑이라는 것을 처음 해보았다. 보통의 인간관계는 쌍방향적이지만 짝사랑은 지극히 일방향적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나의 사이가 수많은 인간관계 중 하나로도 성립되지 못한다는 생각이 가득해지면 외로움은 배가 된다. 요즘 일상 속 모든 것을 그와 연관 지어 생각하고 있어 나의 일상은 그에 의해 채워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 관심 속에 내가 있을 공간이 없다고 느끼는 날에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우울해지곤 한다. 나에게는 그의 존재가 너무나도 크지만, 그에게는 나의 존재가 한없이 작게 여겨진다고 생각되는 날은 마치 무인도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익명의 학우

나의 인생에서 가장 우울했던 순간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대학 입시에 대한 두려움과 진로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속에 하루하루를 보냈다. 매일 공부하고, 학원에 가도 좀처럼 오르지 않는 성적 때문에 우울함은 날로 커져 갔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보장되어 있지 않은 현실이 나를 가장 괴롭게 만든 것 같다.

누군가의 뒷모습은 그의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무렇지 않은 척 모두 똑같이 학교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러나 조금만 손을 내밀고 그들의 속내를 들어본다면 풍경의 일부로만 보이던 그들의 모습도 언젠간 우리 시야에 색다르게 떠오르지 않을까? 혹시라도 누군가의 무거운 어깨를 뒤에서 보게 된다면, 이젠 한 번쯤 손 내밀어 그의 앞모습을 바라봐 주는 것이 어떨까

권미양 기자(aldid5@mail.hongik.ac.kr)

홍준영 기자(mgs05038@mail.hongik.ac.kr)

김은성 기자(ppicabong@mail.hongik.ac.kr)

금민주 기자(snm05136@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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