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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건축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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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서 이어집니다.)

신과의 관계와 건축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중세, 르네상스, 근대를 거치면서 교회의 평면도도 미세하게 변화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재미난 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서 교회의 평면도에 나타난 변화다. 과거 르네상스 시절까지만 해도 하나님과 사제는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가능하면 제단 쪽이 멀어보이게 디자인을 하였다. 유럽의 성당에서는 세로로 긴 평면도의 좁은 쪽에 사제가 서 있게 된다. 뒷자리에 앉은 사람은 제단이 까마득하게 멀리 보였을 것이다. 이러한 세팅은 제단 쪽에 서 있는 사람의 권위를 세워주기에 적합한 구도이다. 그래서 혹 대지가 좁아 제단이 가깝게 보일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 건축가는 제단이 멀게 보이도록 제단 쪽으로 좁아지는 사다리꼴 평면을 창안하였다. 르네상스 시절에 처음으로 투시도 기법이 정착되었고 이를 역이용하여 실제보다 멀어 보이게끔 디자인을 한 것이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선 후 점차 하나님은 두려움의 대상이기보다는 사랑을 주는 가까운 분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를 반영한 교회가 근대건축의 거장인 르 코르뷔제가 디자인한 “롱샹성당”이다. 이 성당은 제단이 있는 쪽이 사다리꼴의 넓은 변 쪽에 위치한다. 따라서 뒷자리에 앉아있는 신자가 제단을 바라볼 때 실제보다 가깝게 느껴지게 디자인되어 있다. 최근에는 설교자의 위치와 성가대의 위치 또한 그 교회의 목회철학을 반영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교회건축의 진화에 대해 살펴보았다. 기독교는 초기 제사 중심의 예배에서 군중 설교 체제로 예배의 형식이 바뀌었기 때문에 교회건축은 더욱더 대형화되어 왔다. 지금의 교회에선 교육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80년대에 베이비 붐이 일면서 초·중고생의 예배와 교육공간이 많이 요구되기도 했다. 지금도 교회 내부 공간을 보면 대예배당 만큼의 면적이 학생들의 예배 후 분반공부 교실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 들어 분당의 모 교회는 학교건물을 임대하여 사용하고 있다. 학교는 주중에 건물을 사용하고 교회는 주로 주말에 사용하는데 대형집회와 교육의 기능이 비슷한 것에 착안한 것이다. 따라서 학교건물을 주말에 교회가 임대하여 사용하는 것은 기발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그 교회의 경우 예배는 강당에서 드리고 분반공부는 교실을 일부 사용하고 있다. 마치 로마시대의 초대 교회가 법정으로 사용되던 바실리카를 예배 장소로 사용하는 것과 유사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례가 정착된다면 디자인 초기 단계부터 학교와 교회를 겸하여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의 건축물도 가능하리라고 본다. 특히 기독교재단의 사립학교를 소유하고 있는 교회는 생각해볼 만한 이슈이다.

 

불교 사찰, 이슬람교 사원

지금까지 교회건축의 경우를 살펴보았다. 그럼 간략하게 불교와 이슬람교의 건축도 살펴보도록 하자.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나라 불교 사찰의 경우 조선시대를 지배한 유교의 영향으로 산골에 많이 위치한다. 이웃나라인 일본의 경우에는 도심 속 곳곳에 사찰이 위치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다른 경향이다. 불교는 기본적으로 스스로 수양하고 깨달음을 얻는 종교이다. 추측하건대 마치 교회의 기도원처럼 개인적으로 본인이 원하는 시간에 혼자 가서 기도를 드리고 오는 시스템일 것이다. 같은 시간에 한 번에 모이는 것이 주된 형식이 아니다. 사용자가 흩어져 매 시간마다 골고루 오다보니 대형 실내공간은 필요가 없었다. 석가탄신일 같은 특별한 절기에는 날씨가 좋은 때여서 외부공간에 모여 집회를 해도 무방하기 때문에 더욱더 실내공간 위주로 발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슬람의 경우는 어떠할까? 이슬람은 중동지역에서 주로 신앙하는 종교이다. 이 지역은 예로부터 최근까지도 유목사회를 기반으로 생활했다. 앞서 모세의 성막을 설명하면서도 언급하였듯이 유목사회는 건축과 거리가 멀다. 항상 이동을 하기 때문에 특별히 건축을 발전시킬 기회가 없었다. 그러던 이들에게 충격적인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로마제국이 지금의 이스탄불인 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옮기면서 지은 하기아소피아 성당이다. 당시 유럽에서도 가장 큰 규모의 건축물이었는데, 천막만 치고 살던 이슬람 민족들에게는 얼마나 놀라운 광경이었을지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처음 하기아 소피아 성당을 바라보던 이슬람 민족의 표정이 영화 “인디펜던스데이”에 나오는 도시만한 UFO를 바라보던 사람의 표정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이들이 처음이자 유일하게 접한 종교 건축물이 하기아소피아 성당이었기에 훗날 이슬람 사원을 지을 때에도 모두 하기아소피아를 원형으로 하였으며 이는 지금까지도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 이태원에 있는 이슬람 사원도 역시 하기아소피아처럼 돔 모양으로 건축되어 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슬람은 기독교보다도 더 심하게 상징성을 금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조각상과 성화들을 배제하고 대신 글자와 문양을 통하여 장식했다. 아라베스크 문양들은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지금은 개조되어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스탄불의 하기아소피아는 사람이 올라가서 기도하는 시간을 소리쳐서 알리는 “미나레트”라는 탑 몇 개가 추가되었을 뿐 건축적으로는 초기 형상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 바로 옆에 새로 지어진 “블루 모스크”라는 건물은 하기아 소피아와 모양에서 별반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흡사하다. 

교회건축과 이슬람 사원의 가장 큰 차이는 아마도 신발을 벗고 들어가느냐 신고 들어가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된다. 사막지대인 이슬람에서는 성스러운 공간에 들어갈 때 신발을 신고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있다. 구약성경에서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을 처음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에서 떨기나무가 불타는 곳에 다다르게 되는데, 여호와가 이곳은 거룩한 곳이니 신을 벗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것은 중동 유목문화의 특징이다. 마치 우리나라에서도 집에 들어갈 때 신을 벗고 들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아마 우리나라는 비가 많이 오는 몬순기후여서 신발에 진흙이 많이 묻었을 것이고 그래서 벗고 들어간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중동의 경우에도 사막과 광야에서는 모래가 많았을 테니 깨끗해야 하는 공간에는 흙이 가득 들어간 신발은 벗어두고 들어가는 풍습이 생겼을 것이다. 그래서 이슬람 사원에 들어갈 때는 그들이 예전에 자신의 텐트에 신을 벗고 들어가듯이 신발을 벗고 카펫위에서 기도를 드리게 되어있다. 

이렇듯 종교건축물들은 다른 건축물이 그러하듯이 그 지역의 기후, 풍토, 문화, 그리고 예배의 형식에 맞추어 기능적으로 결정된다. 또한 신앙의 성격에 따라 사제와 신자의 공간을 구분하기도 하고 섞어 놓기도 한다. 과거 유럽의 성당에서는 평신도가 사제를 올려다보는 공간구조였다면 최근 대부분의 교회는 복층화 되면서 평신도가 설교자를 내려다보는 구조로 변화했다. 이러한 점들 역시 교회 내의 변화된 평신도의 위상을 반영하는 점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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