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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스며드는 당신의 이야기를 담다

라디오 PD 남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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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들으며 꿈을 키웠던 고등학생은 입사 12년 만에 동경했던 라디오 프로그램의 PD 자리에 앉았다. 1996년, MBC에 입사하여 올해로 21년 차에 접어든 그는 ‘유희열의 All That music’, ‘이주노의 뮤직 토크’, ‘MBC 라디오 오늘 아침, 이문세입니다’ 등 지난 20년간 라디오와 동고동락해왔다. 라디오가 화려한 매체는 아니지만, 착한 사람들이 찾는 정감 있는 공간이라고 소개하는 그는, 그 역시도 따뜻한 PD였다. 날마다 사람들의 사연에 귀 기울이던 그를 대신하여 이번에는 기자가 그의 사연을 들어보았다.

Q. 현 직업을 갖기 전, ‘라디오’의 첫인상은 어땠는가?

A. 어릴 적 라디오는 나에게 유일한 정보 지식의 창구이자, 돌파구이자, 위안이었던 매체였다. 집집이 비디오가 보급돼있던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라디오를 꾸준히, 그리고 많이 접할 수 있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인터넷은 이제 막 등장하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내가 대학에 들어갈 무렵에서야 겨우 한글 자판이 들어와서, 그때 처음으로 학교 리포트를 컴퓨터로 뽑았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라디오는 나뿐만 아니라 우리 세대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정보원이었다. 그래서 향후에 ‘라디오와 관련된 직업을 가지면 좋겠다.’라는 꿈을 일찍 가졌다.

Q. 라디오는 ‘듣는’ 매체이다. 그래서 아무래도 다른 매체와는 다르게 프로그램을 구성하거나 개편할 때 유념해야 할 점이 있을 것 같다.

A. 이건 단순히 라디오 PD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일하고 있는 여러분 한명 한명이 다 프로듀서라고 생각하면 쉽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어떤 사람에게 어떻게 어필할 수 있는가가 쟁점인 것이다. 라디오 PD는 ‘이 시간대에 라디오를 듣고 있는 사람들’ 즉, 청취자에게 어떻게 어필할 것인지를 고민한다.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라디오는 항상 사람 사는 것과 동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결국, 다 사람 사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라디오가 세상과 너무 괴리되지 않았으면 한다. 두 번째는 진실하게 다가섰으면 좋겠다. 가령, ‘여러분 힘내세요.’를 성의 없는 말로 만들어버리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이 디제이를 하면 아무리 말을 많이 한다 한들 형식적인 멘트밖에 될 수 없다. 지금처럼 힘든 시대일수록 말을 잘하고 못하는 것을 떠나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진심이 필요하다. 그런 진심은 말 한마디 더 하지 않아도 청취자가 먼저 느낀다.

Q. 라디오와 얽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는가?

A. 너무 많아서 하나를 꼽기가 어려운데, 예전에 ‘두시의 데이트 박경림입니다’를 담당할 때, ‘걸어서 걸어서’라는 특집 프로그램을 했었다. 라디오 생방송 중에 디제이였던 박경림 씨가 딸과 아들이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와 선물을 직접 걸어가서 대신 전해주는 깜짝 이벤트 같은 것이었다. 방송이 시작하면 편지를 들고 어머님이 있는 떡집까지 걸어가기 시작하는데, 가는 길에 만나는 동네 아저씨와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꽃집에서 어머님께 드릴 꽃도 사면서 라디오가 진행된다. 평소 어머님은 방송을 들으면서 일을 하시는데, 그날은 딸이 미리 가게 라디오를 꺼놓은 바람에 아무것도 모르고 계셨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 라디오 팀이 들이닥치니 처음에는 너무 놀라시다가 딸이 등장해 고맙다고 말하는 순간, 어머님도 울고, 딸도 울고, 스텝, 작가, 피디까지 다 우는 바람에 현장이 눈물바다가 됐었다. 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라디오 PD는 이렇게 사소하지만, 일상에 작은 이벤트를 만들어 선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Q. 라디오 음악 선곡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라디오 PD의 자리에는 음반 CD가 쌓여 있다는 소문도 있던데, 때와 상황에 알맞은 음악을 선곡하는 노하우가 궁금하다.

A. 선곡의 기준은 매우 많다고 할 수 있다. PD마다 다르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기준들도 있기 때문이다. 보통 일반적인 기준은 그날의 분위기, 그리고 원고를 뒷받침할 수 있는 음악을 선곡한다. 그 외에도 날씨라던가, 남녀비중, 팝송 가요 비중을 살피기도 한다. 분위기에 따라 낮 시간대 프로그램에서는 주로 템포가 빠른 노래들이 많이 나가고, 밤 시간대 프로그램에서는 서정적인 노래가 많이 나간다. 하지만 낮에도 발라드가, 밤에도 힙합이 선곡되긴 해야 한다. 템포가 있는 노래가 나가야 발라드 노래도 살기 때문이다. 그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이 노래를 살리기 위해서 다른 노래를 선곡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요즘은 예전보다 청취자들이 라디오에서 음악 듣는 것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 것 같다.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의 문제일 수도 있는데, 청취자는 ‘라디오에서 좋은 노래를 안 트니까 안 듣는 거다.’라고 할 수도 있지만, 라디오 PD 입장에서는 청취자가 새로운 음악을 듣는 걸 부담스러워 하니까 곤란할 때가 있다. 양쪽 다 맞는 말이다. 이 논쟁의 배경에는 인터넷이나 아이튠스처럼 굳이 라디오를 안 들어도 본인이 원하는 새로운 음악을 접할 수 있는 매체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어찌 보면 라디오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라디오는 없어지는 매체가 아니다. 그런 면에 있어서 라디오의 영향력이 줄어든 지금, 앞으로 어떻게 변화하는가에 따라 전환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Q. 어언 22년의 경력을 쌓았다. 라디오 PD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원만한 커뮤니케이션. 누구와도 마찬가지지만, 스텝들과 잘 소통해야 한다. 그 다음은 결단력이다. 이야기를 듣는 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일지 모르지만, PD는 어느 순간에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라디오 PD는 한 프로그램의 책임자이기 때문에 그 결단을 누가 대신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우유부단하면 안 되는 것 같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아집에 빠지지 않고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프로그램을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다. 본인이 다른 사람보다 지식적으로 더 우월하다고 자기 고집이라든가 잘난 척에 빠지면, PD로서는 굉장히 위험하다.

Q. 홍대신문을 읽을 홍익대학교 학생들을 비롯한 인생의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인가?

A. ‘하나’를 파라. 나를 예로 들자면, 나는 만화도 좋아하고, 미술도 좋아하고, 영화도 좋아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이 세 가지가 다른 분야가 아니라 다 연결되어있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만화책을 좋아했다. 작년에는 우연히 게이오 대학에서 1년 동안 방문연구원으로 다녔었는데, 이때 만난 일본 교수들과 일본 만화 이야기를 하며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었다. 만화를 좋아했던 것을 소통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화는 단순히 명랑만화, 순정만화, SF만화부터 시작해서 세대별 만화로 나눌 수도 있고, 혹은 단행본 주간지, 월간지 등 여러 형태로 그 종류를 구분할 수 있다. 그래서 만화를 좋아하게 되면 저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 장르에 관심을 갖고 점점 그 분야에 집중하게 된다. 예를 들어, 만화의 내용 속에서 음악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만화와는 다른 분야라고 생각했던 음악을 연관해서 파게 되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정치, 사기꾼, 우주 등 다양한 소재에 대한 만화가 있다. 다시 말해 어떤 한 분야에 집중하면 결국 여러 분야에까지 연결된다는 것이다.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지식이라든지 책들은 알아두면 좋겠지만, 모든 방면으로 다 전문적일 수는 없다. 모든 건 일반적인 수준으로 알되,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설사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어떤 분야든 한 분야를 판다면 그게 다 다른 분야로 활용할수 있는 중요한 무기가 된다는 걸 미리 알려드리고 싶다. 힘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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