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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계우, <花蝶圖>, 19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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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를 즐겨 그렸고, 또한 특출나게 잘 그렸기에 ‘남나비(南蝶)’로도 불리었던 남계우는 19세에 활약한 문인 화가이다. 본래 나비 그림은 초충도에 속하는 화제 중 하나이고, 당시 화단에서 이를 제작한 화가 역시 여러 명 존재하지만, 이들 중 그가 나비 그림으로 일가를 이룬 것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화단의 주요 향유층으로서 이전 시기부터 부를 축적한 중인과 일부 서민이 있었고, 이들은 특히 길상(吉祥)의 의미를 가진 그림을 선호하였다. 화조도를 비롯한 초충도가 이들의 관심에 부합되는 화목이었는데, 가령 나비의 ‘접(蝶)’이 80세를 의미하는 ‘질(耋)’과 중국어로 읽는 소리가 비슷하여 장수를 기원하는 축수도(祝壽圖)로 많이 제작되었다.

남계우는 소론 명문가 출신이라는 가학적(家學的) 풍토를 기반으로 다양한 소재에 관심을 가졌으며, 실제로 벼슬을 지낸 적이 거의 없었기에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 동안 시·서·화(詩·書·畵) 및 전각(篆刻) 등을 즐길 수 있었다. 현존하는 그의 기록을 보면 나비와 관련된 것이 많은데, 어린 시절부터 나비를 좋아하여 관찰하고 연구하며 사생하였다고 한다. 더불어 16세 때 명동에서 날아가는 나비를 쫓아 동소문동까지 가서 잡았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나비에 관한 관심은 단순히 그리기 위한 것 그 이상이었음을 추측게 한다. 자신이 잡은 나비를 수집하여 마음이 내킬 때 꺼내보았으며, 그리고자 하는 나비 위에 종이를 놓고 유지탄으로 밑그림을 그린 후 채색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으로 나비를 세밀하게 표현할 수 있었는데, 그 수준은 그림 속 나비를 통하여 종을 감별할 수 있을 정도로 사실적이었다. 일례로 경성제대 생물학 교수였던 석주명은 그의 그림을 바탕으로 당시 서울 근교에서 자생하던 37종의 나비를 밝히기도 하였다.

현재 남계우의 나비 그림은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여러 곳에 소장되어 있다. 그중 홍익대학교 박물관 소장 <花蝶圖>는 두 폭의 그림으로 여기에 특별한 제발은 없으며, 그의 호와 인장이 남아 있다. 비록 본관 소장품에는 없으나, 그는 주로 나비와 관련된 중국 고전을 인용한 제발을 썼으며, 어느 그림에는 자신이 직접 수집한 문헌을 소개하는 내용의 제발을 남기기도 하였다. 괴석과 꽃 그리고 섬세한 공필로 묘사된 나비가 군접(群蝶)의 모양새를 띠고 유유히 날아다니는 모습에서 운동감이 느껴진다. 이것은 그의 다른 나비 그림에서도 보이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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