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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들의 목소리, 예술로 승화되다 ‘아르 브뤼’(Art Brut)다름에 대해 끊임없이 차별하고 분리하는 사회에 질문을 던지다

언어와 성별을 초월해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영역.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예술의 정의일 것이다. 하얀 벽에 고급스러운 액자가 걸려있고 격식 있는 옷을 입은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며 작품을 감상한다. 이렇듯 예술을 둘러싼 이미지는 고급스럽다 못해 마치 상위계층의 전유물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러한 예술은 인위적이라며 기존 예술에 반발한 사람이 있었다.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2002)는 교육 수준, 심미안 등의 문화 자본으로 인해 계급과 사회적 불평등이 유지됨을 강조했다. 특히 대중에게 예술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마냥 고매하고 순수한 영역이 아님을 시사한다. 즉 예술에는 다양한 계급이 존재하는데, 향유층 간의 계급 차이뿐 아니라 제작자의 계급 역시 존재함을 주장했다. 같은 화가여도 이들이 가진 외부 요인이 구매자로 하여금 작품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비슷한 류의 작품이여도 그들의 학벌, 해외 활동 여부, 수상 기록은 작품 그 자체에 반영되어 상류층이 즐기는 예술의 일부가 된다. 그러나 1900년부터 이러한 외부 요인에 전혀 관여받지 않고 예술 활동에 대한 목적과 자각이 없는 창작자의 작품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사회에서 정해진 수준에 미치지 못해 소외된 정신병동에서 나온, 일명 ‘아르 브뤼(Art Brut)’가 그 예시이다. 이들은 예술의 명성에 먹칠을 한 계급에서 벗어나 드디어 ‘순수’한 예술 그 자체를 보여주는 활동을 펼쳤을까?

▲나치의 퇴폐미술전

▲정신병동에서 순수한 ‘예술’을 찾다, 아르 브뤼

아르 브뤼란 예술 행위에 특정한 목적이나 자각의 상태도 없는 창작자의 작품을 가리킨다. 주제, 소재, 재료의 제한이 없으며 서술방식과 표현이 비논리적이고 비형식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은 정신병동에 입원한 환자들의 작품이었다. 이들의 작품은 나치가 연 1937년 <퇴폐미술전>에 처음으로 등장해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전시는 그들의 작품에 집중하고 소개하는 일반적인 전시가 아니었다. 나치는 표현주의와 아방가르드 작품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며 그들 작품 사이사이에 정신병동에서 나온 작품을 넣었다. 즉 그들의 사상을 비판하던 표현주의와 아방가르드 작품 수준은 정신병동에서 제작된 작품과 같음을 시사했던 것이다. 이후 나치는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고 사람들을 세뇌시키기 위해 국수주의적인 그림을 지향했다. 이외에도 파시즘과 같이 지엽적이고 극민족주의적인 작품이 우후죽순 발표되며 예술이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당시 예술은 예술로 남이 있지 않고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사용되는 도구가 되어버리며 아트 브뤼 역시 단순히 한 화파를 비난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그 후에도 이들의 작품은 그저 하위 예술이자 별 볼 일 없는 화파(畵派)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를 반전시킨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장 뒤뷔페(Jean Dubuffet, 1901~1985)이다. 그는 1924년 정신병 환자들의 그림에 대한 책 『정신병자들의 미술(The Art of the Insane)』을 접한 후 의도적이고 정치·경제적 결탁에 물든 기존의 미술보다 솔직하고 자발적인 그들의 미술이야 말로 창조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러한 특성을 하나의 기법으로 받아들여 아르 브뤼라는 개념을 창조했다. brut은 프랑스어로 ‘날 것 그대로의’, ‘야만적인’이라는 뜻으로 art brut은 말 그대로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형태의 미술을 뜻하는 것이다. 그는 지속적으로 이러한 기법을 실험하며 정신 병원에 수용된 후 그림을 지속적으로 그렸던 하인리히 안톤 뮐러(Heinrich Anton Muller)에 영향을 받기도 했다. 이후 장 뒤뷔페는 1948년 아르 브뤼 컬렉션(Art Brut Collection)을 구성해 전통적인 예술의 정의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컬렉션을 만들며 ‘예술훈련을 받지 않을 것, 문화라는 조건 안에 있지 않을 것, 창작 과정에서 침묵과 익명성이 지켜질 것’이라는 조건을 덧붙였다. 대부분은 정신병동의 예술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그 외에도 영매(靈媒), 소외계층, 독학 예술가들의 작품도 존재한다.

▲알로이스 코르바스의 작품

정신병동 예술

대표적인 작가로는 알로이즈 코르바스(Aloise Corbaz, 1886~1964)가 있다. 그녀는 1911년 독일로 여행을 떠나 황제 빌헬름 2세(Wilhelm Ⅱ, 1859~1941)의 궁정에서 가정교사로 지내게 되었다. 그 곳에서 황제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으나 사실 그 사랑은 상상 속 혼자만의 사랑이었다. 그즈음 독일이 세계대전 참전을 선포해 그녀는 스위스로 돌아오게 되었고 혼자만의 망상과 전쟁으로 인한 종교적 광기를 보이기 시작했다. 1920년부터 그녀는 흑연과 잉크를 사용해 몰래 그림을 그렸지만 1941년부터는 갑자기 큰 두루마리 종이에 신들린 듯 그렸다고 전해진다. 그녀의 작품은 대부분 연필, 목탄, 꽃잎의 즙, 치약 등으로 그려졌고 종종 종이에 연필, 색연필, 파스텔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녀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쉐부르의 나폴레옹 3세>가 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이 거대한 극장이라고 보았다. 특히 그녀는 푸른 눈동자를 가진 공주와 왕자의 사랑 이야기를 연극식으로 그려냈다.

▲매지 길의 작품

▲영매·소외계층 예술

영매 예술의 대표 화가인 매지 길(Madge Gill, 1882~1961)은 사생아라는 이유만으로 9살까지 지하실에 살아야만 했고 이후에는 고아원을 전전하는 삶을 살았다. 이후 결혼해 3명의 아들을 얻었지만 셋째 아이가 목숨을 잃고 간신히 얻은 넷째 딸은 죽은 채로 태어났다. 이로 인한 후유증으로 왼쪽 시력을 거의 다 잃은 그녀는 슬픔으로 인해 머나인레스트(Myrninerest) 라고 불리는 수호령에게 빙의되었다. 이후 그녀는 영매된 상태에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등 창의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작품 속에는 대부분 여성이 등장하며 이는 영매 자신 혹은 죽은 딸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그녀는 무의식 상태 속에서 중첩된 무늬를 그리며 기묘한 느낌을 주는 작품을 제작했다. 

팀 브라운(Time Brown, 1923~)은 인종차별과 더불어 가족이 자신을 떠난 이후 자신의 유년 시절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특히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재료를 사용했는데, 다리미판 조각, 상자, 나뭇조각에 붓을 사용해 작품을 제작했다.

계급이 없는, 예술을 위한 예술은 가능할까?

이후로도 아르 브뤼는 아웃사이더 아트(Outsider Art), 특이 예술 등으로 불리며 행보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장 뒤뷔페가 정립한 아르 브뤼의 의미와는 조금씩 다른 점이 있었다. 특히 아웃사이더 아트는 초기에는 원주민 예술품에 집중을 했으나 시간이 지나며 18~19세기 지방, 농민의 산업화되지 않은 예술, 민속 예술 등의 범위까지 합쳐 아르 브뤼보다 더 넓은 범위를 지칭하게 되었다. 이후 사람들은 비제도권 영역이었던 그들의 예술을 접하게 되었고 이후 아웃사이더 아트는 아트 페어가 열리자 제도권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또한 아트 페어에 팔리는 작품의 경우 미술 치료의 유행으로 환자들에게 전문적인 재료를 주고 미술을 가르치게 되어 이전에 아르 브뤼가 가진 성격과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이후로도 아르 브뤼와 아웃사이더 아트 전문 미술관들이 생겨나며 오늘날 이들은 제도권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순수하게 미술의 원시적 창조에 집중해 만들어진 아르 브뤼는 결국 제도권 안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지금은 정신과와 미술치료에서도 그 상관관계가 입증되었으며 그들의 예술은 결국 예술의 장(Champ)에서 사고 팔리는 상품이 되었다. 더 이상 자신의 환상과 원시적인 욕망에 의해 예술을 주체적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상류층들의 기부 차원에서 진행되는 미술 치료를 위해 그리게 된 것이다. 결국 피에르 브르디외가 주장했던 것처럼 예술은 문화 자본의 일종으로 사용되고 예술은 상류층과 하위층의 계급을 구분하는 수단이 되었다. 

 

분명 예술에는 계급이 존재한다. 시작은 한 인간의 예술성을 펼치는 행위였어도 지금껏 미술사가 그래왔듯이 미술사조는 누군가에 의해 선택되고 상업적이든 정치적이든 그러한 성격을 띠게 된다. 따라서 예술을 향유하고 수단으로 사용하는 층과 이를 받아들이는 층은 늘 고정되어 있다. 그러는 사이 대부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예술을 향유하는 층은 상위층으로, 예술에 무지한 사람은 교양이 부족한 하위층이라는 이분법적 고정관념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이분법적 생각은 스스로 고찰하였기보다는 누군가에 의해 주입된 생각이고 그렇기에 이는 계급을 더욱 견고히 만들 뿐이다. 따라서 이제 이러한 구조를 무너뜨리고 그 간극을 좁힐 중계자가 필요한 시기이다. 정신병동이라는 이미지로 인해 천대받던 그들이 비제도권 밖으로 나왔고, 사회가 소외시켰던 계층의 예술은 독특하다며 환대를 받는다. 끊임없이 모든 것에, 특히 모두에게 공평한 예술에게까지도 다른 생각과 시선을 강요하고 구분하는 풍조에 대해 한번 돌이켜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김나은 기자  smiles3124@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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