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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인간현대 건축의 이해
  • 유현준(건축학부 교수)
  • 승인 2017.03.0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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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도시

  얼마 전에 필자는 “세계 경제의 미래” 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의 주제는 향후 30년 정도의 세계경제를 인구구조의 분석에 의해서 예측한 책이다. 기존의 경제학 책들과는 달리 연령대별 인구구조에 따라서 세계경제가 부침을 거듭한다는 내용으로 단순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들렸다. 그 책의 저자에 따르면 베이비 붐 세대가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는 시절은 경제의 가을에 해당한다. 이때는 집도 잘 팔리고 소비도 많이 된다. 하지만 이들의 자녀가 대학에 들어간 이후로는 베이비 붐 세대가 소비를 줄여서 경제의 겨울, 즉 디플레이션이 된다는 것이다. 건축시장의 분위기에 민감한 건축가인 필자가 읽었을 때 아주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다. 저자는 인구구조의 도시화는 국가경제성장의 원동력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도시화는 80%가 되면 멈춘다고 보고 있다. 한국은 이미 그 지점에 도달해 있다. 다시 말해서 시골에 사는 인구중 서울로 이사를 올 인구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 말은 거시적으로 봤을 때 집값을 오르게 할 이유가 없다는 것으로 말할 수 있다. 2013년 우리는 도시화가 완성된 시대에 살고 있다. 정량적으로는 그렇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정성적으로 보았을 때 우리의 도시가 다른 선진국의 도시처럼 성숙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도시화를 성숙시키는 것이 우리세대가 향후 수십 년간 이룩 해야할 숙제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러한 도시화의 성숙은 무차별 적으로 유럽의 도시를 모방하는데 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대한민국 고유의도시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도시의 조건

  2천 년 전에 이태리 사람들은 그 시대에 맞는 로마라는 도시를 만들었다. 그 당시에 가장 중요한 도시의 요소는 도로망의 구축과 상수도 시설의 완비였다. 로마 정부는 유럽 전역으로 사통팔달 뚫려있는 도로를 구축해 물류 망을 완성했고, 동시로마 시민을 위해서 먼 시골에서부터 수로를 건설해 물을 도시로 끌어들였다. 이것이 가능했기에 우리가 아는 인구 100만 명에 육박하는 고대 로마가 있을 수 있었다. 이들은 당시로서는 최고 밀도의 메트로폴리스를 구축할 수 있었기에 강력한 중앙집권의 제국을 건설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지금 수도꼭지를 틀면 너무나 당연하게 수돗물이 나오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불과 5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의 조상들은 냇가에 살던지 아니면 우물을 파서 물을 마셔야 했다. 물의 공급이 냇물과 우물 같은 천연의 공급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고밀도의 도시를 만들 수가 없었다. 물의 공급은 곧 도시화를 뜻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상수도 시스템이 없었기도 했지만 당시의 주된 산업구조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 선조들의 주된 산업은 농업이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나 “사농공상(士農工商)”같은 말이 달리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농업은 모든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었다. 당시의 통계는 없지만 조선시대까지 국가 총생산량의 대부분을 농업이 차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생산의 기반이 이처럼 땅과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인구는 시골에 흩어져서 살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부가가치 생산을 위해서 한 사람당 일정 규모 이상의 땅이 필요했고, 당시의 교통수단은 지금처럼 발달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사는 집과 생산기반인 땅은 가까이에 있어야 했다. 그래서 지면에 흩어져서 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 속 에서 나오는 바벨탑의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이야기의 골자는 하나님은 인간이 땅에 흩어져서 살기를 원했는데 사람들이 큰 탑을 만들고 그 주변으로 모여서 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인간의 언어를 여러 개를 만드셔서 어쩔 수 없이 흩어져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농업은 사람이 흩어져야 하고 상업은 사람이 모여야 한다. 바벨탑 이야기를 문화인류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흩어져 살아야하는 농경중심의 사회와 모여서 살려는 상업중심의 사회문화가 충돌하는 이야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농경보다도 유목사회는 더 넒은 땅을 필요로 한다. 넓게 펼쳐진 몽고초원을 상상 해보라! 유목사회에 기반을 둔 유대민족의 성경 속 바벨탑 이야기는 사람들이 흩어지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그런 결말이 유대인들에게는 해피 엔딩이었을 것이다.

  다시 로마도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2천 년 전에는 로마를 비롯한 몇몇 고대의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농경중심의 경제구조였기 때문에 도시화가 많이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경제구조 뿐 아니라 로마처럼 고비용을 들여서 물을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기도하다. 물은 사람이 사는데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로마처럼 엄청난 비용을 들여서 상수도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도시는 일정규모 이상 성장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상태는 아주 오랫동안 지속된다. 중세시대까지도 농업중심의 산업이었고 모여 산다고 해보아야 영주를 중심으로 작은 성에서 사는 정도였다. 성규모의 도시화 이유도 전쟁을 피하기 위한 보안의 목적이지 경제시스템 때문이 아니었다. 중세 때는 땅을 가진 소작농이 자신의 땅을 영주에게 주고 영주는 군인과 기사를 휘하에 두고 소작농의 안전을 지켜주는 상호보완적인 상태로 오랫동안 지속되어져 왔다.

농업에서 공업으로

  이처럼 고대부터 서서히 발전해온 도시화의 흐름은 결정적으로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그 이유는 기술의 발전에 의한 산업혁명 때문이다. 산업혁명은 인류의 생산기반을 땅에서 기계로 바꾸었다. 이 말은 부가가치를 생산할 때 땅이 필요 없고 기계를 놓을 만한 좁은 건물만 있으면 된다는 소리다. 이때부터는 과거 농사를 지을 때와는 반대로 높은 밀도로 사람들이 모여 살수록 주인은 돈을 더 많이 벌수 있는 시스템이 된 것이다. 농사는 햇볕을 받아야 가능한 산업이다. 즉 땅에 평면적으로 깔려서 햇볕과 비를 맞아야 자연으로부터 얻은 자원인 태양에너지와 물과 땅속의 영양분을 가지고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산업이다. 반면 2차 산업은 햇볕과 비가 필요 없다. 당연히 고층으로 건물을 짓고 그 안에 많은 사람들을 쑤셔 넣으면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다. 그리고 자원과 상품이 상호 유통하기 쉽게 모여 있으면 더 유리하다. 이처럼 도시화가 급격히 이루어지고 일자리가 있는 곳에 사람들은 더 모여들게 되었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사는 근대 도시가 만들어진 배경이다. 이때 어떠한 현상이 생겨났는지 그 때로 돌아가서 생각해보자. 사람들의 밀도가 너무 높아졌다. 물은 더 필요했고 그 사람들이 배설하는 하수는 더 많아졌다. 기존의 기술로는 그러한 고밀도의 상황에서 사람이 살 만한 환경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고밀도로 사람이 살 만한 환경이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사람이 모였을 때 환경의 질은 떨어지고 전염병은 발생하게 마련이다. 여기서 한번 산업과 연결해서 질병의 역사를 살펴보자.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질병의 대부분은 가축과 인간이 함께 살면서 발생한 것이다. 가축에만 있는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파되었을 때 새로운 질병이 발생한다. 인류는 이처럼 농경사회를 시작하면서 영양공급이 좋아지고 생산성이 늘어서 급격하게 인구가 급증을 했는데 동시에 질병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죽기도 했다. 유럽이 한 때 흑사병으로 전체유럽인구의 1/3이 사망하는 사건도 이러한 인구증감 사이클의 하나이다. 이렇듯 인구의 증가가 이루어지고 그로 인해서 질병이 만들어 지고, 다시 질병으로 인구가 줄어들고 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인류는 면역성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면역성의 강화 는 곧 그 종족 혹은 그 문화의 경쟁력이 되었다. 다이아몬드 교수의 책 “총, 균, 쇠”는 이러한 과정을 잘 설명해 주면서 농경사회를 먼저 받아들인 종족이 어떻게 농경사회에 늦게 진입한 아메리카 대륙의 사람들을 전염병으로 이겼는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들 중 총으로 죽은 사람은 10%도 되지 않는다. 그들 대부분은 유럽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퍼트린 전염병으로 죽은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은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과 혼혈을 통해서 면역성을 물려받은 사람들뿐인 것이다.

새로운 발명품: 하수도, 도심공원

  다시 도시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인간이 어느 밀도 이상 모여서 살았을 때 발생하는 고밀도 도시에 해결책을 제시한 도시가 파리이다. 파리는 처음으로 하수도 시스템을 만들었다. 최근 영화로 개봉해서 많은 사람이 본 소설 “레미제라블”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마지막에 주인공이 탈출하는 그 하수구는 당시로서는 최첨단 설비라고 할 수 있다. 파리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당시의 패권을 쥐고 가장 유명한 국제도시로서의 명성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이다. 파리는 거미줄처럼 구축되어있는 지하철로도 유명하다. 이 같은 입체적인 인프라 구조가 파리를 다른 도시보다 앞서나가게 했다. 하지만 파리를 가본 분은 아시겠지만 대부분의 건축물은 8층을 넘지 않는다. 그 정도가 당시로서는 얻을 수 있는 가장 고밀도의 도시인 것이다. 비슷한 시대에 런던은 도시를 위해서 어떤 발명을 했는가 런던은 하이드파크라는 도심형 공원을 만들었다. 산업혁명이전에는 자연 속에서 살던 인간이 인고의 환경인 도시에 와서 신체적 정신적으로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발명품이 도시 속에 자연을 도입한 센트럴 파크이다. 이 훌륭한 발명은 이후 보스턴과 뉴욕을 비롯한 모든 도시의 필수품처럼 되었다. 이외에도 퇴근 이후에 도시를 산책할 수 있게 가로등도 발명되어서 사람들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사람을 위한 더 좋은 공급을 해주는 도시는 세계적 도시로 발돋움하였다.

유현준(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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