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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평론가 이주헌미술과 사람 사이 다리를 놓다

우리는 하나의 미술작품을 보고 몇 가지의 해석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동일한 작품을 본다고 해도 사람마다 감상이 다르기 때문에 관람자의 수와 비례한 해석이 나올 것이다. 이렇게 감상자가 색다른 관점에서 작품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좀 더 깊이 있는 이해를 도와주는 사람. 바로 미술평론가이다. 이주헌 미술평론가는 글을 통해 사람들의 이해를 돕는 것을 넘어서 영감을 주고 가치를 창조하고자 노력한다. 평론뿐만 아니라 『50일간의 유럽미술관 체험』(1995) 등의 책을 저술하고 여러 강의를 진행하며 미술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고 있는 미술평론가 이주헌을 만나보자.

 

Q. 동아일보, 한겨레신문 기자 활동을 하다가 미술평론가 및 작가의 길로 전향했다. 이 길을 선택한 계기는 무엇인가?

A. 본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려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화가의 꿈을 꿨다. 하지만 졸업할 때 즈음 생계를 위해 취직을 해야 하는데 전공을 살리며 돈을 벌기란 어려웠다. 당장 화가가 되어 그림을 그린다고 해도 누가 내 그림을 사준다는 보장이 없었다. 미술 애호가가 많은 지금도 화가로 사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인데, 내가 취업준비를 할 때는 미술 시장이 지금처럼 할성화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부모님도 일찍 돌아가시고 동생들도 있었기 때문에 빨리 경제권을 취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일단 고정적으로 수입을 얻을 수 있는 회사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당시 입사 응시에 전공 제한을 두지 않는 회사에는 언론사, 광고회사가 있었다. 나는 기자 생활을 하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그림을 그릴 생각으로 동아일보에 들어갔다. 그러나 동아일보, 한겨레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고정적인 수입은 얻었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인 그림 그리는 일은 할 수가 없었다. 기자 생활이 너무 바빴기 때문이다. 또 문화부 기자를 계속하고 싶어도 회사가 나를 다른 부서로 계속 옮겼기 때문에 미술과 관련된 기사를 쓰는 것도 오래 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회의감이 들어 언론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하지만 언론사를 그만두고도 다시 그림을 그릴 수는 없었다. 6~7년 동안 기자로 생활하느라 붓을 잡지 못했고, 다른 직업을 가져도 틈틈이 그림을 그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기자 생활을 한 것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미술에 대한 지식, 영감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자 마음을 먹었고 마침내 미술 비평과 관련한 책을 쓰게 되었다.

Q. 기자, 평론가 모두 글을 쓰는 직업이긴 하지만 다루는 내용, 형식에는 차이가 있다. 기사와 미술평론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

A. 기자, 평론가가 쓰는 글 모두 결국 창조적인 문필활동이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기자는 저널리스트로, 엄밀히 말하면 자기 글을 쓰는 사람이라기보단 독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정확하게 제공하는 사람이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 현상, 활동, 트렌드 등을 취재해서 하나의 기사로 만들어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기자를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라고도 한다. 기사의 목적은 정보전달에 있기 때문에 기자는 항상 평균 독자를 생각해야 한다. 내가 기자 생활을 할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고등학교 1학년이 이해할 수 있게 기사를 쓰라는 것이었다. 기사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가야 하므로 항상 독자를 고려해야 한다. 반면 평론가는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다. 평론가는 자신의 기준과 시각을 바탕으로 미술 작품에 대해 가치평가를 하고 작품에 담긴 정신을 분석한다. 기사와 달리 글쓴이의 관점이 개입되는 것이다. 또 평론가는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로, 모든 사람을 독자로 상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자와 달리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내용이 담긴 글을 쓴다.

 

Q. 작품들이 지니는 다양한 주제와 기법으로 인해 평론에 있어 어려움이 따를 것 같다. 가장 까다로운 점은 무엇인가?

A. 까다로운 점이라기보단 당연하게 마주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작가들은 모두 본인 특유의 시각과 관심이 있다. 또 미술과 같은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항상 새로움을 추구해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많이 한다. 그래서 자주 기존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새로운 작가들을 만나게 된다. 그때마다 처음부터 시작하는 느낌을 받는다. 새로운 작가에게 기존의 관점으로 다가가려고 하면 거리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작품을 그린 작가의 생애, 가치관, 관심 등을 알게 될 때 비로소 작품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이런 일이 많아 나는 항상 새로운 시각과 이야기에 적응하며 그것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열린 자세를 가지고 작품을 보고자 노력한다. 내가 경험하고 알고 있는 것만을 잣대로 작품을 평가하고 재단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일이 비평할 때 발생하는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지만, 또 비평의 즐거움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제껏 접하지 못했던 생각을 접해 사람의 생각이 이렇게 다양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Q. 지금까지 많은 책을 저술했는데 책을 집필할 때 본인만의 신념이나 가치관이 있는가?

A. 항상 책을 쓸 때 ‘사람들에게 영감과 즐거움을 주자’라는 생각을 한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미술을 즐기도록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미술을 통해 자신의 삶을 더 가치 있게 만들 수 있을까?’, ‘내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방법은 없을까?’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책을 쓴다. 나는 나 자신이 미술에 관심이 있는 만큼 다른 사람의 삶에도 관심을 갖는다. 다른 사람의 관심사가 내 관심사가 되도록 하고 그 관심사에 대해 정보를 주고 영감을 주고자 노력한다. 이 때문에 내가 쓴 책엔 오랫동안 연구해 얻어낸 학문적 성취가 아니라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것, 그들의 관심사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독자들이 미술 신화에 관심을 가질 것 같다는 생각에 『신화 그림으로 읽기』(2000)라는 책을 썼고, 해외 미술과 미술관에 대해 궁금해할 것 같아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1995), 『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 미술』(2006)이라는 책도 썼다. 또 일반인들이라면 화가가 그리는 모델에 대해서도 궁금해할 것 같아 『그리다, 너를』(2015)을 쓰기도 했다.

Q. 최근 많은 사람들이 현대미술은 난해하다는 생각에 현대미술과 예술가에 반감을 갖기도 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A. 반감이 생길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모르는 대상을 알기 시작하면 기존에 가지던 경계심, 두려움이 사라진다. 현대미술도 마찬가지다. 현대미술 작품 중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들이 꽤 있다. 이런 작품에 불편함을 느껴 반감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둬야 하는 것은 작품은 필연적으로 작가의 생애를 반영한다는 점이다. 어떤 작가들은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작품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이 어떤 작품을 봤을 때 이해하기 어렵고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그 작품에 작가가 생각하는 사회의 문제, 실존과 관련된 고민 등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를 하나씩 파악해 갈 때 두려움이 해소될 수 있다. 또 난해한 현대미술 작품이 있는 반면 이해하기 쉽고 즐기기 쉬운 현대미술 작품이 있기 때문에 취사선택해서 본인에게 맞는 미술을 고르기를 권유한다. 현대미술에 반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본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작품부터 보면 되고 현대미술 전부가 싫다면 고전 작품부터 보면 된다. 감상은 일종의 놀이이기 때문에 본인이 즐길 수 있는 작품부터 감상하길 바란다.

Q. 미술평론가를 희망하는 본교 후배들에게 조언을 부탁한다.

A. 미술평론가도 결국 콘텐츠 크리에이터라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미술과 사회, 미술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는 사람이 평론가이다. 최근 다리를 놓는 방법이 다양해졌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팟캐스트, SNS 등 다양한 미디어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평론가는 종이라는 매개로만 미술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지 않는다. 항상 다양한 미디어를 이용해 사람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콘텐츠를 창조해야 한다. 나 역시 EBS <청소년 미술감상>, <이주헌의 미술 기행> 등의 시리즈물을 찍기도 했고, <세상을 바꾸는 시간> 강연, 기업 강연 등을 하며 다양한 형태로 다리를 놓고 있다. 또 평론가 역시 가치를 창조하는 창조자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미술가와 평론가를 보면 미술가는 창조자이고, 평론가는 미술가의 창조작을 비평하고 해설하는 일종의 해설자로 볼 수 있다. 평론가는 미술가의 부수적인 존재, 미술가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평론가 또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의식을 바꾸며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이다.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 역시 가치창조이기 때문이다. 작품을 다양하게 바라보는 관점이 결국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게 하고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대의 변화에 따라 콘텐츠를 창조하고 가치를 창조하는 크리에이터로서의 평론가가 되길 바란다.

이소현 기자  sohyun0911@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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