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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도시로의 여행, 『경주』(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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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는 능을 보지 않고 살기는 힘들어요.”

우리는 사는 동안 죽음을 마주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여기 도심 한가운데 무덤이 있는 곳, 죽음과 삶이 함께 공존하는 곳이 있다. 바로 경주다. 경주는 수학여행의 메카라고 불리며 많은 이들에게 학창시절 추억의 장소로 기억되곤 한다. 하지만 영화 <경주>는 이와 전혀 다른 경주의 매력을 보여준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2011)가 파리의 아름다움을 조명한 영화라면, <경주>는 경주를 느리면서도 고요하고 묘한 느낌을 주는 공간으로 표현한다.

영화는 한 사람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 북경대 교수 최현은 친한 형의 장례식 참석을 위해 한국에 들어온다. 그러다 문득 7년 전 친한 형과 함께 경주의 어느 찻집에서 보았던 춘화(春畫)를 떠올리고 무작정 경주로 떠난다. 한 명의 죽음으로 시작된 그의 여행은 뜻밖의 상황들을 마주한다. 기자는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묘한 경주 여행을 시작했다.

 

최현: 이렇게 자그맣게 춘화가 하나 그려져 있었는데…….

윤희: 그 그림에 왜 관심을 가지세요?

최현: 아뇨……. 아닙니다.

윤희: 제가 여기 인수할 때 손님들이 하도 농을 해대니깐 그냥 벽지로 덮어버렸어요.

기자는 먼저 최현이 춘화를 보았던 찻집에 가보았다. 영화 속 찻집 ‘아리솔’은 배경이 되는 찻집의 실제 이름이다. 실제 영화가 개봉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기자가 방문하였을 때 찻집은 이미 폐업한 상태였다. 간판에는 희미하게 아리솔이라는 글자만 남아있을 뿐 가게 안은 풀만 무성히 우거져 있었다. 기자는 찻집에 그려진 춘화를 실제로 보지 못한다는 아쉬운 마음에 자리를 뜨지 못하고 가게 주변을 빙빙 맴돌기만 했다. 그리고 이내 카메라를 꺼내 아무도 없는 가게 안을 찍기 시작했다. 마치 찻집 밖에서 핸드폰으로 찻집 사진을 찍었던 최현이라도 된 것처럼.

아리솔은 최현과 찻집 주인인 윤희가 처음 만난 곳이다. 윤희는 7년 만에 그 찻집을 방문하기 위해, 그것도 벽에 그려져 있던 춘화를 보기 위해 경주에 왔다는 최현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최현을 이상하게만 여기던 윤희는 그와 대화를 나눌수록 점차 그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윤희는 자신이 속한 계모임 술자리에 최현을 초대하고 둘은 고요한 경주의 밤을 배경으로 최현이 빌린 자전거를 타고 술자리로 가게 된다.

여느 때보다 뜨거웠던 8월 초. 기자는 뜨거운 햇볕을 피해 호숫가의 버드나무 그늘에서 호수를 바라보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인근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네 명의 사람들도 나무 그늘 밑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바람이라도 불기를 기대했지만, 그것은 욕심이었다. 보문호수는 크기에 비해 매우 한적했다. 날씨가 무척 더웠던 탓인지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마 여기쯤이었나?’ 기자는 최현이 앉았던 벤치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를 따라서 오게 된 경주여행인 만큼 그가 앉았던 자리를 찾고 싶었다.

영민: 아니 보문호수에서 모녀가 자살을 했네. 

엄마랑 여덟 살짜리 여자앤데.

 

(중략…)

 

최현: 그럼 혹시 그 여자애 노란색 원피스 입고 있지 않았나요? 

영민: 예….

최현: 제가 대구공항에서도 보고 보문호수에서도 마주친 모녀가 있는데, 그 사람들 같아서요.

 

그날 밤 최현은 보문호수에서 만났던 모녀가 자살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윤희와 같이 참석한 술자리에는 윤희 이외에도 세 명이 더 있었다. 그리고 뒤늦게 형사인 영민도 합류하게 된다. 영민은 보문호수에서 자살한 모녀의 사건을 조사하다 늦었다고 했다. 이에 최현은 낮에 대구 공항과 보문호수에서 마주쳤던 모녀가 그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최현으로서는 이상한 날일 수밖에 없었다. 이유인 즉, 친한 형의 장례식을 마친 후 그날 마주친 모녀의 자살 소식까지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루에 세 명의 죽음이 지나간 그의 하루는 죽음이 우리의 인생 저 멀리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 했다.  최현은 문득 자신 또한 다른 죽음들을 보며 죽음과 가까이 살아간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참 동안 호수를 서성거리며 그가 앉았던 벤치를 찾던 기자는 물이 깊으니 조심하라는 표지판을 보고 두 모녀가 떠올라 성급히 발걸음을 뗐다.

 

윤희: 여기 돗자리 깔고 술 한 잔 더 하고 싶다.

영민: 우리 아버지가 맨날 그랬는데. 다 드시고 돗자리 타고 내려가시고.

윤희: 영민 씨, 난 죽으면 이 안에 들어가고 싶다. 들어가도 돼요? 들려요? 들어가도 되냐고요.

 

대릉원에 들어서자 꽤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나무가 우거진 길을 지나자 마침내 크고 작은 능(陵) 여러 개가 보였다. 언뜻 보면 산처럼 생긴 능에 찬란했던 신라 시대 왕족과 귀족의 죽음이 담겨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여러 죽음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 도시의 사람들은 능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곳은 놀랍게도 눈을 돌리는 곳마다 능이 있었다. 어떤 능은 혼자 우뚝 솟아있기도 하였고 낙타 등처럼 두 개의 능이 붙어있기도 하며 모양은 비슷한 듯 조금씩 달랐다. 좀 더 걸어가니 능 앞에 연못이 하나 나타났다. 더운 날씨 탓에 신경이 예민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연못과 그 옆에 있는 버드나무, 뒤로 능이 보이는 풍경은 이상하게 아름다웠다. 높이 솟은 능은 8월의 뜨거운 햇빛을 받아 더욱 고고해 보였다. 기자는 능 꼭대기를 바라보며 그들이 있던 자리를 되짚어보았다.

모임이 끝나고 술에 취한 윤희와 영민, 최현은 경주의 고요한 밤거리를 걷는다. 그러다 윤희가 낙타 등 모양의 능 위로 올라가자 둘은 그녀를 따라 올라갔다. 윤희는 영민에게 갑자기 자신이 죽으면 능에 들어가고 싶다며 능에 대고 말을 건다. 마치 능에 머무르는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그 모습은 굉장히 쓸쓸해 보였다. 최현은 반대편 능에 올라가 등을 대고 누워 있었다. 그는 무슨 생각에라도 깊이 잠겼는지 윤희가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한다. 과연 그들은 능 위에서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윤희: 경주에서는 능을 보지 않고 살기 힘들어요.

 

이후 윤희는 창밖으로 능이 보이는 자신의 집으로 최현을 초대한다. 집을 둘러보던 최현은 벽 한편에 그려진 그림에 관심을 갖는다. 이에 윤희는 남편이 죽기 며칠 전에 그가 가져온 그림이라고 말한다. 최현은 이때 윤희에게 죽은 남편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다. 그가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찻집을 운영하고 남편이 죽었다는 사실뿐이었다. 게다가 아내를 중국에 두고 한국에 온 최현이었다. 그런 그가 지금 잘 알지도 못하는 여자의 집에 있는 것이다. 이윽고 밤이 깊어져 잠자리에 들 때, 윤희는 최현에게 신호라도 보내듯이 방문을 살짝 열어둔 채 침대에 눕는다. 그도 눈치를 챘는지 그녀의 방문 앞에서 망설이지만 그는 욕망을 참는다. 어쩌면 이는 그가 느리고 고요한 경주라는 공간에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최현은 타인의 죽음이 담긴 하루를 보내며 삶에 대한 허탈함을 느끼고 자신의 욕망이 사소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결국 최현은 아내가 보낸 음성 메시지를 듣고는 윤희의 집을 나선다.

기자는 대릉원에서 나와 경주의 길을 잠시 걸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 식당을 나오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 등 그들에게서 묘한 감정을 느꼈다. 수많은 죽음을 간직한, 오랜 시간이 담겨있는 경주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만약 기자가 공동묘지 앞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보면 죽음이라는 중후한 무거움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할 것 같다. 그런 무게감에도 흘러가고 있는 시간과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경주의 모습은 낯설었다. 집으로 올라오는 길, 영화 속 윤희가 능 안에 누워있는 누군가에게 한 말이 떠올랐다. 어쩌면 우리는 그러한 죽음에 대한 슬픔을 간직한 채 꿋꿋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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