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21.3.31 수 13:48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S동 211호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다

기자는 중학교 때부터 언론인을 꿈꾸기 시작했다. 평소에 글쓰기를 좋아하는 편이었고, 뉴스를 보면서 저렇게 취재를 나가서 무엇을 하는지 막연하게나마 궁금해하기도 했었다. 때문에 기성 언론들의 기사를 보며 나만의 기사를 써 보기도 했고, 학교에 언론인이 특강을 오면 항상 참석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자 노력했다. 그랬기 때문에 기자의 눈에 ‘홍대신문 수습기자 모집’이라고 적힌 포스터가 포착된 것은, 지구가 돈다는 사실만큼이나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처음으로 신문사에 출근한 날, 당시의 신문사는 어색함 그 자체였다. 선배 기자들은 엄청난 속보가 들어온 것 마냥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그것에서 나오는 무언의 압박감에 기자는 신문사 일이 만만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신없는 와중에 기자를 포함한 동기들은 기사 작성 교육을 받고 회의를 통해 첫 기사를 배정받았다. 일정이 끝나고 어느덧 시간은 밤 10시 반. 눈앞이 캄캄했다. ‘여기... 원래 이런 건가?’ 기자가 생각했던 언론사와는 다소 동떨어져 있던 모습에 당황스러웠다. 그러자 마음 한구석에 모르고 있었던 두려움이 싹트기 시작했다. ‘내가 과연 기사를 잘 쓸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머릿속을 휘젓고 있었다. 다행히 선배 기자의 도움과 함께 첫 기사를 완성했고, 기자가 쓴 기사가 지면에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기사 맨 끝에 적힌 ‘김주영 기자’라는 다섯 글자가 기자에게 주는 희열감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었다. 마감을 마치고 봉투 하나를 받았다. 봉투에는 선배 기자들이 쓴 격려의 글과 함께 원고료가 들어 있었고 그와 함께 기자의 걱정들은 눈 녹듯 사라졌다. ‘그래, 돈 받고 일하는데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부푼 마음으로 신문사를 나와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 받은 원고료로 무엇을 할지 고민하니 문득 아빠 생각이 났다. 분명히 아빠도 이렇게 일하시고 받으신 돈으로 가족들 먹일 생각, 저축할 생각으로 가득한 채 밤늦게 퇴근길에 오르셨으리라 생각하니 부모님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신문사에 들어오고 좋은 일만 있지는 않았다. 같이 들어왔던 동기들 중 몇몇이 먼저 퇴사의사를 밝혔고, 이 때문에 답답하고 허탈한 마음이 들었던 때도 있었다. 다행히 새로운 동기들이 들어와 금방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문사 일이 익숙해질 때 즈음 다가온 기초훈련, 소위 ‘방중’은 기자에게 큰 내상을 입혔다. 하루에 2시간도 자지 못하고 기획서를 쓰다 보니 힘이 부친다는 것을 느꼈고,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나?’라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면서 선배 기자들이 새삼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들도 기자와 같은 고난을 겪었을 것이고, 결국 이 신문사에 남아있기로 결정한 것일 테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을 바꿔보니 신기하게도 뭔가 할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자가 겪고 있는 고난을 이겨낸 산 증인들이 바로 옆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식이 생겨난 것이다. 동기들 역시 서로 격려하며 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고, 덕분에 방중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신문사에 들어온 이후 얻었던 가장 큰 깨달음은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이 없다’였다. 입사 초반만 하더라도 헤매기 일쑤였고 두려움도 있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마음을 굳게 먹으니 쓰지 못할 것 같던 기사도 쓸 수 있게 되었고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선배 기자들이 이야기했듯 신문사는 고난, 도전, 시련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이자 교훈이라고 받아들인다면, 삶의 중요한 터닝포인트로 작용할 수 있는 곳이 신문사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기자는 노력하고 있다. 신문사에서의 경험을 통해 진정한 기자로 거듭나기 위해.

김주영 기자  B881029@mail.hongik.ac.kr

<저작권자 © 홍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