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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처벌보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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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낙태죄 폐지를 놓고 정부와 의료업계, 여성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현행 헌법 제269조 1항에 따르면 부녀자가 약물 등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한다. 다만 △우생학적 정신질환 △전염성 질환 △강간, 준강간 △혈족 임신 △모체의 건강을 심히 해치는 경우를 예외로 두고 있다. 이 중 산모의 건강을 해치는 경우 낙태를 할 수 있게 하는 예외 조항은 그 기준이 모호해 의사의 재량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지난 2012년 헌법재판소는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는 형법 제269조 1항과 낙태 수술을 한 의사를 처벌하는 제270조 1항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당시 헌재는 “태아에게도 생명권이 인정되어야 하고 태아를 성장단계에 따라 보호의 정도를 달리하는 것은 정당화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또, 낙태가 공공연하게 이뤄져 생명에 대한 경시 풍조가 확산될 우려마저 없지 않다고 설명했다. 8월 17일(금)에는 복지부가 불법 낙태죄를 집행한 의사에게 의사 자격 1개월 정지 행정처분을 내리기도 했다. 이처럼 임신중절에 대한 논의는 태아의 생명권과 태아가 인간으로 규정되는 시점에 초점을 맞춰왔다. 이에 따라 태아가 인간이 되는 시점부터는 임신중절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난다. 하지만 태아를 인간으로 정하는 기준은 모호하다. 어떤 순간을 기점으로 그전까지는 비(非)인간, 그 후를 인간으로 규정하는 임의적인 기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의학계에서는 보통 10주 차만 되더라도 태아가 얼굴, 팔, 다리, 손가락, 발가락을 갖춘다고 하지만 엄밀히 말해 10주 차 태아를 성인과 똑같은 인간으로 놓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태아의 생명권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우 태아를 인간으로 규정하는 시점부터는 산모의 목숨이 위태로울지라도 산모는 임신중절을 할 수 없다. 하지만 태아의 생명권이 산모의 생명권보다 중요하다는 명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때문에 최근에는 태아의 생명권과 함께 산모의 자기 결정권으로 논의의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산모의 목숨이 위급할 경우 산모는 스스로 태아의 생명을 포기할 수 있다는 주장도 대두된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더 윤리적이고 덜 윤리적인지에 대한 기준은 모호하다. 이와 같은 논쟁은 제3자가 태아의 생명권을 논하면서 임신중절의 옳고 그름을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제3자의 입장에서 태아의 생명을 직접 해하는 일이 더 비윤리적일 수 있으나, 이는 산모에게 목숨을 버리라고 강요하는 셈이다. 주디스 톰슨은 생명권이 타인의 몸에 대한 사용권 내지 사용 연장권을 가짐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임신한다고 하여 산모가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여 아이의 생명 유지를 보장해야 할 ‘의무’는 없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는 임신중절에 있어 절대적인 반대와 절대적인 찬성은 없다고 밝힌다. 그의 주장은 아이와 산모를 상호의존적 존재로 보지 않고 서로 아예 관계없는 존재로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긴 하나, 산모의 생명권에 대한 논의를 진지하게 고민했다는 점에서 돌이켜 볼 만하다.

물론 산모의 생명권이 위험하지 않음에도 임신중절을 자유롭게 허용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산모의 생명이 위험하다는 징후를 발견했을 때, 적어도 임신중절을 할 수 있는 결정권을 산모에게 줄 수 있는 구체적인 법안 마련이 필요하다. 또한, 산모와 아이가 독립적인 개체가 아닌 상호 의존적이라는 사회적 인식도 필요하다. 아이의 생명권은 산모의 배 속에서 자라므로 모체와 독립될 수 없으며, 산모 역시 임신하였다고 아이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가 2005년 발표한 낙태 추정치는 34만 건(출생아 40만 명)이었다. 2010년 16만 8천 건으로 감소했으나, 출생률 감소를 감안한다면 낙태 비율은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실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올해 가임기 여성 2,00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여성 21%가 임신중절을 경험했으며, 임신 경험자 중 낙태를 경험한 여성은 41.9%였다고 밝혔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정부의 무조건적인 처벌 규정은 사회적인 갈등만을 일으킨다. 임신중절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살피고, 산모와 태아의 생명권 모두를 존중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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