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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조력자가 아닌 주인공으로 스크린에 나타나다작품 속에 녹아든 여성 주인공의 삶

온전히 여성 주인공이 진취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시나리오의 영화나 드라마를 본 경험이 있는가? 아마 쉽게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여성 캐릭터는 남성 캐릭터에 비해 비중도 적고 보조적인 역할에만 그쳐왔기에 점차 영화계는 자성의 목소리를 높여 왔다. 이 밖에도 영화계에서 여성 감독의 부재 또한 꾸준히 지적되는 문제 중 하나이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올해 발표한 「소수자 영화정책 연구-성 평등 영화정책을 중심으로」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감독의 부재가 여성 캐릭터의 부재로 연결되며, 호주의 경우 남성감독의 영화에서는 전체 등장인물 중 여성 비율이 24% 정도지만 여성 감독의 영화에서는 그 비율이 74%로 증가했다고 한다. 이제 여성 감독과 여성 주인공이 중심이 되는 영화 세 편과 미국 드라마(이후 미드)에서 여성 주인공의 당당한 삶을 살펴보자.

한국 최초의 여류 감독 ‘박남옥’의 영화 <미망인>(1955)은 홀로 어린 딸을 키우며 살아가는 미망인 ‘이신자’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이 영화의 시작은 ‘이신자’가 돈이 없어 학교에 가기 싫다는 딸 ‘주’를 달래는 장면이다. 첫 장면부터 당시 사회가 여성이 홀로 아이를 키우기가 쉽지 않은 시대임을 보여준다. 영화의 주인공인 ‘이신자’는 한국전쟁 이후 남편을 잃고 홀로 아이를 키우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잘생긴 이택균의 유혹을 받지만 그를 뿌리쳐내고 생활전선에 뛰어든다. 당시 사회는 여성에게 집안일과 정조, 효를 강조하던 전통적 가부장적 사회로, 여성이 생계를 책임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당시 사회가 제시하는 여성상과 반대의 삶을 살면서도 고난 속에서 웃음을 잃지 않고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이신자’는 당시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신여성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당시 감독이 바랏던 여성의 모습을 담아낸 것이다. 한편 또 다른 주인공인 성진의 아내는 남편의 바람을 의심하며 자신 또한 젊은 남성과 불륜을 저지른다. 그리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함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당당하게 표출하는 유한마담(생활이 넉넉하여 놀러 다니는 것을 일삼는 부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성진의 아내의 모습 또한 그 당시 사회가 요구하던 전통적인 여성상과는 사뭇 반대되는 모습이다. 이 작품은 지난 1977년 제1회 서울여성영화제를 계기로 한국 최초 여성 영화감독의 작품으로 재조명되었다. 세파에 부딪혀 힘들게 생활한 ‘이신자’의 삶을 잔잔하게 풀어낸 이 작품은 아직도 각종 프레임에 부딪히는 여성들의 삶을 돌아보게끔 하는 작품이다.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2016)는 흑인과 여성이라는 점이 모두 약점이 되었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천부적인 수학 능력을 지닌 흑인 여성 캐서린 존슨과 NASA 흑인 여성들의 리더이자 프로그래머인 도로시 본, 흑인 여성 최초의 NASA 엔지니어를 꿈꾸는 메리 잭슨은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데 가장 핵심적인 수학 공식을 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당시 사회는 인종뿐만 아니라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한 시기였다. 그들은 회의에 참석할 수도 없었고, 화장실을 가려면 무려 800m의 거리를 뛰어가야 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했지만 그들의 열정은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그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능력을 아낌없이 발휘하였고, 결국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데 큰 기여를 한다. 메리 잭슨은 당시의 사회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앞서갈 기회가 생기면 결승선을 옮긴다니까!” 비록 차별이 심한 사회였지만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사회의 프레임 속에 가두지 않았고, 극히 소수이지만 그들을 반대하여 차별했던 사람까지 변화시켰다.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여겨 볼만한 것은 세 명의 주인공이 보여주는 용기와 안목, 그리고 인내이다. 수없는 질타와 편견의 시선에서도 묵묵히 이겨내는 인내와 그럼에도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밝힐 수 있는 용기는 여성과 인종에 대한 차별에 반대하는 진취적이고 선구적인 여성 주인공의 면모를 잘 드러내었다. 그러나 그들이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우주선 발사의 ‘숨은’ 영웅이라는 점은 아쉽지만, 결국 흑인으로, 또 여성 과학자로서 어려움을 이기고 공로를 인정받는 결말은 매우 고무적이다.

‘히든피겨스’가 흑인 여성 차별 문제를 지적했다면 여덟 명의 여성이 다이아몬드를 훔치기 위한 과정을 유쾌하게 담아낸 <오션스 8(Oceans 8)>(2018)는 기존 인종 차별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다양한 인종의 여성 주인공들이 범죄 구상부터 실전까지 스스로 모든 것을 해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덟 명의 여자들은 전과자, 유명 배우, 사기꾼, 주부 등 각자 처한 위치와 상황이 다양하고 인종도 다르지만 각자 자신만의 특별한 능력을 내세우며 다이아몬드 ‘투생(Toussaint)’을 훔친다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뭉친다. 이 영화가 기존의 영화들과 다른 이유는 다양한 인종의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앞세웠다는 점도 있지만, 기존의 유쾌함을 추구하는 케이퍼 영화(무언가를 강탈 또는 절도행위를 하는 모습과 과정을 상세히 보여주는 영화)와는 조금 다르게 페미니즘적인 요소를 담아냈기 때문이다. 모든 일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여성 스스로가 모든 것을 해낸다는 설정은 여성이 남성보다 약하고 조력자가 필요하다는 인식의 탈피를 반영한다. 이 영화는 여덟 명의 여성들이 목표했던 바를 이루고, 다른 보석들도 얻게 된다는 결말로 마무리된다. 더 나아가 이 모든 계획의 구상자이자, 리더 격인 데비가 예전에 자신을 배신한 남자친구에게 복수하는 장면은 통쾌함까지 선사하였다. 큰 고난 없이 목표를 달성하고 용의 선상에서도 쉽게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관객을 들었다 놓는 극적인 요소가 없어 지루해 보일 수 있지만, 기존 영화와 다르게 여성 캐릭터끼리 만들어낸 작전의 치밀하고 계획적인 면모와 그들만의 유대감을 들여다볼 수 있다. 

어머니가 남긴 낡은 술집을 함께 운영하기로 한 자매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비다(Vida)>(2018)는 남녀 차별 탈피와 인종 차별 탈피에서 더 나아가 다양한 성 소수자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LA의 이스트사이드에서 자랐지만 집을 떠나 살고 있던 자매가 엄마의 부고를 듣고 고향으로 돌아온 후, 엄마가 여성 파트너와 결혼을 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소식에 자매는 큰 충격을 받고 돌아가신 엄마를 원망한다. 각기 다른 지역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돌아온 두 자매는 고향에 머무르며 엄마의 유산인 술집을 와인바로 운영하기로 한다. 동생 린다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빙자하여 약혼자와 아이까지 있는 전 남자친구를 유혹하려는 등 남성에게 의존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에 그녀의 언니인 엠마는 일찍 철든 모습을 보이며 시종일관 냉정하게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으려고 한다. 엠마와 린다는 고향에서 환영받는 존재는 아니었고, 구설수에 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자매는 와인바를 함께 운영하며 슬픔과 고난들을 견뎌내고 성공적으로 고향에 정착하게 된다. 이 드라마의 작가진은 모두 성 중립성을 주장하는 라티넥스(All Latinx) 이다. 이러한 작가진 구성은 미국 TV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작가진 중 한 명만을 제외하곤 모두 여성이며, 작가진의 반은 퀴어이다. 또한, 시즌1 에피소드 6개 중 2개를 남성 감독이, 4개는 여성 감독이 연출했다는 점에서 여성 주인공과 성 소수자에게 더욱 공감할 수 있도록 한다.

 

앞에서 소개한 영화와 드라마 속 여성 주인공들이 당당히 고난을 이겨내는 모습을 통해 점차 여성은 약자로 취급받는 대상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존재로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와 관심이 증가하고, 성 소수자에 대한 시선이 긍정적으로 변화해가고 있다. 여전히 우리 사회 속 페미니즘은 논란의 대상이지만, 공고한 가부장제의 틀을 깨려는 가시적인 시도 또한 늘고있다. 위 네 작품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여성 주인공의 삶을 통해 우리 모두 여성을 속박하고 있는 프레임을 탈피한 새로운 시선으로 삶의 주인공인 그들을 응원해보는 것은 어떠한가.

천지예 기자  jiye1108@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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