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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경지는 어디까지인가, 광기의 예술가들

프랑스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의 <자화상>이라는 작품이 현대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자신의 귀를 자를 만큼 지독한 그의 열정을 그림에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귀를 자르는 그의 행위에 무언가를 향한 지극한 사랑이 담겨있으며 이것을 예술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는 의견이 있는 반면, 혹자는 극단적인 예술성은 정신병에 불과하다고 보기도 한다. 이처럼 영화와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한 예술가는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 또는 관객에게 예술적 전율을 선사한다. 그러나 치밀하고 열정적이며 심지어 광기 어리기까지 한 작품 속 예술가들의 모습은 때때로 충격적이거나 공포스럽기도 하다. 극한의 경지를 추구한 예술가들이 작품 속에서 묘사된 면모를 살펴보며 예술지상주의와 도덕주의의 팽팽한 대립을 이해해보고, 예술의 경지를 어디까지로 설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여 보자.

영화감독 스콧 힉스(Scott Hicks, 1953~)는 예술혼을 불태우다 미쳐버린 예술가의 이야기를 영화로 다루었다. 바로 천재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David Helfgott, 1947~)의 성장을 다룬 <샤인(Shine)>(1996)이다. 그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영국 왕립음악학교에서 피아노를 공부하지만 피아니스트들에게 난공불락의 고지와 같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고 정신이 혼미할 정도의 예술의 경지에 다다르며 결국 연주 후 기절하고 만다.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피아노 연주에 쏟아 부은 것이다. 이후 데이비드는 정신분열증에 걸리며 사람들에게 완전히 잊혀진 존재가 되었지만, 한 카페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악장을 연주하며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샤인>의 절정 부분인 이 장면에서 격렬하게 몰아치는 최후의 코다(Coda, 한 작품 혹은 악장의 끝에 위치하여 만족스러운 종결의 느낌을 선사하는 부분)를 듣고 있으면, 그 엄청난 에너지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출처 : 전병준 일러스트레이터

영화 <샤인>이 예술혼을 불태우다 미쳐버린 개인의 이야기라면, 예술을 향한 욕망이 무고한 타인을 죽음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우리나라의 소설이 있다. 바로 김동인의 『광화사』(1935)다. 주인공 솔거는 보기 드문 추남으로, 유복자에 절대미의 추구자이다. 사람을 피해 산 속에 숨어 살며 은둔생활을 거듭하던 중 아름다운 소경 소녀를 발견하고, 그녀를 미녀도의 모델로 삼고자 한다. 소경 소녀와 밤을 지새우던 중 솔거는 소녀의 애욕에 불타는 얼굴에서 그가 찾는 아름다운 눈을 찾아내지 못하자 발광 상태에서 소경 소녀의 목을 조른다. 소녀가 죽어가며 발로 찬 벼루에서 먹물이 튕겨 나와 미녀도에 아름다운 눈동자가 찍힌다. 이 작품에서 솔거의 행위는 아름다운 눈을 찾기 위한 발광이요, 그것을 찾지 못한 데서 비롯되는 광적인 살인이다. 절대미를 추구하려는 예술적 갈망에서 비롯된 탐미정신과 그것의 좌절이 빚어낸 참사를 다룬 비극적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추악한 현실 속에서 잃어버린 절대미를 광폭적인 탐미정신으로 추구해 가는 인간상을 소설미학으로서 형상화하고 있다.

  광범위한 예술적 광기로 인한 예술인의 고충, 예술의 딜레마까지 다룬 예술 영화로 <파리넬리(Farinelli The Castrato>(1994)를 꼽을 수 있다. <파리넬리>는 카스트라토(여성의 소프라노 수준으로 노래할 수 있도록 어릴 때 거세당한 남성 성악가)가 유행하던 17세기의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파리넬리’는 작곡가로서의 야망을 가진 형에 의해 거세당한 후 남성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한 채 유럽 전역에서 최고의 성악가로 활동한다. 자신의 광기어린 예술정신을 동생의 재능으로 실현시키려던 파리넬리의 형은 거세당한 트라우마를 잊기 위해 마약에 의존하는 파리넬리의 행위를 묵인한다. 타의에 의해 평생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고 피폐해져 가는 한 예술인의 비극은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전경과 화려한 무대 배경 위에서 극대화된다. 비극적인 예술인의 모습에 기절할 정도의 황홀함을 느끼는 관객의 모습 또한 광범위한 예술적 광의의 절정을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까지 그를 끈질기게 괴롭힌 성불구자 콤플렉스와 광기어린 형의 예술혼으로 인해 관객은 예술과 인권의 경계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더불어 관객을 기절시킬 정도의 예술혼을 지닌 예술가를 불행하게 만든 것도 결국 그의 재능이라는 점에서 예술의 딜레마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의 무의식 속에는 광기어린 예술 정신이 잠재되어 있다. 어떤 계기 또는 재능으로 인해 그것이 발현되는지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관객 또는 독자의 입장에서, 어딘가 기괴하거나 미친 것처럼 보이는 예술가의 모습을 통해 예술과 도덕의 경계에 대해 심사숙고하기도 하고, 자신의 광기를 거리낌 없이 표출하는 그들의 모습에 대리만족하며 쾌감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오랜 시간 논쟁의 중심이 된, ‘예술과 도덕 중 어떤 것이 우위에 있는가?’라는 문제의 답은 무엇일까. 광기어린 예술가의 열정에 박수를 칠 것인지 그의 괴이한 예술 작품에 눈살을 찌푸릴 것인지 선택은 영원히 관객의 몫이다.

이산희 기자  ddhh1215@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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