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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 소리와 함께 발전한 예술카메라와 동행하여 이뤄낸 하이퍼리얼리즘의 시대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사람들은 누구나 사진을 찍거나 사진에 찍힌다. 요즘은 주로 휴대폰 카메라를 이용하여 사진을 찍지만 이전에는 디지털카메라를, 그 이전엔 필름카메라를 사용해왔다. 보통의 사람들이 아는 건 딱 여기까지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상 속에서 흔히 사용하는 카메라의 시초는 무엇일까? 카메라가 역사 속에서 어떠한 흐름으로 이어져 왔는지 살펴보고 기존의 영역을 뛰어넘어 예술의 영역까지 침투해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어낸 카메라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자.

카메라, 그 발자취를 따라가다

카메라의 명칭은 ‘아치 모양의 방’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유래되었으며 그 기원은 15세기경 르네상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들은 캔버스 위에 투사한 이미지를 스케치 가이드로 활용하기 위하여 일명 ‘어둠상자’를 이용했는데, 이것이 바로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다. 옵스큐라는 어두운 방의 지붕이나 벽 등에 작은 구멍을 뚫고 그 반대쪽의 하얀 벽이나 막에 옥외의 실상(實像)을 거꾸로 찍어내는 장치다.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도 옵스큐라의 원리를 알고 있었다. 그의 문집인 『여유당전서』에는 암실에 뚫린 작은 구멍을 통해 들어온 빛으로 사람의 모습을 반대편 벽에 거꾸로 비추고 이를 그대로 따라 그리는 방법이 적혀있다. 이후 1826년에는 프랑스의 화학자 조셉 니엡스(1765~1833)가 옵스큐라의 광상(光像)을 고착시키는 데 성공하면서 최초의 사진을 찍었고 이를 헬리오그래피(Heliography)라고 불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프랑스의 화가 다게르(1787~1851)는 약 10년간의 실험을 통해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으로 불리는 사진술을 완성시키며 큰 기술 발전을 이루어냈다. 이는 동판 위에 요오드 증기를 쏘아 만든 것을 감광판을 통해 촬영하고, 그 감광판을 수은 증기에 쏘아 눈에 보일 수 있도록 현상한 후 소금 용액을 통해 요오드화은을 동판에서 제거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다게레오타입은 실제 대상물에만 상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한 번의 촬영으로 한 장의 사진만을 얻을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이 한계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의 과학자 탤벗(1800~1877)에 의해 해결되었다. 그는 음화를 만든 후에 그것을 인화하면서 양화로 변경하는 현대적 사진의 방법인 칼로타입(calotype)을 고안했지만 이는 선명도에 있어서 다게레오타입에 미치지 못하였다. 산업혁명 후엔 습판사진법이 발명되었고 습판이 건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건판사진법이 이어서 발명되었다. 이후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디지털카메라 시대가 도래하였고 기존의 필름카메라 대신 빛의 밝기에 따라 전류를 내보내는 CCD(Charge Coupled Device) 센서의 출력을 디지털로 바꿔 메모리 소자에 기록하였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기술도 급속하게 향상되었고 카메라도 이를 따라가며 지금은 터치 카메라, 드론 카메라 등 다양한 변신을 하는 중이다.

디에고 코이, '반사'

카메라와 예술, 서로 활용하며 발전하다

우리가 눈여겨볼 점은 카메라의 발명과 발전이 예술 영역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예술 분야에서도 특히 회화의 극사실주의에서 카메라의 여파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흔히 포토아트 또는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이라 불리는 극사실주의는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일어난 새로운 회화 양식을 의미한다. 주로 일상적인 현실을 마치 카메라로 찍듯 생생하게 그려내는 것이 특징이며 작품에 주관을 배제하고 완전한 중립을 지키며 사진처럼 극사실적으로 표현한다. 한편으로는 기존의 추상미술에 대한 반발을 보여주고 다른 한편으론 사진 그 자체에 대한 모순점을 시사한다. 극사실주의 작품은 사람의 손으로 그린 그림이지만 실제 사진과의 구별이 어렵거나 사진보다 더욱 현실 같아서 사람들로 하여금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즉 현실을 단순히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의 능력을 뛰어넘어 ‘현실 너머의 현실’을 그려내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들은 단지 작품을 실재와 똑같이 그리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보는 사람들이 가상과 현실의 경계선에서 고민을 하도록 만든다. 이탈리아 작가 디에고 코이(1992~)는 세밀한 음영과 밀도를 통해 인간이 가진 긍정적 모습은 흰색, 부정적 모습은 검정으로 그려내며 인물의 사실적 표현을 추구한다. 대표적인 작품인 ‘반사’는 감싼 얼굴과 감은 눈을 통해 현대 사회를 향한 절망과 분노를 나타낸다. 해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하이퍼리얼리즘 열풍이 불었는데, 이영수 작가의 이슬방울 그림도 대표적인 극사실주의라는 평을 받고 있다. 푸른 잎 위에 투명하면서도 영롱하게 반짝이는 물방울은 마치 카메라를 이용해 촬영한 듯 사실적이며 자세히 들여다보면 빛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미적인 감각까지 공존하고 있다. 또한 이슬방울을 자세히 살펴보면 방울 표면 위로 섬세한 붓 터치와 나무, 산 등의 자연까지 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위 화가들이 작품을 마치 카메라로 촬영한 듯 그렸다면, 설경철 화가는 이와 좀 색다르게 카메라를 이용하여 작품을 완성시킨다. 그림을 먼저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뒤 캔버스에 프린트하고 그 위에 다양한 오브제를 배치하여 제작하는 것이다. 캔버스 위에 펼쳐진 사물은 사실적으로 그려지면서도 화면에 배치된 오브제는 비현실적인 공간에 위치함으로써 실제와 가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관객의 눈을 혼동시킨다. 한편 박기수 사진작가의 개인전 『그림 속에 풍덩 빠진 사진 한 장』은 그림 같지만 사진 같고, 사진 같지만 그림 같은 극사실주의 그림들을 ‘사진’이라는 영역으로 표현했다. 이는 삼각대를 사용하지 않고 한 곳에서 부동자세로 피사체를 바라보며 수백, 수천 장을 촬영한 작품을 전시했다. 그는 몸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떨림 등이 만들어낸 사진 이미지 작업을 통해 추상적이고 회화적으로 나타내어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허물어트린 것이다. 또 카메라는 회화작품을 촬영하여 보관하는 목적으로도 흔히 사용되고 있다. 구글문화연구소의 주도로 개발된 ‘아트 카메라’는 10억 화소의 초고해상도로써 회화작품을 구역별로 나누어 반복적으로 촬영하고, 촬영된 각 구획의 사진을 퍼즐을 맞추듯 조합한다. 반 고흐, 모네 등 유명한 예술가들의 작품이 이미 1천 점 이상 촬영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확대를 해도 화면이 깨지지 않으며 뭉쳐있는 물감의 질감, 붓의 흔적, 갈라진 캔버스의 표면 등이 마치 현미경으로 관찰하듯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이렇듯 카메라와 예술은 작품의 완성에 서로를 이용하고 함께 발전해나가고 있다.

이영수 화가의 Natural Image (Poppy II)

하이퍼리얼리티, 현실과 가상의 경계선에 선 우리

이제 ‘하이퍼리얼리즘’이라는 단어는 회화라는 한 영역에만 속하는 것이 아닌 일상 속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용어가 되어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드라마 ‘라이프’,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등은 하이퍼리얼리즘 드라마란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이처럼 우리가 흔히 현실에서 겪는 ‘리얼함’을 담아낸 것을 하이퍼리얼리즘이라고 표현하며 가상과 현실이 서로 공존하는 공간 속에서 하이퍼리얼리즘으로 구현된 가상 세계를 하이퍼리얼리티라고 부른다. 프랑스 사회학자 질 들뢰즈(1925~1995)는 이러한 가상 세계를 현실 세계와 동등한 또 다른 세계로 인정하고 이를 ‘시뮬라크르 시대’라고 표현했다. 인공지능 자율주행이나 가상현실을 이용하여 치매를 치료하는 프로그램 등은 이러한 시뮬라크르 시대를 잘 설명해준다. 하지만 이는 현대사회가 현실과 가상의 경계선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는 말을 뜻이기도 하다. SNS라는 가상 세계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는 살아가는 모습을 SNS를 통해 사람들과 공유하지만, 어느 순간 공유하기 위한 것이 아닌 단순히 SNS에 올리기 위한 거짓의 모습들을 올리곤 한다. 가상 세계가 현실 세계를 지배하고 주객이 전도된 대표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박기수 작가의 '밤에 그린 사진'

이렇듯 카메라의 발명부터 예술과 동행하며 발전한 모습까지 살펴보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도 어찌보면 하이퍼리얼리즘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개인이 모여 사회라는 가상의 공동체가 생겨났고, 사회가 점차 커지면서 권력과 계급을 생성한다. 결국 개인이 만들어낸 사회가 오히려 개인을 억압하는 모순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듯 ‘진짜’와 ‘가짜’ 사이에서, ‘현실’과 ‘가상’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우리에게 하이퍼리얼리즘 작품은 리얼리즘이 극단화된 형태라고도 볼 수 있지만, 우리로 하여금 무엇이 진짜인지를 구별하도록 고민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남주 기자  skawn1791@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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