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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도 살았다고 말할 수 없었던 그녀의 차가운 혼, 소리 없이 흐느끼다신용우 작품 『명성황후는 시해 당하지 않았다』 에 담긴 조선의 마지막 자존심

 

어릴 적 날씨가 좋으면 할머니와 손을 잡고 인근의 명성황후 생가를 거닐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하지만 기자가 다시 찾아온 날, 이곳의 날씨는 가시지 않은 장마 전선이 하늘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듯 끈질기게 어두침침했다. 그러다 문득, 이곳에 들를 때마다 할머니께서 들려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명성황후를 보면 과거 힘들었던 옛 여인들이 생각난단다. 그 누구보다도 강인했던 그녀의 정신이 지금의 이 할미를 있게 했단다.”

 

경기도 여주에서 평생을 보내셨던 할머니의 인생을 가만히 돌이켜보면, 어쩌면 명성황후는 단순히 한 나라의 왕비가 아니라 자식과 남편을 제 목숨같이 지켰던 우리네 어머니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제강점기, 6·25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IMF까지 우리 역사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건을 몸소 겪으신 할머니의 손과 얼굴엔 그 깊이를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주름들이 남았지만, 그녀의 눈동자에 담긴 강인한 정신은 기자로 하여금 나태하게 살았던 지난 날을 반성하게 만들었다. 기자는 마치 살아있는 명성황후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듯 경건한 마음으로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그 손이 참 따뜻했지만 그 속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은 되려 뼈 시린 고독함을 느끼게 했다. 신용우 작가(1957~)의 『명성황후는 시해 당하지 않았다』는 조선의 국모가 시해당했다는 중대한 사건을 담았던 에조 보고서가 결코 숨겨진 진실을 담지 못했다고 반박하며 명성황후의 뒷이야기에 대해 새로운 결말을 제시하는 메타픽션(Meta-fiction) 역사소설이다. 에조 보고서에는 담기지 못한, 담을 수 없었던 조선의 거대한 진실과 민족혼을 찾아 걸음을 옮겨보았다.

 

“당신하고 살대며 산 지가 벌써 이십년이 넘었어요. 나 혼자 산 날들보다 더 긴데, 당신 모습 그리고 기침 소리만 들어도 당신 심경을 알아요. 설령 누가 오기로 한 것은 아닐지라도 누군가를 기다리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경기도 여주. 명성황후가 태어난 곳이자, 깊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생가에 들어설 때쯤 하늘에선 마치 누군가를 몹시 걱정하며 기다리는 듯 웅크린 인상으로 기자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 인상을 피해 생가로 도망치듯 몸을 숨겼다. 생가에 들어서자, 명성황후 그리고 이준서와 김소현의 흔적이 기자를 맞이했고 그들의 시선에 따라 조용히 몸을 맡겼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준서와 그의 아내 김소현도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났다. 소현은 어렸을 때부터 동갑내기 벗인 옥분이는 물론 그 오라비인 준서와 자주 어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옥분이가 열세 살 어린 나이에 갑자기 궁으로 들어간다는 결정을 내리자 준서는 이별 전부터 부쩍 외로워했다. 그렇게 옥분이 떠나간 어느 날, 아득히 먼 언덕에서 걸어오는 두 사람을 본 소현은 방으로 들어가 짐승의 털로 만든 겉옷을 걸치고 나왔다. 옥분이었다. 옥분의 걸음걸이를 확신한 준서는 버선발로 옥분을 맞이했다. 하지만 방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을 때까지 왠지  복잡한 기분이었다. 만날 때는 반가운 마음에 모르겠더니 일행이라는 분이 어디서 뵌 듯 했기도 하고 예삿 분은 아니었다. 얼굴에는 기품이 서려 있었고 감히 범할 수 없는 서기(瑞氣)가 살아 움직였다. 순간 준서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기억이 떠올랐다. 바로 중전마마였다.

 

“지금부터 나는 중전이 아닙니다. 죽은 중전이 있을 수가 있나요. 하지만, 중전은 죽었다 해도 나는 살았습니다. 나는 살아있기에 앞으로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앞으로 계속 살기 위해서 두 분이 해주실 게 있습니다.”

 

궁에서 빠져나온 명성황후가 머물렀던 뒤채로 발걸음을 옮겼다. 갑작스레 등장힌 외부인이 안채를 쓸 순 없다며 옥분과 함께 뒤채에 머물겠다고 한 그녀의 소신이 깃든 탓일까. 초가로 된 뒤채임에도 그 높은 기품이 느껴졌다. 뒤편으로는 그녀의 고귀한 정신을 누가 훔쳐 갈까 푸르른 소나무가 빼곡히 들어서 위압감을 주고 있었다. 신발에 묻은 흙을 댓돌에 툭툭 털고 툇마루에 걸터앉아 ‘으흠’ 헛기침을 했다. 중전이 계신 방문을 감히 열어젖힐 수는 없었던 준서도 분명 이렇게 했으리라. 또, 죽은 줄로만 알았던 중전과 동생이 살아 돌아왔음에 평소 먹지도 않고 아껴 두었던 계란을 분명 꺼냈을 것이다. 작은 뚝배기에 계란을 풀고 물을 조금 넣은 후 새우젓으로 간을 해 밥을 할 때 함께 찌고, 그 다음 가마솥 뚜껑을 열어 뜸을 들였을 것이다. 잠시 뒤채와 안채 사이에서 서로 마주한 풍경을 바라보았다. 계란찜을 오랜만에 먹어 보아서 그런지, 계란찜을 빼고 나면 달랑 김치와 동치미, 된장국뿐인 밥상을 맛있게 먹는 중전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또, 중전을 ‘이모’라 불러야하는 소현과 준서, 그리고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었던 중전의 모습은 먼 허공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잠시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하늘이 그녀를 살려준 것일지도 모르는 그 날을 생각하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더욱이 마마를 대신해서 죽을 수 있다면 차라리 영광이옵니다. 마마께서는 국모이십니다. 자식이 부모를 대신해서 죽고 부모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면 그 얼마나 큰 영광이옵니까? 하물며 국모이신 마마를 대신해서 제 한 몸 죽어 마마의 안녕을 도모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나라의 안녕을 도모하는 것도 되는 것이니 얼마나 큰 영광이겠습니까?”

 

우리 민족은 ‘모두’를 위해 살아왔다. 당장 가까이는 가족부터, 멀게는 왕과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쳤다. 일본 낭인들이 궁궐로 난입해 중전을 죽이려는 계획을 들은 홍 상궁은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중전을 대신해 가짜 중전 역할을 자처했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야만했던 그녀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일본, 러시아와 청나라로 인해 정세가 혼란스러웠던 조선의, 혹은 우리 백성들의 마지막 자존심이 아니었을까. 당시 개혁을 도모했던 몇몇의 위정자들은 청나라가 궁궐 내에 변란을 일으킨 것처럼 만들기 위해 별궁에 불을 지르고 고종의 침전으로 들어와 신속히 피할 것을 권했다. 왕의 침전에 거리낌 없이 들어온 그들을 보며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고종과 명성황후는 정변의 기미를 눈치채지 못한 궁궐 수비대를 책망하며 역으로 덫을 피해갔다.

 

“나라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병이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나라를 구했으면 얼마나 좋겠나?…자신의 사욕을 버리고 백성을 위하는 것이 바로 나라를 위하는 것임을 진작 알았더라면 이런 병은 걸리지 않았을 거라는 말이네. 그것을 뒤늦게나마 깨닫게 해줘서 죽어도 여한을 남기지 않게 해준 모든 분들에게 정말 고맙네.”

소설은 명성황후가 동포들과 백성들이 있는 연해주로 떠나가 머나먼 이국땅에서 조선을 지켜보는 것을 암시하며 끝이 난다. 일본, 러시아, 청나라 등 주변의 강국들로 인해 풍전등화(風前燈火)와도 같던 구한말, 그 와중에도 알량한 권력을 이어보겠다는 권력층과 외세에 이리 저리 붙으며 나라의 앞날보다는 자신의 안위를 먼저 챙겼던 위정자들로 인해 결국 조선은 600여 년의 역사를 뒤로 한 채 일본의 손아귀로 넘어가게 된다. 당시 명성황후의 죽음이 조작되었는지 아닌지 진위여부를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지만, 을미사변은 그 자체로서 우리 민족사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임에는 틀림없다. 또 국가의 힘이 극도로 쇠락해졌을 때, 그 왕실과 백성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치욕과 수모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녀는 그 때 능욕당하고 시해 당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니, 그녀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이 나라, 우리 백성의 한이 풀릴 때까지는. 돌아가는 길, 할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를 붙들고 기자는 그저 흐느껴 우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을미년 그 날, 그녀가 죽었다고 누가 말했는가?

김승혁 기자  adprkims45@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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