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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하여

  

  지난 1919년 3월 1일(토), 우리의 조상들은 태극기를 들고 거리에 나왔다. 국민들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일본의 대한제국 강제 침탈을 비난했고, 독립을 꿈꾸었다. 하지만 이러한 독립운동과는 다르게 일본의 곁에서 식민주의 정책에 협조한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을 친일파라고 부른다. 매스컴에는 종종 친일파가 행한 친일행위의 잔재를 청산해야한다는 글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친일파가 행한 친일행위의 잔재를 청산한다는 것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친일파의 정의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친일파란 어떤 사람일까? 사전에서는 친일파를 ‘일제강점기에 일제와 야합하여 그들의 침략·약탈 정책을 지지·옹호하여 추종한 무리.’라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야합’이라는 단어의 뜻이 ‘좋지 못한 목적으로 서로 어울림’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친일파는 일제강점시기 일본과 좋지 못한 목적으로 결탁하여, 그들의 식민정책을 지지한 무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친일파의 정의와 더불어 우리 시대의 ‘친일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3·1운동 이후 일본의 한반도 통치방식이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바뀌고, 일본은 점차 조선을 문화적으로 지배하려 하였다. 조선의 전통을 인정하고 조선인들의 교육권을 보장하려는 태도를 취하면서도, 반일본적인 교육은 배격했으며 각종 신문에 대해 정간과 폐간, 기사 검열을 일삼았다. 이는 이후 일제의 통치방식이 민족말살통치로 바뀌면서 더욱 더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변해갔다. 일본의 문화적 침투가 점점 심해지는 상황에서,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많은 독립 운동가들은 본인들의 사비를 들여 독립운동에 힘썼다. 수많은 신문과 잡지가 발행되었으며, 야학이 성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 시기 조선의 경제상황은 이들을 도와주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시기 조선의 경제 상황은 나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표면적으로는 조선의 경제가 성장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경제성장의 이득을 일본이 챙겨간 것이다. 이러한 생활이 지속되면서 조선 사람들의 경제 상황은 점점 어려워졌고, 가정을 유지하기조차 어려운 사람들이 많아져만 갔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소설 ‘감자’의 작가 ‘김동인’도 마찬가지였다. 1919년, 김동인은 동료문학인들과 함께 문학동인지인 『창조』를 만들었고, 이광수의 계몽주의적인 글쓰기를 비판하며 한국의 국문학 발전을 위해 힘썼다. 또한 그는 3?1운동 격문을 쓰는 등의 자취를 걷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혀 투옥되기도 하였다. 그의 이러한 행동들은 모두 본인의 자비로 행해졌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가산은 점점 기울어져만 갔다. 생계를 유지하기 점점 힘들어진 그는 결국 돈을 지원해주겠다며 일본이 내민 손을 잡게 된다. 그렇게 1938년 2월 4일, 『매일신보』에 「국기」를 쓴 뒤로 그는 일제에 협력하는 글쓰기를 시작하였다. 비단 김동인뿐만이 아닐 것이다. 일제강점기 말 즈음부터 점점 경제적으로 힘든 지식인들이 많이 생겼고, 그들 중 일부는 결국 일본의 편에 서게 되었다. 이러한 지식인들의 행동이 옳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의 행위는 분명 민족의 입장에서 볼 때 민족반역의 일이다.
  지금 현재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는 친일파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친일파는 일제강점기 당시 기득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기득권은 다른 형태로 지금까지 잔존해있다. 그리고 현재 그들의 기득권이 잔존해있는 구조에 아무런 저항 없이 사는 것은 일제 식민주의의 기본적인 사회 구조의 잔재 속에 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우리는 친일을 한 사람들을 찾아 죄를 묻는 것과 더불어 당시 친일행위를 했던 권력자들이 이후에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할 수 없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친일파의 잔재에 대한 관심을 끊임없이 가지고 청산하도록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김동인과 같은 사람들은 일본이라는 거대한 산에 저항하려 노력을 했지만 결국엔 식민지배의 큰 구조에 굴복한 뒤 친일파라 평가받고 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사회에 저항하려 노력하지 않고, 사회의 구조를 바꿀 의지가 없다면, 그리고 침묵한 채 누군가가 해결해주기만을 바란다면, 혹은 그 과정에서 그 기득권이 내민 검은 손에 굴복하고 만다면 우리의 행동도 친일의 잔재일 수 있다.

편집국장 양승조  hiujimi@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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