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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제572돌 기획특집> ‘한글’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1446년 9월, 『훈민정음 해례본』이 반포되었고, 572번째 한글날을 맞았다. 창제 당시 식자층은 이를 중화의 언어와 다른 오랑캐의 언어라 비판하고 배우려 하지 않았지만, 한글은 민중에 널리 퍼져 현재 우리 문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하였다. 구한말 갑오개혁 때 한글은 기존의 한문 대신 공식 문서의 기록 수단으로 채택되었다. 이후 우리는 일상적으로 한글을 접하게 되었지만, 정작 누군가가 한글에 대해 물어봤을 때 우리가 떠올리는 것은 추상적인 이미지들 뿐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한글날을 맞아 우리가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한글의 여러 모습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4면에서는 단순한 문자를 넘어 시각적 이미지로서 기능하는 일상 속 한글에 대해 다룬다. 또한 5면에서는 여백과 화합의 아름다움으로서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을 담은 한글의 조형 원리를 알아보고, 전문가 2인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글에 대한 여러 궁금증을 해소해 보고자 한다. 한글날 제572돌, 익숙함에 잊고 있었던 한글, 그 본연의 아름다움을 향유해보자.

 

훈민정음 향기가 현재에 흐드러지다

▲출처: 스타벅스 공식 홈페이지

일상 속 스며든 한글, 익숙함만큼의 아름다움

거리를 걷다 보면 영어로 된 지면 광고, 간판 등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영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보통은 외국어가 주는 심미적 만족감이 주된 이유로 꼽힌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어떤 사람들은 한국어 화자에게는 외국어인 영어가 좀더 '이미지'처럼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조형적 측면에서 보자면, 한글은 영어보다 각 글자가 갖는 획수가 많아 속 공간의 균등한 분배가 어렵다. 그러나 전공자가 아닌 이상, 한글의 조형적 특성은 우리에게 낯선 것이 사실이다. 한글의 쓰임새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사실은 누구나 알지만, 정작 익숙함에 젖어 그 시각적 특징은 오히려 잊히기 십상이다. 어렵고 생소하지만 알면 알수록 우리 일상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타이포그래피? 시각적 언어 ‘활자’를 다루다

타이포그래피(typography)의 사전적 의미는 활판 인쇄술에서 영어로 활자를 뜻하는 ‘type’과 기록법이라는 뜻의 ‘graphy’가 합쳐진 말이다. 이 말이 생길 당시에는 활자를 이용하는 볼록판 인쇄만 사용됐기에 이는 활판을 뜻하는 동시에 인쇄술 전체를 뜻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 들어와 문자의 레이아웃과 디자인, 즉 글자를 이용한 모든 시각적 표현과 결과물들을 일컫는 영역으로 그 의미를 확장했다.

즉 오늘날의 타이포그래피는 글자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내용과 독자를 매개하는 ‘시각적 언어’인 활자를 활용하는 모든 활동을 뜻한다. 이는 각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교통안내표지판의 타이포그래피는 제한된 공간인 표지판 내에서 운전자와 보행자 모두에게 짧은 시간 내에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2008년 ‘한길체’가 그러한 목적으로 탄생했고, 이는 2010년부터 각종 표지판에 적용되고 있다. 이렇듯 한글 타이포그래피는 그 의미와 역할을 기반으로 사회 변화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왔다.

 

한글꼴, 시대 흐름에 따른 대격변

▲용비어천가,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공병우 타자기, 출처: 넥슨컴퓨터박물관

한글의 글꼴을 뜻하는 한글꼴의 변천 양상은 판단 기준에 따라 여러 방법으로 나눌 수 있다. 한글 타이포그래피 서적 『한글 디자인 교과서』에 따르면 창제 당시부터 오늘날까지 한글꼴의 변천과정은 △창제 당시 한글꼴 △옛활자 △새활자 △원도활자 △디지털활자로 크게 5가지로 구분된다. 훈민정음 창제 시 쓰였던 글꼴은 당시에 주요 필기구인 붓으로 쓰기에 쉽지 않아 획이 끊어진 기하학적 형태를 띠고 있다. 이후 한글이 점차 실용화되면서 한글꼴은 점차 자연스러운 쓰기 형태로 변화하며 보다 균형 잡힌 형태로 발전해나갔다. 1920년대 한글꼴은 일본 바탕체와 돋움체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1930년대에 말에 이르러서는 균형 잡힌 세로쓰기용 한글 활자꼴이 탄생했다. 8.15광복 이후에는 로마자의 영향을 받아 가로쓰기용 한글꼴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후 1949년 공병우 박사가 초성·중성·종성으로 구성된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에 맞게 세벌식 타자기를 구현하며 네모틀을 벗어난 ‘탈네모틀 글꼴’*의 연구가 시작되었고, 1990년대 와서는 가로쓰기 한글꼴이 완전히 정착되었다. 가로와 세로 두 방향을 기본으로 발전하고 있는 오늘날의 한글꼴은 디지털화 되어가는 사회의 변화에 발맞추어 빠르고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다.

 

한글꼴의 끊임없는 연구와 발전

한글꼴은 타자기를 통해 정네모틀에서 벗어나 그 조합에 변모를 거듭해왔고, 컴퓨터의 보급과 함께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다. 그 변화 속에서 탄생한 대표적 연구 사례를 통해 오늘날까지 발전해온 한글꼴을 더 느껴보자.

 

정사각형틀에서 벗어난 국가대표 글꼴, 안상수체

본교 캠퍼스를 거닐다 보면 유난히 눈에 익은 글꼴이 있다. 제4공학관(T동)에도, 신문사가 있는 강당(S동)에도 그리고 시각디자인과 로고에도 있는 글꼴. 바로 ‘안상수체’다. 안상수체는 1985년 안상수 그래픽 디자이너가 발표한 글꼴로 ‘안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는 1976년 조영제, 1977년 김인철, 그리고 1984년 이상철이 했던 한글 실험에서 이어져 탄생한 대표적인 세벌식 구조의 탈네모틀 한글꼴이다. 안상수체는 전통적인 한글꼴이 지닌 공간 배분의 문제점을 해결하면서도 낱소리 글자**인 한글의 특성을 살렸다. 또한 안상수체는 이번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대표적인 한글 서체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제는 서체도 브랜드! 지자체·기업 전용 서체

서체가 지닌 시각적 힘이 지자체나 기업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새로운 수단으로 주목받으며 각 기업과 지자체 전용 서체연구가 활발해졌다. 이러한 기업·지자체 전용 서체를 사용하면 해당 지자체나 기업에 고유성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저작권 침해 우려를 해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지자체 전용 서체의 경우 대부분 각 지자체의 시청 홈페이지 등을 통해 파일을 내려 받아 무료로 사용할 수 있으며, 기업 전용 서체의 경우 무료로 배포되는 것과 기업 내에서만 사용하는 것이 나눠져 있다. 대표적인 지자체 전용 서체에는 △서울교통공사 역명판 등에 사용된 서울시 ‘서울남산체’ △제주도 ‘제주 서체’ 등이 있으며, 기업 전용 서체로는 △현대카드 ‘유앤아이체’ △배달의 민족 ‘도현체’ △네이버 ‘나눔스퀘어’ 등이 있다.

한편, 한글 타이포그래피 연구가 활발해진 만큼 대학 내에서도 관련 활동이 최근 다수 등장하기 시작했다. 본교의 경우 시각디자인과 전공 수업에 △타이포그라피***(1) △타이포그라피(2) △타이포그라피(3) 등의 수업이 개설되어 있으며 시각디자인전공 학생들로 이루어진 한글 타이포그래피 소모임 ‘한글꼴연구회’에서는 한글의 독창성과 실용성에 대한 실험과 연구를 하고 있다.

*탈네모틀 글꼴: 네모틀을 벗어난 한글꼴이란 뜻으로 1950년대 공병우의 세벌식 타자기 한글꼴에서 처음 시도되었다. 전통적인 세로쓰기 형식에서의 한글꼴은 서로 다른 획의 개수를 가진 ‘홍, 신, 보, 자’ 등의 글자를 모두 같이 크기의 정네모칸 안에 들어가게 디자인했는데, 이는 글자디자인에 있어서 공간 배분에 어려움을 가져왔다. 이로 인해 1950년대에 처음 등장하였고, 1970년대부터 디자인 분야에서 이에 관심을 갖게 되며 1990년대 초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낱소리 글자: 표음문자의 한 갈래로 하나의 음소를 한 기호로 나타내는 글자를 뜻한다. 한글과 로마자가 그 예시이다.

***타이포그라피: 본교 타이포그래피 수업의 경우 처음 수업이 개설될 때 사용되었던 명칭인 ‘타이포그라피’가 계속 강의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슬기로운 문자생활 - 상황에 알맞은 글자 부리기

바탕체? 돋움체? - 한글 서체의 기본이 되는 글꼴

학교 건물에 사용된 ‘안상수체’부터 지하철역의 ‘서울 남산체’ 등, 우리는 일상에서 다양한 글꼴을 접한다. 이처럼 수많은 서체 속에서 이른바 기본이 되는 서체는 로마자(字)에서 글자의 획 끝부분이 돌출되어 튀어나온 세리프(Serif)의 유무를 기준으로 ‘세리프체(體)’와 ‘산세리프(Sans-)체’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세리프는 고대 로마시대 석공들이 석판을 끌로 조각하며 글자들을 장식함과 동시에 이를 가지런하게 맞추기 위해 획의 끝 부분에 가는 실선을 조각한 것에서 유래한다. 한글꼴의 기본 형태 역시 로마자의 세리프와 유사한 개념인 ‘돌기’의 유무를 기준으로 바탕체(명조체)와 돋움체(고딕체)로 나눌 수 있다. 한글꼴의 돌기는 기존의 한자쓰기와 붓의 영향으로, 창제 당시의 모양은 지금의 돋움체와 유사한 돌기가 없는 좌우대칭의 판본체(板本體)였다. 그러나 이를 그대로 필사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흘려쓰기의 영향으로 조금씩 변화하였고, 이를 중국의 해서체를 기본으로 정리한 글자꼴이 지금의 바탕체이다. 바탕체는 중국 명 왕조에서 유행하던 해서체를 닮아 명조(明朝)체로 불려왔으나, 주체성이 없고 부적합한 명칭이란 의견이 있어 1991년 문화체육부에서 이 서체의 이름을 ‘바탕체’로 결정하였다. 한편 훈민정음 창제기의 서체와 유사한 돋움체는 로마자의 글꼴 이름에서 유래된 ‘고딕체’로 통용되어왔으나 이 또한 1991년에 돋움체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이러한 바탕체와 돋움체는 ‘함초롱바탕’ ‘함초롱돋움’ 등 다양한 서체들로 분화·파생되어 우리 주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서체, 행간과 자간, 글줄 정렬 - ‘보노보노 PPT’를 피하는 우리들의 방법

몇 년 전,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보노보노’라는 캐릭터를 배경으로 한 이른바 ‘보노보노 PPT’가 큰 이슈가 된 적이 있다. 내용이 눈에 들어오기는커녕 배경의 캐릭터와 눈을 맞추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보노보노 PPT는 디자인 전공자는 물론이고, 다수의 비전공자에게까지 혹평을 받으며 못 만든 PPT의 대명사가 되었다. 앞의 사례처럼 일상적으로 작성해 제출하는 과제용 리포트부터 PPT, 논문 등에 이르기까지 문서를 구성함에 있어 제일 중시해야 할 것은 가독성이라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많은 사람들은 문서의 서체, 행간과 자간, 정렬 방식 등 수많은 요소를 고려하며 문서를 작성한다.

네덜란드의 디자이너 얀 미덴도르프(Jan Middendorp)는 자신의 저서인 『텍스트와 타이포그래피(Shaping Text)』(2015)에서 읽기의 방법이 다르면 글자체도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처럼 본문용 서체와 제목용 서체는 각각 중시하는 것이 다른데, 본문용 서체는 많은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야하므로 가독성이 중시된다. 이를 위해 본문용 서체는 오랫동안 익혀와 친숙하게 다가오며 시각적으로 부드러운 바탕체 타입의 글꼴이 자주 사용된다. 또한 각 활자 간의 크기 차이가 큰 서체를 사용할 경우 글자 간의 엉성한 공간이 생겨 불안한 인상을 줄 수 있으므로 이를 지양하는 것이 좋다. 반면 제목용 서체는 책 제목이나 광고의 헤드라인 등 본문과 구분되는 ‘이미지’로 사용된다. 그러므로 이는 가독성보다는 보이는 이미지에 더 큰 비중을 두며 독특하게 표현되거나 강조되는 판독성이 가독성보다 중시된다. 따라서 제목용 서체는 외형적으로 두드러져 판독성이 큰 서체가 자주 사용된다. 이러한 서체를 사용할 때 문자가 갖는 이미지와 상반되는 서체를 선택하면 글의 분위기를 바꿔버릴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목적에 어울리는 적절한 서체를 선택해야한다.

보노보노 PPT에서 배경을 제외하고 텍스트를 보았을 때, 가독성을 떨어트리는 가장 큰 요소는 행간(行間, Line Spacing)이다. 이는 두 글줄을 나누는 수직의 간격, 즉 행과 행 사이를 의미한다. 행간 조절은 행간에 공간을 줌으로써 글을 읽는 것을 수월하게 하고, 정보 전달을 용이하게 한다. 서체마다 행간이 다르기 때문에 정확한 행간의 비율을 명시하기란 어렵지만, 일반적으로는 행간이 자간(字間, 글자 사이 간격)보다 넓은 것이 좋다. 행간이 좁다면 다음 글줄을 찾는데 어려움이 따르고, 독자에게 답답함을 불러일으킨다. 반면 행간이 넓으면 글줄보다 그 간격이 더 눈에 띄어 독서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행간과 함께 가독성에 있어 고려해야 할 요소는 ‘자간’이다. 이는 글자와 글자 사이 간격을 뜻하는데, 자간이 좁으면 글자끼리 과도하게 밀접해있어 이 또한 답답하게 느껴진다. 반면 자간이 넓으면 글자들이 서로 떨어져 보여 글을 읽는데 산만함을 느끼게 하고 집중력을 떨어트린다.

또한 활자의 배열 역시 문서 작성에 있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글자를 나열하는 여러 가지 방법은 지면의 인상을 결정짓는데, 자주 사용되는 정렬 방식으로는 양쪽 정렬, 가운데 정렬 등이 있다. 문서작성 프로그램에서 기본적으로 설정되어있는 양쪽 정렬의 경우 전체적인 글줄 길이를 통일시켜 단정하게 보인다는 장점이 있지만, 글줄을 강제적으로 좌우 정렬시켜 낱말 사이가 일정하지 않은 단점이 있다. 한편 문서의 제목 등에 많이 사용되는 가운데 정렬의 경우, 가운데를 기준으로 줄글을 배열해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지만, 줄글 시작지점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많은 양의 텍스트를 다룰 때에는 부적합하다.

일어나서부터 잠들기까지, 우리는 수많은 문자를 마주한다. 아무렇게나 적힌 책상 위 메모, 누군가가 보낸 휴대폰 메시지, 전광판을 화려하게 수놓는 광고 등 문자는 같은 내용일지라도 다양한 모양으로 ‘다른’ 것이 되어 우리에게 들어온다. 막연하게 좋아 보이고 예뻐 보이는 것. 이는 모두 타이포그래피의 산물이다. 디자인의 발달로 타이포그래피는 정보 전달을 위한 단순한 역할에서 벗어나 디자인의 핵심이 되었다, 단순한 문자에 다양한 심상이 들어가면 생각의 전달에 있어 보다 용이해지고, 독자와의 소통이 한결 편안해진다. 말 그대로, 글자가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한국 문화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한국 고유의 글자인 한글의 조형성도 점차 주목받고 있다. 평창 동계 올림픽의 디자인은 글자를 소재로 한 최초의 올림픽 디자인이며 자국의 언어를 글로벌하게 표현하였다는 평을 들었고, 인터넷 커뮤니티에 간혹 올라오는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입은 ‘신흥호남향우회’ 옷은 한글의 조형성에 대한 외국인의 관심을 보여주는 사례다. 다들 웃어넘기는 사례지만, 우스꽝스럽게 장식된 활자들은 어떤 글자를 사용하고 이를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전해지는 바가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자로 가득한 세상에서 문법에 맞게 글을 쓰는 만큼, 문자를 시각적으로 활용하는 타이포그래피적 방법 역시 중요함을 명시해야 보다 슬기로운 문자생활이 가능할 것이다.

 

여백과 화합의 미(美)로서 천지인의 조화를 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한글에는 하늘(天)과 땅(地)과 사람(人), 즉 만물의 이치가 담겨 있다. 백성의 언어적 고충 해결과 더불어 만물의 화합을 글자에 담고자 했던 세종의 깊은 뜻과, 훈민정음을 사랑한 학자들의 오랜 연구를 통해 오늘날 한글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과학적인 문자로 거듭났다. 이처럼 창제의 원리와 이유가 명확하기 때문에 훈민정음의 창제 및 반포를 둘러싼 설은 비교적 구체적인 편이다. 그런데 흔히 알려져 있는 이러한 이야기들은 사실이 아니거나 왜곡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또한 훈민정음의 체계와 구성 원리에 대한 어렴풋한 지식은 쉽게 얻을 수 있지만 이는 ‘설’로 그칠 뿐, 전문적인 지식을 얻기란 쉽지 않다. 과연 훈민정음을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들은 어디까지가 진실이며, 한글이 배우기 쉽고 체계적인 문자라는 평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훈민정음의 기원과 창제는 그동안 사회적, 역사적 측면에서 많은 조명을 받아왔다. 그런데 피상적이고 전설적인 면이 강한 창제 동기만이 알려졌을 뿐 훈민정음이라는 문자와 창제를 둘러싼 여러 사실들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한글날을 맞이하여, 훈민정음의 창제와 조형 원리를 둘러싼 논의들에 대해 국립한글박물관의 김선철 연구교육과 과장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김슬옹 전문위원의 답변을 들어보았다.


Q. 훈민정음은 흔히 세종이 애민정신으로 밤을 새며 만든 문자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서에는 당시 세종의 건강이 좋지 않아 요양을 했다고 적혀있다. 왕의 업무와 건강 등 여러 환경을 고려했을 때, 훈민정음은 어떤 환경에서 고안된 문자인가?
A.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등 과거 기록들을 고려했을 때, ‘세종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다’라는 사실을 알 수 있으나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기록, 과정, 실험 이야기는 전혀 없다. 다만 1426년, 즉 창제 17년 전 세종이 한자의 모순과 지식을 마음껏 표현할 수 없음에 대해 고민한 흔적을 통해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고민은 매우 오랜 시간에 걸쳤음을 알 수 있다. 훈민정음의 창제에 즈음하여 세종의 건강이 악화된 것은 맞으나 오래 전부터 연구가 시작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따라서 백성을 위해 밤새 글자를 만들었다는 설 자체는 진실이 맞다. 세종은 백성을 위해 긴 시간 동안 훈민정음 창제에 몰두하였기 때문이다.

Q. 훈민정음은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1443년에 창제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기존에 없던 문자 체계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인력과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텐데, 훈민정음이 창제된 1443년에 신숙주를 비롯한 집현전 학자들은 아직 집현전에 들어가지 못했거나 나이가 어려 훈민정음 창제에 도움이 되었다고 보기엔 의문이 남는다. 훈민정음은 구체적으로 누가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맞는가?
A. 집현전 학자들과 만들었다는 것은 하나의 설도 아닌 잘못된 사실이다. 왜냐하면 당시 양반 사대부들은 한자만이 양반들의 권력을 나타내는 지표라고 여겼기에 한자 이외의 문자를 상상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1446년 <훈민정음 해례본> 제작에 참여했던 성삼문, 박팽년, 정인지, 최항, 신숙주 등은 창제 당시 관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이다. 이들은 개인적으로 훈민정음을 쓰지 않았으며 18세기의 실학자들도 훈민정음을 쓰지 않았다. 훈민정음을 세종 단독으로 창제했다는 역사적 기록은 많다. <훈민정음 해례본> 앞부분에는 ‘내가 백성들을 가엽게 여겨 만들었다.’라는 세종 서문과 정인지 서문, 1443년 12월 <세종실록>, <동국정운> 등에 명시되어 있으며, 최만리 외 6인의 반대상소문에도 세종이 단독으로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집현전 학자들에게 간접적인 도움을 받았겠지만, 새 문자 반포의 필요성을 느끼는 양반은 없었다. ‘집현전 학자들과 공동창제’라는 내용은 왜곡되었다.

Q. 최만리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 반대 상소문을 올리는 등, 훈민정음 창제의 대표적 반대 세력으로 알려져 있다. 한글 창제에 대한 반대 주장의 근거를 자세히 알고 싶다.
A. 최만리 단독 상소가 아니라 최만리 외 6인의 연합 상소였다. 상소 시기를 고려했을 때(1444년), 훈민정음 창제가 이미 완성된 후의 상소임을 알 수 있다. 최만리 외 6인은 훈민정음 창제 자체를 반대하기보다 백성들에게 널리 알리는 것을 반대하였다. 이들의 훈민정음 반포 반대 이유는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황제의 나라인 중국을 섬기는 사대가 정치의 본질인데, 이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학문의 도구로서의 훈민정음 반대인데, 학문은 오로지 한문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에서 비롯되었다. 세 번째 이유는 세종대왕은 백성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이유가 높은 문맹률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최만리를 비롯한 학자들은 그 이유를 관리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편 반대 상소의 긍정적인 면도 찾을 수 있는데, 상소에 대한 방어 논리로 펴낸 책이 바로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최만리 외 6인의 상소가 훈민정음 해례본이라는 명품 해설서의 동기가 되었다.

Q. 『훈민정음』에는 ‘君虯快業(군규쾌업)’ 글자가 숨어있다고 한다. 해례본에 각 자음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ㄱ’을 설명하는 글자로 ‘임금 군(君)’자를, ‘ㄲ’을 설명하는 글자로 ‘아기룡 규(虯)’자를, ‘ㅋ’를 설명하는 글자로 ‘즐거울 쾌(快)’자를, ‘ㅇ’을 설명하는 글자로 ‘일 업(業)’자를 사용했는데 이를 합치면 ‘君虯快業(군규쾌업)’, 곧 임금과 용이 즐겁게 일을 이루었다는 뜻이 된다. 여기서 용이 문종을 가리킨다는 설이 지배적인데, ‘군규쾌업’의 의미와 이 글자를 숨겨둔 이유가 궁금하다.
A. 이러한 의도설에 대해 논의된 바가 많지는 않으나, 세종은 해설서를 과학적 논리로 만들었으므로 곳곳에 새 문자 해설서로서의 의도가 담겨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세종대왕이 쓴 <정음편>에 한자가 366자인데 반복되는 것을 빼면 108자다. <언해문>도 108자다. 108자의 보이지 않는 의도에 대해서는 현대에 와서야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문자로 108번뇌를 잊어라.’라는 세종의 뜻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군규쾌업이라는 숨겨진 글자에 논의된 연구는 없으나 문종이 새 문자를 잘 이어 받아, 백성들의 문자로 살아남아서 언젠가 중요한 문자로 거듭나라는 세종의 의도가 담긴 것으로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Q. 훈민정음은 가로로 풀어쓰는 영문과는 달리 모아쓰기 방식을 전제로 만들어진 문자이다. 이 때문에 한글은 세계적으로 우수한 문자로 평가받고 있는데, 모아쓰기 방식에서 비롯된 한글만의 우수한 특성은 무엇인가?
A. 모아쓰기 방식은 우리의 언어 직관과 일치하는 방식이다. 즉 음절 중심의 언어로서 자음과 모음의 규칙적인 배열이 가능하다는 것이 모아쓰기의 큰 장점이다. 이러한 음절 인식의 명확성이 표기에도 반영됨으로써 문자생활을 직관적으로 영유할 수 있으며 규칙적인 모아쓰기 방식으로 인해 쉽게 읽고 빨리 배울 수 있다.

Q.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족은 표기 문자로 한글을 선택했다. 새로운 표기 언어로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한글이 배우기 쉬운 언어라는 평가가 있는데, 이러한 평가의 근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한글은 체계를 이루는 요소 간에 연관성이 있고, 단순하기 때문에 응용성과 조합의 원리를 활용하면 새로운 언어를 구사하는 데 매우 적합하다. 또한 한글은 자음과 모음을 비롯한 초성, 중성, 종성이 골고루 발달되어 있다. 이로 인해 다양한 말소리를 자유롭게 적을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 있다. 또한 현대 한글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글자는 대략 11170자다. 이처럼 생산성이 매우 풍부한 언어인 만큼, 새로운 언어를 적는 문자로 응용 가능하다는 평을 받게 된 것이다.

소리의 원리를 사람으로부터 찾다, 한글의 조형에 대하여

훈민정음의 창제가 논의되던 시기, 우리나라는 시각적으로 말을 전달할 고유의 표기 수단이 부재한 상황이었다. 세종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가장 효율적이고 미(美)적인 방법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 결과 한글은 오늘날까지 정확한 표현성과 교육적 효율성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흔히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 막연히 알고 있을 뿐 그에 대한 조형적 특징에는 관심이 적은 편이며 관련 연구도 미미한 편이다. 그동안 그 위상에 비하여 조명을 받지 못했던 한글의 조형적 측면에 대하여 분석해 보았다.

 

한글의 창제 원리: 수직과 수평, 변화 속의 고요

한글은 입 안에서 발음이 일어나는 조음 공간을 수직, 수평으로 분절하여 이를 대칭점으로 삼은 글자이다. 따라서 자음의 모든 발음에는 ‘ㅣ’, ‘ㅡ’ 음가가 담겨있다. 즉 ‘기역, 니은, 디귿, 리을, 미음,…’의 모든 발음에 수직과 수평의 조화가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혀의 움직임에 따라 수직과 수평을 중심으로 다양한 분할이 가능한데, 이로 인해 수직·수평선을 기준으로 글자 위치를 바꾸면 다른 글자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오’는 가로선을 기준으로 ‘우’와 대칭되며, ‘어’는 세로선을 기준으로 ‘아’와 대칭된다. 점, 선, 면이 문자가 되고 소리가 되기 위해 변화 속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원리가 자음과 모음의 형성으로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처럼 수직선과 수평선을 이용한 공간적 변별이라는 독특한 조형 원리를 통해 글자 안에 삼라만상의 원리를 담고자 했던 세종의 뜻을 엿볼 수 있다.
한글은 음소문자로서 모아쓰기를 전제로 만들어졌다. 또한 창제 당시의 표기 관행이 붓글씨를 고려한 우측 세로 방향이었기 때문에 한글은 세로쓰기에 최적화되어 있었고, 가로로 풀어쓰는 영문과는 근본적으로 표기 방법이 달랐다. 이후 근대에 들어와 서양 문물이 도입되며 가로짜기*를 기준으로 한 로마자의 가로 글줄 흐름선에 따라 한글 또한 가로로 배치하게 되었다. 이는 세로짜기보다 한 면에서 차지하는 행수가 많아 여유로운 행간을 주며 사람의 안구가 옆으로 움직이는 것을 감안했을 때 생리적으로도 편리하다는 이점이 있었다. 그러나 한글은 본래 세로짜기를 전제로 만들어진 문자이기 때문에 시각적인 형의 배열이 세로짜기에 비해 어색하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한글의 창제 원리: 사각형 속의 한글

전공 서적이나 신문을 보면 글자가 초성, 중성, 종성 위치에 맞게 공간 분배가 잘 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한글이 ‘두벌식’에 맞춰 쓰였기 때문이다. 자음 ‘ㅇ’ 의 활용을 보면, ‘ㅇ’ 글자가 초성에 들어갈 때와 종성에 들어갈 때의 모양과 크기가 다르다. ‘이’, ‘응’, ‘윙’을 보면, ‘ㅇ’이 초성에만 들어갈 때 ‘ㅇ’이 초성과 종성 모두 들어갈 때보다 크기가 크다. 하지만 ‘ㅇ’이 초성과 종성 모두 들어갈 때는 ‘ㅇ’ 글자 크기가 작아지며 초성에 있느냐 종성에 있느냐에 따라 모양도 달라진다. ‘ㅆ’ 글자도 ‘써’일 때와 ‘썼’일 때 크기와 모양이 달라진다. 이렇게 위치에 따라 같은 글자의 크기와 모양이 달라지는 이유는 한글이 사각형 틀에 갇힌 채 쓰이기 때문이다. 모아쓰기 방식을 택한 한글은 사각형 틀에 맞춰 음소를 조화롭게 배열해야 가독성이 높아진다. ‘늘’이라는 글자를 쓸 때, 획수가 많은 ‘ㄹ’의 공간을 ‘ㄴ’과 똑같이 하거나 적게 한다면 ‘ㄹ’의 획이 뭉쳐 가독성이 낮아질 수 있다. 이렇게 사각형 틀에 맞춰 음절을 만드는 방식을 ‘두벌식’이라고 한다.
한편, 사각형 틀에 맞춰 쓰지 않는 이른바 ‘탈 네모’ 방식인 ‘세벌식’도 존재한다. 18~19세기에 먹과 붓을 이용해 쓴 한글 흘림체를 보면, 받침이 있고 획수가 많은 글자의 경우 자연스러운 손의 움직임에 따라 다른 글자에 비해 많은 공간을 차지한다. ‘이’와 같이 받침이 없고 획수가 적은 글자보다 ‘절’과 같이 받침이 있고 획수가 많은 글자가 더 길어지는 것이다. 이는 사각형 틀에 맞춰 음소의 크기와 모양을 조절하는 두벌식과 차이가 있다. 현대 컴퓨터 자판에서 사용되고 있는 ‘세벌식’이란 음소의 디자인을 하나로만 만들어 받침이 있는 글자든 없는 글자든 음소의 크기와 모양을 똑같이 적용하는 방법이다. 세벌식의 장점은 효율성과 리듬감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초성, 중성, 종성이 따로 배치되어 자판을 칠 때 왼손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다만 ‘두벌식’일 때보다 글자가 길어져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는다.

*가로짜기: 가로짜기란 글자의 나아감은 가로 방향으로 되게 하고 행의 방향은 세로 방향이 되도록 배치하는 것을 말한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의 우수성은 현재 세계적으로 언어학에 조예가 깊은 연구 학회들로부터 인정받고 있다. 세계적인 인문·사회과학 전문 출판사인 영국 루트리지(Routledge)는 학문별 50대 주요 사상가에 대해 다루었는데, 그 중 언어와 언어학의 50대 주요 사상가에 세종대왕이 등재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유네스코에서 정한 문맹 퇴치상 이름이 <세종대왕 문맹 퇴치상>이라는 것을 통해 한글의 우수성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글은 단순한 문자 체계를 넘어 ‘수직·수평선 속의 여백과 조화’라는 우리나라 고유의 정신이 담긴 하나의 유산이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 속에서 한글을 자연스럽게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만들었나요, 아니면 집현전 학자들이 만들었나요?”라는 질문에서조차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경우가 많은 상황이다. 올해는 한글날 제572돌이다. 문자로서 소통의 즐거움을 알게 하고 글자 하나하나에 세상의 조화를 담아낸 세종대왕의 깊은 고뇌가 담긴 한글, 그 위대함과 소중함을 알고 더욱 관심을 가질 때 오랜 세월이 지나도 ‘사람을 위한 소리’로 이 땅에 영원히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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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석, 「한글의 풀어쓰기와 모아쓰기에 대하여-최현배 선생의 <글자의 혁명>을 중심으로」, 청람어문교육학회, 청람어문교육38, 2008, p.401.

안상수, 한재준, 이용제, 『한글 디자인 교과서』, 안그라픽스, 2009.

데이비드 주어리, 김두섭 역, 『타이포그래피란 무엇인가?(what is typography?)』, 2008.

이혜진, 『타이포그래피: 타이포그래피의 모든 것』, 길벗, 2015.

 

이재환 기자(jhl0601@mail.hongik.ac.kr)
조수연 기자(suyeon98@mail.hongik.ac.kr)
이산희 기자(ddhh1215@mail.hongik.ac.kr)
이소현 기자(sohyun0911@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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