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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공간과 그 적들: 사무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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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서 이어집니다.)

반면 동양에서는 나무기둥으로 된 네모진 모듈러로 건축물을 만들었다. 서양처럼 높은 벽을 따라 창문을 키우려면 큰 나무가 필요한데, 그런 큰 나무는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따라서 실내공간이 많이 필요한 경우, 방의 폭은 유지하면서 한 방향으로 길게 늘여 창문과 접한 실내공간을 선형으로 늘려나가는 간편한 방식을 택하였다. 99칸 전통 한옥은 이렇게 해서 지어진 것이다. 99칸은 단위 모듈러의 개수를 말한다. 경복궁의 경우 경회루처럼 특별히 가로 세로 모두 큰 실내공간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작은 모듈 공간이 길게 배치된 형태를 지닌다. 따라서 동양 건축은 건물의 폭이 좁고 길어 자연과 접하는 표면적이 넓다는 장점을 갖는다. 방에서 창문으로 정원을 내다볼 수 있는 보편적인 동양 전통 건축의 모습은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그러다 20세기에 들어 철근콘크리트 구조가 발달하면서 공간을 수평으로 무한정 확장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형광등의 보급으로 햇볕을 쬐기 위해 천정고를 높이거나 정원을 끼고 긴 선형 구조를 만들 필요가 없게 되었다. 게다가 제한된 높이 안에 더 많은 층을 욱여넣기 위해서 천정고는 머리만 안 닿을 정도로 최소화되었다. 그래서 현재 우리는 높이 2.4미터의 천정고에 폭은 수십 미터에 이르는 사무실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만약에 형광등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아직도 천정 높은 사무실이나, 어느 자리에서든 정원을 볼 수 있는 사무실에서 일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형광등은 인간과 자연을 분리시킨 공공의 적이라 할 수 있다.

 

집보다 자동차를 먼저 사는 이유

열린 공간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익명성은 확보되면서 수평적인 관계의 사람들만 있는 공간이라면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즐겁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 대표적 실례가 야구장이나 광장이다. 야구장 같은 공공공간에서는 익명성이 보장된다. 야구장에서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이 나를 보아도 크게 불편하거나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럴 때 우리는 편하게 남을 바라보고 동시에 나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공간에서는 상대적으로 편하지가 않다. 사무실처럼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평가의 근거로 삼는 공간에서는 더욱 편치 못하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큐비클(cubicle: 큰 방 한 쪽을 칸막이 해 만든 좁은 방) 안에 숨고 싶어 한다. 최근 들어서 열린 공간, 수평적 관계, 창의적 사고를 외치는 사무 문화의 변화로 사무실은 점점 오픈되어가는 추세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항상 다른 법이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열린 공간에서 사무를 보는 경우 업무시간의 45%를 다른 사람에게 방해받아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는데 소비하고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우리에게는 기본적인 프라이버시가 필요하다. 필자가 근무하던 사무실에는 책상 앞에 책을 쌓아두는 직원이 있었다. 이는 그 직원이 단순히 게을러서 그런 것이 아니다. 개방된 책상이 불안해서 책과 서류로 자신의 영역을 구분하는 벽을 쌓는 것이다. 보통 사무실에는 큰 모니터가 벽의 역할을 해준다. 우리 사무실 직원들은 업무용 데스크탑 컴퓨터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벽처럼 쓰고 있다. 요즘에는 듀얼 모니터로 작업하는 경우도 많아 2대의 모니터를 나란히 세워 울타리를 만들어 놓았다. 이 모든 것이 프라이빗한 공간을 만들고 싶어 하는 욕구에서 나타나는 풍경이다. 필자는 어렸을 적 등·하굣길 버스 안에서 항상 맨 뒤 구석자리에 합판으로 혼자만 들어갈 수 있는 내 방을 만드는 상상을 하곤 했었다. 초등학생이란 어린나이에 낯선 사람들이 부담스러워 방안에 숨는 상상을 했던 것이다. 이렇듯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프라이빗한 공간을 원하는 것은 선사시대 때부터 내려오는 안전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이다. 

프라이버시는 일정 공간의 완전한 소유를 가리키기도 한다. 우리는 완전히 소유할 수 있는 공간에서만 사생활을 노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간을 소유한다는 것은 자유를 뜻한다. 가장 프라이빗한 공간은 자기 집이나 방이다. 하지만 요즘같이 인구 밀도가 높은 세상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든다. 큰돈을 들여서 큰 집을 살 수 없기에 우리는 시간당 얼마의 비용을 지불하고 작은 공간을 렌트한다. 노래방, 비디오방, 모텔의 방 같은 곳이다. 좀 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자동차를 산다. 자동차는 내부 방음이 되는 완벽히 사적인 공간이다. 동시에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조용한 곳에 주차만 하면 주변 공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전망 좋은 한강 변 아파트를 구입하기는 어렵지만, 고수부지 주차장에만 가면 강변 전망의 방을 소유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자동차다. 자동차 공간을 더 프라이빗하게 만들기 위해서 사람들은 창문에 더 짙은 썬팅 필름지를 붙이기도 한다. 썬팅은 여름철 냉방에 유용한 기술이지만 어두운 곳에서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고 밖을 보는 관음증을 만족시키는 구실도 된다. 짙어진 자동차 썬팅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혼란스런 세상을 지워버리는 현대인의 생존기술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집보다도 자동차를 먼저 산다. 자동차는 이 사회에서 프라이빗한 공간을 완벽히 소유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단위이자, 이동하면서 공간의 성격도 바꿔줄 수 있어서 가격 대비 성능이 가장 좋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다음 호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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