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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식, 기명절지도, 조선 말기, 지본담채, 147.7x53.0cm, 소장번호 2185
  • 학예연구사 이하나
  • 승인 2018.10.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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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란 고동기(古銅器)와 도자기에 꽃이나 꺾은 나뭇가지를 꽂고 그 주변에 과일이나 채소 등을 함께 어우러지게 놓고 그린 그림을 의미한다. 그릇에 꽃을 꽂는 것 자체가 길상적이고 기복을 염원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기명절지도의 주제는 부귀, 평안, 복, 불사로 정의될 수 있다. 보통 생일을 축하하기 위함과 세화(歲畵) 등의 선물용 그림으로 인기가 좋았으며, 선비 문화의 영향을 받아 사랑방이나 서재의 병풍으로 제작되는 등 주거 장식화로도 애용되어 실용적인 성격을 가진 그림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기명절지도는 중국 당대에 시작되었고 원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조선 후기 이후 화단에 유입되어 이 무렵에 활약한 장승업에 의해 세로로 긴 화면에 여러 가지 소재를 배열하는 그림으로 정형화되었다. 그리고 이것을 기반으로 하여 기명절지도는 안중식, 조석진, 이도영 등에 의해 대략 1920년대까지 유행하였다.

홍익대학교 박물관에는 안중식이 그린 <기명절지도>가 소장되어 있다. 안중식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성격의 미술 학교인 경성 서화 미술원에서 조석진과 함께 교수를 역임하였고, 후진을 양성하는 교육자의 면모를 보여주며 근대 화단 형성에 큰 기여를 하였다. 그런 그가 화가로서 활약한 공식적인 첫 기록은 그의 나이 20세인 1881년에 영선사(領選使)의 제도사(製圖士)로 발탁된 것으로, 남국화도창에 속하여 각종 기계의 제도와 학문을 배웠다고 한다.

현존하는 첫 기년작은 1894년 작인 《화조도 10폭 병풍》으로 알려졌으며, 그가 제작한 기명절지도 중에 연대가 올라가는 것으로는 수묵 담채화풍의 <기명절지도 대련>이 있다. <기명절지도 대련>에는 1898년까지 사용한 ‘심전(心筌)’이라는 낙관이 찍혀 있어 제작 시기를 추정해볼 수 있다. 따라서 두 작품의 편년이 크게 차이 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가 화가로 활동한 초창기부터 기명절지도를 제작하였음을 유추할 수 있다. 

안중식은 어린 시절에 한학을 배웠고 글에 능했던 실력을 작품에 발휘하였다. 홍익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기명절지도>를 비롯하여 여러 기명절지도에 제발문을 넣은 것인데, 본래 기명절지도가 가지고 있던 길상적 성격에 문사적 아취를 더하여 완상(玩賞)의 대상으로 격상시켰다고 평가받는다. 서양화와 일본화가 본격적으로 화단에 유입된 이후, 기명절지도는 지속적으로 발전하지 못하였지만 20세기 초 화단의 한 흐름이었던 시대 양식으로써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학예연구사 이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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