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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밝히는 초, 인간의 속성을 담다작은 불씨에서 사회를 밝히는 존재가 되기까지

  한줌의 빛조차 들어오지 않은 칠흑 같은 어둠 속. 한치 앞조차 볼 수 없는 껌껌한 곳에 있는 나에게 누군가 촛불을 들어 환하게 밝혀준다면? ‘한줄기 빛’ 라는 말이 이런 상황에서 적절히  쓰이지 않을까. 에디슨의 전구 발명 이전 선조들이 깜깜한 밤에도 공부를 하며 ‘주경야독(晝耕夜讀)’을 할 수 있었던 이유, 바로 초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처음 초는 방안을 환하게 밝혀주는 등불의 역할이었지만 시대가 바뀌고 각종 전구 기술이 발전한 지금은 아름다운 향기로 가장 편안한 장소인 집을 더욱 안락한 분위기로 만드는 데에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온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한 줄기의 빛으로서 작지만 그 안의 수많은 의미를 담은 초. 바람의 작은 흔들림에 금방 꺼질 듯 하지만 다시금 원래의 붉은 빛으로 우뚝 서는 양초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장식용으로만 사두었던 양초를 하나쯤 꺼내어 불을 붙이고 이 글을 곱씹어보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어둠을 밝히는 작은 불빛, 양초의 역사

초는 언제 발명되었을까? 초는 정확히 언제, 어디서 발명되었다고 정확히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학자들은 고대 B.C 2000년경, 투탄카멘 왕조의 것으로 추정되는 촛대와 촛농이 발견되었다는 것을 들어 이집트 왕조를 초의 형태를 발명한 최초의 시대로 추정하고 있다. 이후 우리에게 익숙한 심지 양초의 형태는 그리스인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들은 갈대, 밀랍, 열매, 동물의 기름, 파피루스 등을 이용해 각 문화의 특성을 보여주는 다양한 형태의 양초를 제작해나갔다. 이후 1850년, 원유에서 파라핀 왁스를 성공적으로 추출하며 다양한 고형 양초가 대량생산되어, 양초는 전기가 이를 대체하기 전까지 인류의 밤을 밝혀주는 존재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밤늦게까지 일하시는 부모님을 기다리며 초를 켜 책을 읽는 아이들부터 성서를 읽는 중세 사람들까지, 인류는 초를 평화롭고 종교적인 분위기를 조성시켜주는 도구로 사용했다. 이후 시간이 흘러 1991년 소이 왁스의 개발로 인해 파라핀 왁스가 가진 유해성 문제를 완벽히 해결하며 또 다른 양초의 새로운 전성시대를 열었다. 향료와 결합된 초는 불이라는 1차적인 쓰임을 벗어나 방향제, 인테리어 등 사용자의 목적에 맞추어 색다른 쓰임을 선보인다. 누군가는 단순히 알록달록 예쁜 초의 색깔에 끌려서 또 누군가는 특정 향기를 내뿜는 향초에 심취했을 것이다. 방을 밝게 밝혀주는 전구가 존재하는 지금, 주춤 했던 초는 다시금 본연의 매력을 뽐내며 우리의 생활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촛불, 작은 불씨로 시작해 삶의 미학까지

지금까지의 이야기로만 초를 판단하면 초는 그저 불빛을 켜주는 존재라고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여기 촛불을 통해 인간의 모습을 바라본 자가 있다. 시인 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철학자이며, 철학자 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시인으로 평가받는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6.27.-1962.10.16)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위인인 그는 인간의 믿음, 정열, 이상, 사고의 형태를 파악하기 위해서 그것을 지배하는 기본적인 4원소에 대해 깊이 고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4원소인 물, 불, 공기, 흙 중 불의 속성에 가장 집중해 여러 불의 종류 중에서도 특히 ‘초’가 가진 불을 통해 그의 철학을 투영시켰다. 누르면 켜지고 꺼지는 기계적인 빛의 속성과 달리 촛불은 불을 붙인 순간부터 서서히 자태를 뽐내다가 연기와 함께 그의 존재를 감춘다. 바슐라르의 철학을 통해 빛을 켜주는 존재 그 이상의 의미를 담은 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가스통 바슐라르, 양초의 불씨 속에 철학을 찾아내다

바슐라르는 인간을 불과 비슷한 존재로 생각했다. 특히 불은 4가지의 대표적인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인간의 근본적인 속성과 매우 근접하다고 본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금지한다는 제우스의 의사에 반항해 불을 훔쳐내는 것이 그 첫 번째이다. 불을 갖게 됨으로써 신의 우위성에 도전할지도 모르는 인간에 대한 반감과 그럼에도 인류의 지식 보급을 위하는 그 상충된 마음을 바로 첫 번째 콤플렉스인 프로메테우스의 콤플렉스라고 부른다. 두 번째 엠페도클레스의 콤플렉스는 나방처럼 불에 뛰어들어 스스로를 소멸시키고자 하는 죽음의 본능과 새로운 재생이나 불멸의 빛을 찾고자 하는 삶의 본능이 대립하는 현상을 뜻한다. 세 번째는 원시 시대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불과 같은 원초적인 사랑의 요소를 가리키는 노발리스의 콤플렉스이며 마지막으로 불과 나머지 4원소간의 결합을 뜻하는 호프만 콤플렉스가 있다. 이제 그는 이러한 불의 특징을 담고 있는 양초로 시선을 돌린다. 그렇다. 그는 언제든지 꺼질 것만 같은 작은 불씨를 가진 양초에서 인간의 속성을 찾아냈다. 그가 언급한 불 중 ‘자연에 반하는 불’은 대부분의 불과 비슷하게 자기에게 맞붙으려고 하는 것을 태워 재로 만들며 연료의 공급이 필요한 불이다. 양초는 이와 다르게 처음부터 자신의 몸을 불태워 스스로 연료를 마련한다. 그리하여 양초는 마지막까지 다른 어떤 것과 상관없이 본연의 몸에 붙은 불을 마지막으로 빛을 꺼트린다. 앞서 언급한 네 가지의 컴플랙스인 모순된 감정, 죽음과 생, 가장 기본적인 사랑의 감정 그리고 다른 요소와의 결합 외에도 초는 생성과 소멸이라는 존재방식을 통해 우리에게 삶과 죽음이라는 삶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촛불, 삶의 미학을 부여하다

아까도 언급했듯, 서양 문화의 초는 밤늦게까지도 성서를 읽을 수 있게 해준 장본인이다. 기독교인들은 초를 보며 예수를 떠올렸다.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빛을 밝히는 초,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수많은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이끈 예수. 어두운 방을 밝혀주는 초는 온 세상의 빛인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렇다면 동양 문화는 어떠했을까? 절에 찾아가면 법당에서 은은하게 피어오르고 있는 향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향은 서양 문화 속 양초와 비슷한 의미로 제 몸을 태우는 자비와 희생을 상징한다. 문화가 달라도 우리는 향과 초를 보며 구원자의 고독한 모습을 떠올리고 또 개개인의 과거의 일을 추억하며 명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의미를 정의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닐 것이다. 책상 위에 놓아진 그 작은 불 앞에서 우리는 각기 다른 생각에 잠겨든다. 무언가의 희망과 기원, 절대자의 고독, 사색, 그리고 현시대의 뒤틀린 구조에 순응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그 고민을 담은 불빛은 계속해서 움직인다. 때로는 흔들리고 어두워져 풍전등화 같은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촛불과 인간과 같아 한 지점에 머무르지 않는다. 심장의 끝없는 두드림처럼 초의 불빛 역시 생동하며 더 나아가 장엄함을 보여준다. 그렇게 촛불은 처음 불을 붙이는 순간부터 생명을 내뿜고 결국에는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는 소멸의 모습까지 보여준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 끝없는 고민과 갈등의 갈림길에 서며 또 그 과정에서 사회적 관계를 맺지만 결국에는 홀로 삶의 끝을 향해 달려간다. 삶의 미학이란 무엇인가 라고 묻는 자들에게 답해주자. 촛불에 그 해답이 있다고.

촛불, 사회를 밝히다


집안의 어둠을 밝히는 촛불은 이제 세상에 맞서는 합리적인 행동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 서양에서는 1968년 마틴루터킹(Martin Luther King, 1929.1.15.-1968.4.4)과 시민들이 베트남 전쟁에 반대를 하며 미국의 제국주의적인 사고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 비폭력, 평화시위 수단으로 촛불시위의 서막을 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폭력적인 시위와 차별되는 비폭력 집회 수단으로서 촛불을 선택했다. 그중 2002년 6월 중학생이었던 여학생 두 명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지는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하고 이들을 추모하기 위한 촛불이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해 전국적인 시위로 확산되었다. 이후 2008년 광우병을 우려한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집회에 이어 2014년 세월호 참사자 추모 및 진상규명을 위한 집회, 그리고 2016년 광화문 촛불집회까지 촛불은 국민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스스로를 밝히면서 커지는 촛불은 끝없이 위를 향해 높게 타오르며 온 힘을 다해 그 절정에 다다르려 한다. 떨어져 보았을 때는 한없이 작았던 그 불이 하나 둘씩 그 모습을 드러내 촛불바다가 되어 출렁였다. 촛불, 이제는 한줄기의 빛이 필요한 어두운 사회를 밝힐 때이다.


참고문헌:
『촛불의 미학』, 동문선, 2008, 167p

『촛불의 시간』, 북극성, 2017, 176p

『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세상을 바꾼 발명품 1001』, 마로니에북스, 2010, 960p

김나은 기자  smiles3124@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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