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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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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순간도 아름답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치열해서, 어려워서, 괴로워서, 고마워서 또 그랬다. 그러나 당시에는 죽을 만큼 아팠고 또 힘들었다. 기억은 반드시 미화되기 마련이어도 기억 속의 상처와 그 응어리는 여전하다. 웃으며 그 일을 기억할 수는 있어도, 마음을 늘 흩트려 놓는 것이 상처다. 기자는 신문사에서 수없이 상처를 얻었다.

혹자는 신문사는 말 그대로 ‘글을 쓰는 곳’인데 상처를 받아봤자 그곳에서 얼마나 받았겠냐고 되물을 것이다. 신문사의 재미있는 점은 바로 거기에 있다. 분명 글을 쓰러 왔는데 글보다는 인간관계가 기자들을 압도하는 경우가 많다. 이곳에 3년간 몸을 담고 있으면 누군가와는 말하지 않아도 감정을 읽을 수 있는 사이가 되기도 하지만, 누군가와는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곤 한다. 그건 의도를 했든 하지 않았든 그렇게 되어버린다. 그렇게 인간관계의 회의에 빠져 밤을 지새우다보면 어느새 마음속에는 커다란 상처가 생긴다. 그러나 상처는 나을 새도 없이 끝없이 생겨 덧나다 못해 고름진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결국 나는 스스로를 살리고자 커다란 결심을 한다. 상처를 받을 바에야 나를 바꾸어버리자고 말이다. 1차원적이지만 기자는 그렇게 자신을 보호했다. 무서워도 그렇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견디다 못해 쓰러지기 직전에도 그렇지 않으려고 했다. 하다못해 스스로에게도 솔직하지 못했고 결국 그 결과는 오롯이 기자에게 인과응보식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기자는 3학년이 되고 결심했다. 폐만 끼치지 말자. 스스로도 선배가, 또 진정한 기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작지만 중요한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하루 최소 3번씩은 신문사 그만두라는 권유, 협박, 위협을 주변 사람들에게 받아왔다. 그래도 저지른 죄가 있고, 옆에 있는 동기들이 눈에 밟혀서 어쩔 수 없이 남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무거운 짐을 같이 짊어져 주지 못한 동기들에게, 또 내 앞가림 하느라 바빠서 진지한 이야기 한번 못해준 후배들에게 특히 미안하다.

신문사 동기들과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과거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지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기자는 늘 신문사 들어오기 전으로 돌아가 S동을 그냥 지나칠 것이라고 하지만 그 뒤에 생략한 말이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너희를 만나기 전’이라고 말이다. 아무렴, 너네만 안 만났어도 진작 도망치듯 나가 버렸을 테니까. 그런데 이 말은 2018년 10월 6일 현재 남아 있는 모든 기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말일 것 같다. 이렇게 신문사는 동기를 인질로 삼기도 하지만 또 기자들이 자처해서 인질이 되기도 한다. 신문사는 그렇게 굴러간다. 아무리 인간관계로 회의감을 느끼고 글을 쓰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어도 이 문제의 유일한 해결방안은 모순적이게도 동료 기자들뿐이기 때문에. 

이렇듯 기자의 우정, 상처, 추억이 잔뜩 담긴 신문은 특히 미술대학 학우들이 상주하는 곳에 인기가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작품 만들 때 밑에 깔면 딱이기 때문이다. 이걸 보면 화나고 회의감이 들지 않냐고? 전혀. 기자들이 신문을 발행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이유는 학우들을 위해서이다. 그러니까 뭐, 이렇게라도 사용해줘서 감사하기도 하다. 

신문은 기자의 퇴임 후에도 계속 발행될 것이고 그 시간에 발맞추어 기자는 더 이상 기자가 아닌, 내 이름을 가지고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동료 기자들을 만나 빛바랜 홍대신문을 넘기며, 기억을 되짚으며 상처는 웃어넘기고, 당시에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던 기사를 보며 아쉬워하고 부끄러워할 만큼 발전된 미래의 내가 되었을 때. 그때가 되면 기자는 내 스물셋에게, 20살 초반의 삶 그 자체였던 신문사에게 감사하다고, 또 수고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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