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9.10.8 화 17:19
상단여백
HOME 기획 학술
제43회 홍대 학·예술상

시 부문

최우수

빨래

 

김소안

오랜 장롱 깊숙이

얼룩지고 곰팡이 슨 것들을 이젠

아낌없이 비눗물에 담갔으니

주물주물 주무르고

철벅철벅 헹구어서

햇볕 드는 난간에 널었습니다.

 

인제

마르는 것은 빨래의 몫입니다

 

보송히 마르려면

마음을 전부 드러내고 있어야 합니다.

 

 

 

우수

오늘은 가게 문을 닫습니다

 

위경미

오늘은 가게 문을 닫습니다

매일 열려있던 그 가게는

계절에 맞는 옷과 저렴한 신발을 팔았습니다

어떤 이는 한눈 팔며 지나가고 

또 어떤 이는 눈길 하나 주지 않고 지나갑니다

그러면 주인은 입구로 나와 말없이 서있곤 했지요

오늘은 가게 문을 닫습니다

손을 대면 베일 것 같은 차가운 셔터 위로

이상하게 말이지요,

모래시계 속 모래알 같은

가루 불빛이 스르르 내립니다

밖은 정오처럼 밝은데

장사는 접고 불은 왜 켜놓았는지요

곁눈질만 하던 그 가게를

오늘은 나지막이 바라봅니다

나인지 그대인지 

공중에 걸려있는 동그란 불이

사람처럼 안쓰러운 날입니다

 

추신: 다음 날도 가게 문을 닫았더군요. 

하지만 그 다음날에 문은 열려 있었고 제법 손님도 있었어요. 

다행이에요.

 

우수

연인들

 

최현진

두껍게 칠해진 빨간 물감

농도 짙은 꽃송이들 속에서

나란히 앉아서 미소 짓고 있는 연인들

 

천사(天使)의 축복을 받으며 마주 앉아

어떠한 사랑을 속삭이고 있을까

 

다시는 지지 않을

천국(天國)의 화원을 꿈꾸거나

 

믿을 수 없었던 입맞춤을

말하고 있겠지

 

너무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하얀 눈물이 붉은 꽃들 사이에 숨어

고개를 들 때

 

이 그림의 끝을 보아버렸다.

 

최우수 당선소감

김소안 (독어독문학과 4) 

출품작을 고르기 위해 오랜만에 습작노트를 펼쳤습니다. 손이 닿지 않은 사이 어느새 속지가 노랗게 바래 있었습니다. <빨래>는 그 중에서도 초기에 쓴 것입니다. 저는 생경한 기분이 되어 제가 쓴 글을 읽었습니다. 그 때의 저와 지금의 제가 느끼는 바가 다르듯 독자분들 모두가 다르게 이 시를 읽으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제가 어떻게 시작(詩作)을 했는가를 밝히는 것보다는 차라리 말을 줄이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글로 소통하는 법을 잊고 지냈습니다. 이를 일깨워 주신 홍대신문과 심사위원님께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우수 당선소감

위경미 (동양화과 2) 

늦은 밤 상수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도착할 무렵이면 눈에 들어오는 옷가게가 하나 있습니다. 그 옆을 지나다니기만 했지 한 번도 들른 적 없던 곳 이 어느 날 문을 닫은 것을 보고 걱정했던 마음에서 이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손님을 기다리던 주인의 모습이 장사를 접은 날에도 홀로 타들어가는 전구의 모습과 겹쳐 보였고 , 대상도 이유도 없이 무언가를 기다리는 전구가 저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쓰였습니다.

대상을 낮은 마음으로 보는 데에서 사랑은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가본 적 없는 장소가 아이러니하게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그곳의 어떤 순간이 저의 깊은 바닥과 닮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다림은 저 뿐 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한 번 쯤은 발걸음을 새겼을 것입니다. 기다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지만 지속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분명 이루어진다는 노래를 불러보고 싶었습니다.

 

우수 당선소감

최현진 (경영학과 2) 

 이 시는 여름방학때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샤갈 특별전에서 본 작품에 영감을 받아 쓰게 됐습니다. 샤갈의 많은 작품들 중 ‘연인들’이라는 그림이 가장 눈에 띄었습니다.  화려한 꽃속에서 서로를 부둥켜 안고있는 연인들의 모습에 가장 먼저 든 감정은 슬프다는 감정이었습니다. 도대체 이 아름다운 그림을 보고 드는 생각이 왜 슬프다는 감정일까. 그러다 문득 정말 아름답고 고귀한 사랑도 결국에는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에 생각이 닿았습니다. 정말 간절하고 애뜻한 사랑도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법이니까요. 오히려 이 그림이 이토록 아름답게 그려진 것도, 진실했던 사랑을 어떻게든 담아두려고 했던 화가의 처절한 마음이 담긴 것 같아 서글퍼졌습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자신이 보고 느낀 것들을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보고 느낀 것들을 모자람없이 담아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부족한 작품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심사평

이승복 (국어교육과 교수)  

2018년 학·예술상 시부문은 예년에 비해 응모작품과 응모학생의 수가 무척 늘었다. 21명 104편의 시작품이었다. 양적으로만 아니라 작품들이 담고 있는 밀도 또한 내실하다. 홍대의 예술혼이 풍성하다는 것이야 학교 안팎이 모두 알고 있는 터이지만 시에서도 이토록 폭넓은 지평과 속이 꽉 채워진 체적을 가늠하게 된다는 것은 기쁘고 즐거운 일이다. 

물론 대학생의 치기가 곳곳에 묻어 있다. 소통보다는 개인의 서정적 고백에 치우치다 보니 때로 자조적인 태도가 지나치는가 하면, 생경한 진술을 억지로 채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만큼의 신선함을 담뿍 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시가 우리에게 주는 쾌감은 시어나 형식의 소란함이 아니라 시로 쓰이지 않으면 안 되는 진실에의 발견과 접근에서 비롯한다. 그래서 시를 쓰려는 이들이 마땅히 해야 할 우선의 일은 삶에의 천착이며 결여의 확인이라 하겠다.  선정된 작품들은 상대적으로 치기는 적었으며 진실로 다가서려는 의지는 뚜렷했다. 응모한 그밖의 작품들도 사실 조금의 차이일 뿐 충만한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었다. 매우 놀랍고 뿌듯한 일이다. 

    

<저작권자 © 홍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