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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공간과 그 적들: 사무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지난 호에서 이어집니다.)

 

프라이빗한 공간을 얻는 다른 방식은 익명성을 통하는 것이다. 대도시화되며 공간의 부족으로 침해받는 사생활의 자유는 한편으로는 대도시가 지닌 익명성이라는 장치를 통해 비로소 회복된다. 나를 모르는 여러 사람들 속에 섞여 있게 되면 나는 더 자유로워진다. 더 자유로워질수록 그 공간에서 사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사적으로 행동한 만큼 그 공간을 소유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완벽한 익명성이 주는 자유를 얻기 위해서 멀리 해외여행을 간다. 그런데 마음먹고 아주 먼 곳까지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갔는데 거기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면 김이 샌다. 자유를 얻기 위해서 비싼 돈을 들였는데, 거기서도 완전한 익명성은 불가능했기에 실망하게 되는 것이다. 익명성이란 좋은 것이다. 보통 사적인 공간에서의 자유를 소유하려면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도 그 크기가 건물 한 채 규모를 넘기 어렵다. 하지만 익명성만 보장된다면 한 도시 크기의 공간을 사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람은 마음 한 구석에 유명해지고자 하는 욕심이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볼 문제다. TV에 많이 나오는 연예인들은 유명해짐과 동시에 익명성을 포기해야만 한다. 유명인들이 점점 더 큰 집을 소유해야만 하는 이유 또한 이러한 익명성과 관련이 있다. 그 집만이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 집도 파파라치의 공격에 둘러싸여 있다. 할리우드 배우들이 큰 수영장이 있는 집에 사는 것을 종종 보는데, 하나도 부러워할 것이 없다. 그들은 그 수영장 딸린 큰 저택은 자유롭게 누리겠지만 집 밖 어디를 가더라도 자유롭지 못하다. 집 밖의 공간을 완전히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 대신 우리는 집은 작더라도 대문 밖의 모든 공간에서 자유롭다. 유명인이 아닌 분들은 여러 도시를 소유한 부자인 것이다. 

다시 사무공간으로 돌아가 보자. 사무공간에선 개인의 업무를 진행해야함과 동시에 협업도 해야 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극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좋은 사무공간은 개방성과 폐쇄성이 적절하게 배합된 공간이다. 디자인 방법론적으로 좋은 사무공간은 ‘어디를 열고 어디를 닫아야 하는가’가 결정한다. 좋은 사무공간은 직원들로 하여금 넓고 빈 공간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곳이다. 그 비어있는 공간이 우리의 사고가 숨쉴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해준다. 천정고가 높은 사무실이 창의적인 환경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우리는 과거 넓은 자연을 바라보면서 지금의 문명을 창조해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최소한의 공간만을 소비하며 사는 데에 익숙해져서 우리가 원래 자연 속에서 얼마나 여유로운 공간을 소비하면서 살았는지도 잊어버린 듯하다. 또한 자연은 적절한 수준의 무질서가 있는 곳이다. 그래서 좋은 사무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역시 적절한 수준으로 카오스적인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한다. 적절한 빈도로 다른 사람과 부딪히는 환경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뇌 연구가 앤드류 스마트의 책 『뇌의 배신』(2014)에 의하면 사람은 아무 일도 안하고 멍하니 있거나, 혹은 명상을 하거나 놀이를 하며 빈둥거릴 때 뇌가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창의적인 상태가 된다고 한다. 작가는 창의적이기 위해서 경계해야할 것은 다른 사람에 의해서 설정된 목표와 시간표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라 하며, 스마트폰을 계속 보면서 무언가 일을 처리하는 동안에는 사람의 머리가 창의적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진정한 창의적인 직원이 되려면 출퇴근 시간도 없애고 일하는 시간에 때때로 명상을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결론이 된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이라는 것이 창의성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에 저 방법의 실현은 요원해 보인다. 다만 분명한 것은, 창의적인 사무환경을 형성하기 위해선 편하게 빈둥거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가장 빈둥대는 어린이들이 가장 창의적이지 않은가?

유현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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