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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문제에 대한대한민국 사법부의 판단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 씨가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신일철주금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상고심 판결에 참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지난 10월 30일(화)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의 제철소에서 강제 노역을 하고 임금을 받지 못한 원고 4명이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결과가 발표되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ⁱ 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94)씨 외 3명이 일본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재상고심에서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 원을 배상하라”라는 원심 ⁲ 판결을 확정했다. 반면 신일철주금의 상고(항소심의 판결 즉 제2심 판결에 대한 불복신청)는 모두 기각됐다. 이로써 대한민국 땅에서 원고들이 피고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지 13년 8개월 만에 사건의 최종결론이 지어졌다. 하지만 소송 당사자 4명 중 3명은 긴 소송 과정 중 세상을 떠났다. 이번 판결이 의미하는 바는 결코 가볍지 않다. 대법원이 1965년 일본과 맺은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 관계에 관한 조약’ 중 청구권 협정이 지니는 의미에 대한 해석을 중점으로 일본의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 자체를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후에 있을 일제강점기 배상과 관련한 다른 소송에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정부는 대법원의 재판 결과에 대해 실망을 표했고, 이에 외교부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일본 지도자들의 과격한 발언에 깊은 우려를 표하며 양국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오래도록 결론 나지 않았던 소송, 어떤 과정을 거쳤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1997년 12월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일본 오사카 지방재판소에 강제징용 피해 보상 및 임금 배상을 위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1965년 한일 양국이 맺은 청구권 협정에 의거, 개인에 대한 배상책임은 없다고 1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후 2005년 1월 한일청구권협정 관련 문서가 공개됨에 따라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 2심에서는 일본재판부의 판결이 국내에서도 효력이 있었으며, 신일철주금이 구 일본제철을 승계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원고패소 판결이 내려졌다. 그러나 2012년 5월 대법원은 이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 ⁳하며 일본재판부의 판결은 헌법의 취지에 어긋나기 때문에 일본 판결의 효력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또한 신일철주금은 구 일본제철을 승계한 기업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서울고등법원은 대법원이 파기환송한 재판에 대해 신일철주금 피해자 1명당 각 1억 원씩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으나 피고는 이에 불복하고 상고했다. 이후 해당 재판은 대법원에 재상고 되었지만 5년 넘게 소송에 관한 판결은 지연되었다. 이러한 대법원의 판결지연에 여러 추측이 제기되었다. 이에 서울중앙지검은 ‘강제징용 소송 관련 의혹’에 대한 수사를 진행했고 해당 소송에 박근혜 전 정부와 사법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개입한 정황을 포착했다. 그리고 지난 10월 30일(화) 대법원은 신일철주금 피해자 1인당 각 1억 원을 배상하라는 원심의 판결을 최종확정했다.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은 한일청구권협정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번 판결의 쟁점은 △일본법원 확정판결의 효력 △강제징용 당시 기업과 피고의 동일성 △청구권 존재 여부 △소멸시효 4가지로 볼 수 있다. 원고 여운택, 신천수의 경우 일본에서 동일한 소송을 진행하였다가 패소한 적이 있는데 이러한 일본법원 판결이 우리나라에서 그 효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가 논란되었다. 이에 대법원은 원심의 환송판결 취지에 따라 2003년 패소한 일본법원의 판결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으로 보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 가치와 정면충돌한다’라며 국내에서 효력을 갖지 못한다고 확정하였다. 

또, 원고들은 구 일본제철에서 강제노동을 당하였는데 이들에 대한 손해배상채무가 신일철주금에 승계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이 일어났다. 이에 대법원은 원심에서 환송판결의 취지에 따라 내린 청구권을 피고에게 행사할 수 있다는 판단을 확정했다.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 소멸 여부에 대한 논쟁이 이번 판결에서 주요했다. 대법원은 일본기업의 불법행위를 전제로 한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이 한일청구권협정 대상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어 피해자들이 일본기업을 상대로 위자료를 청구할 권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해당 쟁점은 원고들이 주장하는 손해배상 청구권이 협정에서의 청구권에 포함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와 그 효력이 핵심논쟁이었다. 이에 대법원은 피해자들의 청구권은 미지급 임금이나 보상금에 대한 청구의 성격을 띠는 협약과는 그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은 소멸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다.

마지막 쟁점은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 ⁴ 가 완성되었다는 피고의 주장이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였다. 대법원은 ‘피해자들이 소를 제기한 2005년 2월까지 한국에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 장애 사유가 있었다’라며 원고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피고의 주장은 권리남용이라고 판단했다. 1965년 이전까지 한일 국교가 단절됐었고 국교 정상화 이후에도 협정 관련 문서가 제공되지 않아 피해자들이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질적인 배상은 불투명, 판결 이후 한일 양 정부의 갈등은 고조 

이번 판결 이후 피해자들이 실질적인 배상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 여러 가능성이 존재한다. 판결에 따라 피고가 피해자들에게 직접 배상을 하는 방법이 있지만, 판결을 수용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압력을 받은 일본기업들이 배상을 거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마땅한 대책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기업들이 배상을 거부할 경우 일본기업이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 가지고 있는 재산을 강제집행을 통해 배상하는 방안을 시도할 수 있다. 그러나 신일철주금의 경우 국내에서 포스코의 지분을 가지고 있지만 재산관할이 미국으로 지정되어 있어 국내 재산에 대한 강제집행을 할 수 있는지도 불투명하다.

해당 판결은 한일 양국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재판 이후 일본의 고노 다로 외무상은 “강제징용 판결은 양국 관계의 법적 기반 근본부터 뒤엎는 것이다”라며 “한국 측에서 적절히 대응하지 않는다면, 양국 관계가 매우 험난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국제재판도 하나의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이에 외교부는 “일본 정부 지도자들의 발언은 타당하지도 않고, 현명하지도 못하다”라며 “사법부의 판단은 정부 간 외교의 사안이 아니다. 사법부의 판단에는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것이 민주주의의 근간이다.”이라고 대응했다. 

판결 이후 일본 극우단체 및 언론은 앞선 강제징용에 대한 한국 사법부 판결에 강한 반발을 보였다. 이들이 방탄소년단(BTS)의 멤버 지민이 월드투어 당시 입었던 티셔츠를 문제로 삼아 논란이 되자 TV아사이 뮤직스테이션 측은 BTS의 TV출연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티셔츠는 한국 광복을 기념하는 것일 뿐 일본의 원폭 피해에 대한 조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재판에 대한 불만이 엉뚱한 곳으로 튀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재판이 최종적으로 끝나고 피해자 이춘식 씨는 “같이 나와서 이렇게 판결받았으면 기뻤을 텐데 혼자 나와 눈물이 나오네”라며 승소판결을 함께 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길고 길었던 소송이 끝이 났다. 억울한 인생의 시기를 증명하려 함께 소송을 제기한 이들은 그 결실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사법부는 이번 판결과 같이 역사문제에 대한 공정한 심판을 꾸준히 이어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한일 양 정부는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고 피해자를 우선시하며, 단단히 얽힌 한일역사문제를 미래지향적으로 풀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ⁱ 대법원 전원합의체:대법원장과 대법관 13명으로 구성된 합의체로 대법원장이 재판장이 된다. 의결은 대법관 전원 3분의 2 이상의 출석과 출석인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이뤄진다.

⁲ 원심 : 현재의 재판보다 한 단계 앞서 받은 재판. 또는 그런 법원. 항소에서는 초심의 재판, 상고에서는 항소의 재판을 이른다.

⁳ 파기환송 : 원심판결을 파기한 경우에 다시 심판시키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돌려보내는 것을 파기환송이라 한다.

⁴ 소멸시효 : 권리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상태가 일정기간 계속된 경우에 그 권리의 소멸을 인정하는 제도이다.

 

 

 

이봉용 기자  lby6633@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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