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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아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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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유치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이 버스 안에서 시간이 멈췄으면!’, ‘이 침대 안에서 시간이 멈췄으면!’ 학원이 가기 싫어서, 숙제가 하기 싫어서. 어린 시절, 기자는 마음속으로 헛된 생각들을 되뇌곤 했다.

특히 버스, 이불 안과 같이 ‘밀폐된 공간’은 기자를 현실 세계와 분리시켜 시간의 흐름마저도 잊게 한다.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딱 좋은 공간들이다. 왕복 통학시간 4시간. 듣기만 해도 번거롭고 피곤한 이동시간이지만, 기자에게만큼은 소중한 일과의 한 부분이다. 기자의 일과 속 ‘시간을 정당하게 멈출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 순간만큼은, 기자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이 시간은 마치 ‘구간 반복’을 하듯 도돌이표를 찍으며 반복된다.

여느 때와 같이 시간을 멈춰 현실을 도피하던 기자에게, 어느날 색다르게 ‘멈춰있는 시간’이 다가왔다. 미술관 전시장이었다. 올해 9월 14일(금)부터 이번 달 11일(일)까지 성곡미술관에서는 사진작가 천경우(1969~)의 대규모 개인전인 <모르는 평범함>展이 열렸다. 기자는 전공 수업 과제를 명목으로 미술관을 찾았다. 전시장에는 약 15년간 10여 개국의 기관과 장소에서 행해진 그의 퍼포먼스들이 설치, 영상, 사진 등의 아카이브 형태로 구성되어 있었다. 천경우 작가는 장시간 노출을 통해 초상사진을 촬영하여 사진에 시간을 담아내는 예술가로 알려져 있다. 그에게 ‘사진’이란 한순간의 포착이 아닌 변화와 지속의 흔적이다. 이 때문에 천경우의 퍼포먼스 작업은 ‘확장된 사진’이라 불리기도 한다. 반면 퍼포먼스 작업은 일종의 일회성을 가지고 ‘증발’해버리기에, 회화나 사진과 달리 오랜 시간 지속되지 못한다. 따라서 작업이 다시 재생되기 위해서는 위 전시와 같이 미술관에 영상이나 사진 등의 미디어나 오브제, 매체로서 놓여야 한다. 전시장에 늘어선 퍼포먼스 작업들을 보며, 기자는 생각했다. ‘퍼포먼스란 결국 하나의 역사적 사건처럼 때를 놓치면 다시는 오롯이 체험할 수 없는 것인가.’

전시장 한 바퀴를 모두 돌고, 조각공원을 지나며 미술관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아뿔싸. 전시장 내부에서 인증사진을 찍는 과제를 잊어버렸다. 과제를 온전히 마칠 수 없다는 불안감과 후회, 그와 동시에 기자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생각이 스쳤으니. ‘전시는 이미 종료되어 다시는 전시장 내부에서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이 실수는 퍼포먼스 작업에서 기록을 잊어버린 실수와도 거의 유사하지 않은가?’ 퍼포먼스 작업에서 아카이빙은 엄연히 작업계획 중 일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하나의 퍼포먼스, 하나의 사건에서, 그를 기록하는 콘텐츠의 형태는 그 사건의 진행만큼이나 중요하다. 전시도 마찬가지다. 전시 기간이 끝나면 기획자가 고심하여 배치한 전시장의 작품 배치와 풍경은 금세 사라져 버리고, 전시장에 놓였던 작품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그렇다면 남는 건 사진이나 영상, 글 등의 기록뿐인가.’

흔히 인증샷이라고들 한다. 모든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사건의 영향력을 넓히거나 지속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기록이 필요하다. 사회 속에서 언론과 예술은 모두 시대의 기록으로서 작용한다.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올바른 기록을 위해 머리를 쥐어뜯는 누군가가 있다. 기록의 중요성이란 다소 진부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모든 이가 모든 순간 우려해야 하는 것이다.

중요한 일을 하려 하는가? 

어떻게 남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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