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8.12.7 금 15:35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S동 211호
Hommage

기자는 항상 마무리가 약했다. 기자가 벌이는 모든 일은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끝이 미약했다. 12년간의 정규시간과 1년의 추가시간 역시 마무리가 아쉬웠고, 기자는 내키지 않는 곳에서의 새로운 시즌을 시작했다. 무기력한 몸과 정신으론 시작조차 창대할 수 없었고, 그저 하루하루를 이어갈 뿐이었다. 어느 날 밤, 휴대전화의 불빛이 반짝였다. 신문사에 관심이 없냐며, 들어오면 예뻐해주겠다는 학과 선배의 문자에 아무런 생각 없이 노트북 앞으로 가 지원서를 작성했다. 어렸을 적 만화에서 선택받은 아이들이 모니터 화면을 통해 디지털 월드로 들어갔듯, 기자 역시 그 새벽의 모니터 앞에서 다른 세상을 맞이했다.

선택받은 아이들은 수많은 위기를 겪었다. 아픈 것은 물론이요, 생과 사의 경계를 걸으며 동료가 죽거나 사라지고, 정신이 황폐해지기도 했다. 그래도 그들은 동료가 있기에, 수많은 역경 속에서 살아남아 세계를 구했다. ‘선택받았다’는 시점에서 시작이 미약하다 볼 수는 없지만, 그들의 끝은 창대했을 것이다. 그 전이 그랬고, 그 후가 그럴 것이듯, 수많은 기자들은 누군가에게 울림을 주고 S동 밖으로 발을 내딛어 저마다의 빛을 발하였다.

그렇지만 기자는 이미 한창 빛나고 있을 동기들과 달리 아직 마무리를 짓지 못하였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였다. 솔직히, 어설프게 끝낼 뻔한 적도 여럿 있었다. 그럴 때마다 본성으로의 회귀를 막은 건 지금까지 ‘누나’라는 살가운 호칭을 붙이는, 누구보다 빛나는 두 선배들이었다. 무심한 듯, 아무렇게나 던진 한 선배의 한 마디와 한밤 중 가끔 울리던 다른 선배의 메시지는 외로움과 역경 속 버팀목이 돼주었고, 페이스메이커가 되어 나의 완주를 가능케 했다. ‘저 누나들처럼 되고 싶다’는 13년도 봄의 생각은 18년도 겨울에도 살아있다. 이제 기자에게 남은 일은 이 울림을 후배 기자들에게 전달하고, 남들보다 조금 더 길었던 걸음을 마무리하며 당신들처럼 빛을 발하는 것이다.  

열심히 걸어왔다. 때로는 타의로 쉬기도 했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조금 더 달리기도 했다. 결국 저 너머 결승선이 보인다. 내 대학생활의 전부였던, 이 좁고 어지러운 공간에서의 마지막이 다가온다. 드디어 끝난다는 안도보다는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남지만, 완전한 마무리를 위해서는, 당신들이 그리했던 것처럼, 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을 마주한다는 것. 그 수많은 감정의 교차를 두려워해 무의식적으로 마지막을 피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끝의 이면은 새로운 시작이기에, 후배들의 새로운 이야기를 위한 양분이 되어야만 한다. 그들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새롭고 더 거대한 갈등을 마주할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넌 내가 보고 뽑았으니까, 나는 너를 믿는다”라는 무심한 듯 던진 선배의 한 마디가 지금의 기자를 있게 하였듯, 기자가 직접 보고 뽑았기에 기자는 후배기자들이 그 모든 걸 이겨내고 더 아름다운, 찬란한 이야기를 써내리라 믿는다.

다시 어릴 적 만화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당연하게도 기자는 선택받은 아이들의 끝을 보진 못했다. 그렇지만 이번엔 끝을 볼 수 있으리라. 아니, 내가 직접 매듭을 지으리라. 이 종언을 끊어낼 젊은 그리스인은 없기에, 고로 매듭은 풀리지 않을 것이다. 매듭짓는 법과 끈기를 알려준 세 선배와, 감정의 스펙트럼을 알게 해준 소중한 후배기자들에게, 어디에선가 저마다의 빛을 발하고 있을 동기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기자는 매듭을 마무리 지으며 마지막 기사를 마친다.

이재환 기자  jhl0601@mail.hongik.ac.kr

<저작권자 © 홍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