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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의 재구성

(지난 호에서 이어집니다.)

 

아파트와 재개발

우리는 도시 재개발을 이야기할 때마다 먼저 기존 건물의 철거부터 고려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과거의 것들은 모두 없애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듯하다. 새마을 운동 시절에는 과거의 유산인 초가집이 철거 대상 일 순위였다. 4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불과 한 세대 전에 지은 강남의 강변아파트들과 강북의 달동네 양옥집을 철거하지 못해서 다시금 안달 난 것이 아닌가 싶다. 근대사에서 과거 흔적을 철거하고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 몇 번의 성공을 거친 우리나라이기에 이러한 사고방식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아시다시피 우리의 도시는 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에 비해 건축적으로 아름답지 못하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오래된 건축물이 없어서이다. 건축은 사람의 수명보다 오래 지속된다. 긴 시간을 거치면서 비로소 건축은 사람의 삶을 담아내고, 사람의 냄새가 배어나는 ‘환경’이 되는 법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우리나라에는 한국전쟁 이후에 새롭게 지어진 ‘젊은’ 건축물들만 있을 뿐이다. 절대적 시간이 부족하니 유서 깊은 도시의 형성은 요원한 것이다. 필자가 유치원생이던 시절, 사생대회에 나갔을 때의 경험이 생각난다. 그림을 그리다 맘에 들지 않으면, 울면서 망친 그림을 버리고 새 도화지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었다. 원하는 그림은 있는데 그것이 내 도화지에 그려지지 않는다고 계속 다시 시작했던 것이다. 우리나라 재개발의 모습도 마치 울면서 새 도화지를 달라고 떼쓰는 어린아이의 모습 같다. 몇십 년 동안 멋있는 모습을 기대하며 아파트를 지어댔다. 그런데 완성하고 보니, 유럽의 사진 속에 나오는 그림 같은 도시가 아니었다. 그러니 부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재개발 방식은 새 도화지 달라고 떼쓰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 아닐까? 알고 보면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는, 비행기까지 타고 가서 구경하는 파리도 수백 년 전 당시에 유행하던 집합주거로 채워진 도시일 뿐이다. 지금 보기에 끔찍한 판상형 아파트로 가득 찬 강남의 한강변도 100년 200년 지나고 나면 전 세계에서 비행기를 타고 구경하러 오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도시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그렇기에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철거해야 마땅한 환멸의 대상이 아니라, 약간은 인내심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할 보존의 대상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삼십년이 넘은 아파트 단지라도 근처 나무들이 건물을 가릴 만큼 자라면 그리 흉측해 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자연의 힘이 위대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좋은 예처럼 보인다. 앞으로도 계속 아파트를 짓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흉측한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시대를 대표하는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때때로 시간은 사춘기의 가슴 아픈 실연의 기억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만들어준다. 건축도 그렇다.

 

집 크기

집을 떠올려 보라 하면, 우리는 흔히 거실, 침실, 부엌, 식탁이 있는 공간을 상상한다. 아파트 광고에선 위와 같은 방들의 위치를 어떻게 배열했고, 얼마나 많은 수납공간이 있는지를 앞다투어 자랑한다. 하지만 이처럼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거실이라는 공간도, 과거 조선시대엔 없었던 공간이다. 거실이라 하면 우리는 소파가 있고 가족이 모여 TV시청을 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불과 50년 전만 해도,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다는 것은 보통사람들에게는 없었던 풍경이다. 방안으로 밥상을 차려서 들여오면 그 주변으로 둘러앉아서 밥을 먹다가 상을 내가면 다시 침실이 되는 가변적인 공간이 식탁을 대신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부터 집에는 식탁 놓을 자리가 필요해지고, 가스레인지, 전자레인지와 양문형 냉장고로 완성된 부엌의 풍경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새로운 가전제품을 두기 위한 더 큰 부엌을 필요로 했다. TV와 소파라는 제품들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아마 그것들을 둘 거실도 필요 없었을 것이다. 필자는 오래전에 존 F. 케네디의 생가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 집은 현대식 30평형대 아파트보다도 작았다. 케네디 가문은 당시에도 미국에서 손꼽히는 부유한 집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엌 크키는 지금의 15평형대 아파트 부엌을 연상케 하는 작은 규모였다. 당시의 케네디와 비슷한 재력의 부자가 살고 있는 현 시대의 집과 그 크기를 비교하면 10배도 더 차이가 날 것이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지난 50년간 미국 중산층 집의 크기는 2배 가까이 커졌다고 한다. 50년간 사람의 몸이 커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족 구성원의 수는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집은 이렇게 계속 커져왔을까? 가만히 살펴보면 커져버린 집의 공간은 물건으로 채워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눈뜨기 무섭게 이 세상의 TV, 라디오, 신문 같은 모든 매체에서 더 많은 물건을 소유해져야 더 행복해진다고 말하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는 그 물건을 사기 위해서 열심히 일한다. 그리고 또 그 많은 물건을 넣기 위한 더 큰 집을 구해야 한다. 더 큰 집을 사기 위해서 더 많이 일을 해야 한다. 그야말로 인간의 삶과 자연을 수탈하는 악순환이라 할 수 있다. 10년 후에는 새로운 발명품이 등장하여 또 다른 종류의 방들이 더 필요해질지도 모르겠다.

 

유현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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