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실화를 바탕으로 대중의 공감을 사다

대한민국의 변화를 이끄는 트리거(Trigger), 사회고발 영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소비하고 있는 영화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대중매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영화가 시각적이면서도 청각적인 매체일 뿐 아니라, 한 장소에서 많은 사람을 집단적으로 감동시킬 수 있는 막강한 전달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몇몇 영화인들은 이러한 영화의 특징을 앞세워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사회고발 영화를 제작해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내고자 노력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회고발 영화들이 국민들의 호평을 받았고, 실제로 그 중 몇 작품은 법 제정이나 사회 인식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지금부터 사회고발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던 사건과 그 작품들이 우리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 살펴보자.

 

영화 <판도라>(2016)의 스틸 컷
영화 <판도라>(2016)의 스틸 컷

원자력 발전소(이하 원전) 폭발과 국내 최대 규모의 지진 발생을 다룬 한국형 재난 영화 <판도라>(2016)는 지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현에서 발생한 대규모 원전 폭발사고 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만약 이와 같은 재난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 그렸다. 영화는 ‘한별 원자력 발전소’가 자리하고 있는 부산의 조그마한 어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극의 초반부, 원전 소장인 ‘평섭’은 현재 지나치게 노후화된 원전의 실태에 대해 청와대 비선에 보고했으나 무시당하고 다른 부서로 좌천되고 만다. 한편 평섭의 좌천 당일, 대한민국 동남부 해안에 규모 6.1의 강진이 덮치고 그 여파로 이미 낡을 대로 낡아있던 한별 1호기의 냉각수 파이프에 균열이 생겨 냉각수가 새는 사태가 발생한다. 결국 냉각수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은 상태의 핵연료가 어마어마한 수소를 발생시키며 그 압력이 수백 킬로파스칼(kPa)에 달하자, 원자력 격납 용기는 폭발 위기에 처하게 된다. 폭발을 막기 위해선 생성된 수소를 용기 밖으로 배출해야 하는데 이는 방사성 폐기물이 그대로 대기 중에 노출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컨트롤 타워인 정부는 대피 매뉴얼조차 없어 대한민국은 유례없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자연재해가 인재(人災)가 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 영화가 사회 변화의 트리거가 된 데에는 시의(時宜)성이 한 몫 했다. 개봉 직전인 2016년 11월, 원전이 위치한 경주 지역에서 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이에 우리나라는 원전의 대다수가 부산 등의 인구 밀집 지역과 근접해 있어 후쿠시마 사태와 같은 상황이 발생할 시 현실적으로 대처가 불가능하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발표되기도 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작품에 표현된 우리나라의 미비한 재난 대처 시스템과 원자력 발전소 노후화에 공감하고 분노했다.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극장에서 해당 작품을 감상한 후 탈핵에 대한 의지를 더욱 굳건히 표명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여파는 정부 차원의 논의로 이어지기도 했다. 또한 이듬해 6월 작품의 배경이 되었던 고리 원전 1호기가 영구적으로 정지되며 우리나라는 탈(脫)원전 시대로 나아가게 되었다.  

 

영화 <카트>(2014)의 스틸 컷
영화 <카트>(2014)의 스틸 컷

<판도라>가 가상의 사건을 상상해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한 영화라면,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아무개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사회의 이면을 보여주었다. 부지영 감독의 영화 <카트> (2014)는 대형마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부당해고 사건을 다뤘다. 영화에 등장하는 대형마트 ‘더 마트’의 임직원은 계약직 노동자인 주인공들에게 “열심히 일하면 정직원 되는 거예요”라며 업무에 최선을 다 할 것을 당부했다. 그 말만을 믿고 밤낮없이 열심히 일했던 계약직 노동자들은 이유도 모른 채 계약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부당 해고를 당하게 된다. 이에 분노한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이하 노조)을 설립해 그들의 부당 해고를 반대하는 농성을 벌인다. 그러나 회사 측은 이들 노조의 농성을 불법 점거라 말하며 용역과 경찰 인력을 끌어들여 강제 진압을 실시하고, 노조 구성원의 대체 인력을 고용하며 주인공들에게 끝없는 무력감을 심어준다. 또한 회사는 노조 내 교란을 위해 일부 인원만을 다시 복직 시키는 등 비열한 방법을 사용하며 장기전에서 노조의 농성 의지를 꺾고자 한다. 주인공들은 현실에 좌절하며 눈물을 흘리고, 타협을 생각하기도 하지만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다시 투쟁에 도전하기로 결심한다. 이 작품은 2007년, 2년 이상 근무한 계약직 노동자에 대해 정규직 또는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정부의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시행을 앞두고 비정규직 노동자 700여명을 해고한 ‘홈에버(이후 홈플러스로 매각)’사태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 상암동 홈에버 농성은 510일간 이어졌고 회사 측이 노조원 2000여명을 대상으로 무기 계약직 전환을 약속한 후에야 끝이 났다. 이 사건은 영화 개봉 이후 많은 사람들이 ‘<카트>의 실제 주인공들’의 현재 처우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며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익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가 진행됐으며 당시 무력으로 농성을 진압하려 했던 대기업들은 국민들의 비난을 받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2018년, <카트>의 실제 주인공들 중 237명이 정규직 전환을 약속받았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홈플러스 일반노동조합과 홈플러스 스토어즈가 지난 2월 근속 12년 이상 무기 계약직 노동자를 기존 정규직 직급인 ‘선임’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해당 사건은 민간에서도 정규직화를 이뤄낼 수 있다는 좋은 선례를 남겼고, 이는 사회고발 영화가 이뤄낸 작은 기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공지영 작가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한 <도가니>(2011)는 영화의 제목을 별칭으로 한 법안이 시행됐을 만큼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영화는 2000년 광주의 청각장애인학교인 인화학교에서 일어난 성범죄 사건을 그린다. 작품 속 주인공 ‘강인호’는 무진시에 있는 청각장애아 대상 사립 특수학교인 자애학원에서 교사로 일하게 된다. 그곳은 아픈 학생들에 대한 폭력과 성폭행이 일상화되어 있는 참혹한 곳이었다. 강인호는 학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세상에 고발하지만, 학교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지역 언론과 공권력의 반격에 좌절을 겪고, 범죄를 저지른 교직원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꽉 막히는 암울한 결말을 보여준 이 영화에 국민들은 크게 분노했다. 작품은 적나라한 사건 묘사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4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예상 밖의 흥행에 성공했다. 이에 당시 여론은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인 ‘광주 인화학교 성폭행 사건’을 재조명했고, 집행유예로 이미 석방되었던 범죄자들에 대해 2011년 9월 재수사가 확정되었다. 십여 년 전 벌어졌던 사건이었기에 재수사를 통한 큰 성과는 없었지만 행정실장 김모 씨에 대해서는 성폭행 혐의가 인정되어 징역 8년형이 선고되었다. 이후 국회는 장애인 아동에 대한 성폭행 범죄 처벌 수위를 높이고 공소시효를 없애는 등의 내용이 담긴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별칭 ‘도가니 법’)을 긴급하게 처리해 같은 해 11월 시행했다. 십여 년간 그 누구도 도전하지 못하고 피해 아동들을 아픔 속에서 꺼내주지 못했던 사회는 125분 짜리 영화 한 편에 의해 기적처럼 바뀌게 되었다.

 

앞서 소개한 작품 이외에도 다양한 작품들이 우리 사회 곳곳의 이면을 담아내 그 부조리를 알리고자 했다. 오락성과 대중성만을 중요시하지 않고 대중매체의 순기능을 활용하여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트리거, 사회고발 영화. 이러한 작품들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세상 어딘가에서 아픔을 호소하고 있을 누군가의 목소리에 공감해 보는 것은 어떨까?

 

SNS 기사보내기

저작권자 © 홍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기사

하단영역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