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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계급을 지나 순수한 식기로 거듭나기 위한 포크의 여정

반질거리는 포크에 반사된 공방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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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인어공주(The Little Mermaid)>(1989)에서 인어공주 에어리얼은 육지에서의 첫 식사 자리에서 포크로 머리를 빗는다. 그런 그녀를 쳐다보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인물들의 우스꽝스럽던 표정이 떠오른다.

 

식기가 소중한 줄 몰랐다, 포크 너도.

포크(fork)의 어원은 ‘갈퀴’란 뜻의 라틴어 ‘furca’이다. 그의 생김새를 생각하면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어원이지만, 우리 모두가 갈퀴로 무언가를 떠서 입에 넣고 있다는 상상을 해보면, 다소 께름칙하기도 하다. 한편 포크는 현재 우리 인류에게 무엇보다 간편하고 창의적인 식기도구다. 숟가락처럼 무언가를 떠먹을 수도, 젓가락처럼 무언가를 집어먹을 수도 있어 국가를 막론하고 널리 사용된다고 당연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포크가 식기로 여겨지고 있는 것은 생각보다 당연한 일이 아닌지도 모른다. 포크가 식기로서 자리를 잡은 역사는 고작 400여 년으로, 그 이전에는 식기가 아닌 조리기구로서 사냥한 짐승을 불에 구울 때 쓰던 두 갈래의 쇠꼬챙이일 뿐이었다. 예외적으로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 등에서 식기로 사용된 단편적인 예 외에는 전례가 없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포크가 식기가 되어 우리의 입에 들어오기까지 어떠한 과정이 있었던 것일까? 먼저 식기의 혁신이라 할 수 있는 젓가락의 시작을 살펴보자. 기원전 4세기경 중국에서는 젓가락이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이 ‘식기’의 유용성을 확인한 이웃 나라들은 앞다투어 젓가락을 수입하기 시작했다. 반면 같은 시기 유럽에서는 손가락으로 밥을 먹었다. 식기의 차별화조차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때였다. 태초 인류는 사냥감을 잡아 불로 구운 뒤 구운 고기를 돌도끼나 돌칼로 잘라먹곤 했기에, 이와 같은 습관이 이어져 나이프만을 가지고 식사하는 것에 익숙했다. 더불어 중세 시대 유럽의 경제성장률은 거의 바닥에 가까워  기층민들에게 미식은 사치였으며, 당시 이들이 먹던 음식은 묽은 죽과 빵이 전부였다. 이 때문에 포크의 부재는 이들에게 어떤 불편함도 가져다주지 않았다. 이처럼 10세기까지도 식기로서 부정을 당하던 포크는, 11세기가 되어서야 작게나마 주목을 받게 된다.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지방에서 끝이 두 갈래로 나뉜 소형 포크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식기로 거듭나기 위해! 포크의 험난한 여정

식기로서 빛을 발하지 못한다면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음식물이 묻은 식기가 아닌 하나의 날카로운 쇳덩이로서의 생김새를 살펴보자. 인어공주에게는 머리를 빗을 수 있는 ‘머리 빗’이던 포크는, 바다의 왕인 그녀의 부친이 바다에서 휘두르던 삼지창과도 닮았다. 뾰족한 끝은 꽤나 공격적이라 창이나 망치 같은 거대 무기의 위협적인 면모와도 닮았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일까. 포크는 이전부터 ‘악마의 무기’라며 많은 손가락질에 시달렸다. ‘악마’라는 표현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기독교도와의 충돌은 피할 수 없었다. 당시 포크는 마녀가 만들어낸 도구로, 이교도 신의 무기라고 여겨지기도 했다. 더불어 기독교인들은 포크가 로마시대 검투사들의 무기가 축소된 형태라고 주장하며 반신앙적인 도구가 식탁에 올라오는 것은 용납하지 못한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이러한 반발에도 맞설 만큼 그의 편리함은 강력했기에, 포크는 서서히 이탈리아 반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우선 위생에 있어서 그 장점이 드러났다. 손에 음식을 묻히지 않고 식사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고고한 이탈리아 귀족들은 마음을 빼앗겼다. 14세기엔 ‘카데나’라는 수저통이 유행하기까지 하며 개인용 스푼과 포크를 두기 시작했다. 더불어 카트린 드 메디치가 앙리 2세와 결혼하면서 이는 프랑스를 넘어 유럽 전체로 한순간에 퍼져나가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기독교도들의 눈엣가시로 남았던 포크는, 다음과 같은 반발에 시달렸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자연의 포크’인 손가락을 이미 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사악한 쇳덩어리를 신성한 식탁에 올려놓는 건 신에 대한 모독이다!” 아직까지 포크는 ‘사악한 쇳덩이’라는 인식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포크에겐 여전히 든든한 ‘지원군’ 이탈리아가 있었으니, 르네상스 시대, 포크의 고향 이탈리아에서는 포크가 하나의 유행을 넘어 문화로 자리잡고 있었다. 기독교 국가에서는 여전히 그 사용에 거부감을 드러냈으나 프랑스 대혁명 이후 포크는 드디어 인류 역사의 전면에서 엄연한 식사 도구의 하나로 등장하게 된다. 포크의 갈래 수는 두 개에서 세 개로 변모했으며, 프랑스의 귀부인들은 과일과 케이크를 먹는 데 포크를 사용하기 시작하며 그를 귀족 사회에서 어느 정도 안착하게끔 했다. 후에는 귀족들에 의해 포크가 네 갈래로 변모하기도 했는데, 이는 프랑스 대혁명 당시 프랑스 신분 구조 붕괴로 인한 귀족들의 공포심을 등에 업은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당시 세 갈래 포크는 대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했기 때문이다. 대혁명 당시 귀족들은 외국으로 망명을 떠나거나 프랑스 국내에 남아 단두대의 공포에 떨었고, 귀족이란 신분 자체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그들은 자신의 신분을 자각하기 위해 더 악착같이 포크를 사용했다. 포크는 상아나 금, 은으로 만들어져 각종 보석과 진주 등으로 치장되며 일종의 사치품으로서도 여겨졌기 때문이다. 식사 도구를 넘어서 흡사 액세서리와 신분증으로 그 의미가 부상한 것이다. 또한 상층 문화가 대중화되는 대부분의 경향에 따라, 포크는 철의 생산이 증가한 19세기 산업혁명을 지나 일반 대중들에게 보급되며 우리 모두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FORK!’ 아니 너 부른 거 아니야

식기가 대중적이지 않던 시절부터 프랑스 대혁명을 지나 산업혁명에 오기까지, 포크는 식기로서의 순수한 의미를 향한 긴 여정을 거쳤다. 여전히 그 독창적인 생김새는 식탁에서 벗어나 다양한 분야에서 또다시 공방을 자아내고 있다.

포크(Fork)는 경제, 스포츠, 사회 영역에서도 활약 중이다. 비트코인 용어에서 포크(Fork)는 ‘포크로 꼭 집어서 가져 온다’라는 말에서 시작해, 특정 내용을 그대로 복사해서 가져온다는 뜻으로 쓰인다. 더불어 포크(Fork)의 특이한 모양은 야구에서 ‘포크볼’이라는 용어를 탄생시켰다. 공이 손가락에 끼어있는 모양이 마치 포크(fork)로 음식물을 찍은 모양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포크볼’이라는 명칭이 유래했다. 마지막으로 사회로 뻗어나간 포크는 ‘Fork In The Road’, 즉 ‘길 한가운데 꽂혀 있는 포크’라는 어구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는 Y형 갈림길로 나눠지는 지점을 가리키는데, ‘선택의 갈림길’이란 관용구로서 정치 분야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다. 

 

본 용도가 어떠하던지, 그에 부여되는 의미에 따라 한 사물에도 사회의 단면이 담기게 된다. 지금까지 종교, 계급, 경제, 스포츠를 넘나들며 하나의 단순한 개념이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 깊숙이 퍼져나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이 과정을 거쳐 포크는 식기로 정착할 수 있었다. 현대의 포크는 어쩌면 머리를 빗는 빗이 되었을지, 무기가 되었을지, 혹은 치장용 액세서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발상과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에 따라 하나의 개념이 순식간에 다른 의미로 변모하는 것은 한순간이다. 언젠가 에어리얼의 포크 사용법이 적절한 도구 사용법으로 거듭날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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