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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기를 마무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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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기를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교정에서 만나는 만추의 정취가 그윽하다. 올 한 해 맺은 열매를 뒤로 하고 또 다른 새로운 한 해의 열매를 맺기 위해 수목들은 자기를 비우는 지난한 과정이 한창이다. 교정의 낙엽은 그렇게 우리에게 깊고 아름답게, 그러나 신산하게 다가온다. 문득 영국의 시인 예이츠가 읊은 “우리가 어떻게 춤추는 사람과 춤을 구별할 수 있겠는가”라는 성찰적 시구를 떠올리게 된다. 깊어가는 가을 교정에 고고하게 서있는 나무들은 잎인가, 줄기인가, 꽃인가, 아니면 나무 자체인가? 수목의 존재를 존재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세찬 바람에도 가련하지만 담대하게 나무에 붙어 생명의 위대함을 증명하고 있는 작디작은 가지는 그 대답이 유기적 관계맺음에 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한 학기 동안 지식과 배움에 관련된 많은 활동이 있었다. 이 활동에 튼실한 결실이 있기를 기대한다. 이번 학기에도 예외 없이 아는 것이 힘이라는 고전적 모토가 맹위를 떨쳤다. 베이컨의 이 말은 발언의 맥락과 상관없이 그 자체로 의미심장하며 여러 면에서 매력적이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지식의 기능적 측면을 강조하는 추세에는 더더욱 그렇다. 사실 지식에다 문제해결의 실마리로서의 힘을 부여한 것은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과정을 견인할 정도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지식이 고답적인 면을 품으면서도 현실문제 해결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베이컨의 경우 지식은 자연의 형상을 발견하고 자연현상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었다. 온전한 자연이해를 통해 잃어버린 낙원을 복원함과 동시에 인간의 영역을 확대하여 인간의 삶을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데 유용한 지식이 절실했는데 자연현상에 대한 지식은 이에 안성맞춤이었다. 여기에는 지식이 현실에 앞서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지식에 앞선다는 실제적인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지식은 어떤 형태로든 현실개선의 힘으로 작동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우리 모두는 베이컨의 후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핵심은 어떻게 하면 지식이 진정한 힘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아는 것은 힘일 수 있지만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힘이 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식이 오용되어 파괴적으로 작동하는 예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식이 정보와 기술을 넘어서서 지혜로 나아가지 않으면 지식의 힘은 쇠약해지며 퇴행적이 된다. 베이컨의 말을 들어 보자. “약삭빠른 사람은 학문을 멸시하며, 단순한 사람은 학문을 숭배하며, 현명한 사람은 학문을 이용한다. 왜냐하면 학문은 그 자체가 사용법을 가르쳐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 사용법은 학문 바깥에 있는, 학문을 초월한 지혜의 관찰에 의하여 얻어지는 것이다”(「학문에 대하여」). 학문의 정당성은 학문을 사용하는 인간의 사유 능력과 창조적 정신에 의존한다. 도덕적 진보와 인문학적 상상력의 조망 없이 지식과 기술의 진전만으로는 과학적 유토피아인 현대적 아틀란티스의 건설은 불가능하다.

지식, 힘, 효용이 삼위일체가 되어 우리 공동체의 비전을 실현하는 동력이 되기를 바란다. 지식이 힘이 되고 힘이 효용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성찰적 지혜와 깊은 인간애가 필요하다. 베이컨은 『학문의 진보』에서 인류를 최초의 낙원에서 추방시킨 것은 다름 아닌 교만한 지식이라고 말한다. 어떤 지식을 어떻게 추구할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식을 올바른 방식으로 인도하지 않으면,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유용성이란 미명 아래 정도가 아닌 지름길을 택하게 만든다. 지름길은 지혜가 없는 지식의 산물로 파편적이며 파괴적이다. 이런 식의 지식 추구는 지식이 우리의 삶에 작용하는 힘의 총체성과 통합성 또한 방해한다. 학문과 지식의 진보는 이기적 유익이 아닌 이타적 사랑으로, 지배하는 권력이 아닌 겸손한 권위의 자리에 설 때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특히 지식이 총체적이고 통합된 힘을 발현하기 위해서는 심판과 판단이 아니라 질문의 자리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그 질문은 교정의 가냘픈 나뭇가지는 알고 있지만 어쩌면 우리는 모르고 있는, 서로를 지지해주고 서로에게 생명력을 불어 넣어주는 유기적 관계맺음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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