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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가치를 발견하는

독립큐레이터 임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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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컵을 잡기 위해 임시변통으로 만든 손잡이, 의자에 편하게 앉기 위해 임시변통으로 만든 등받이. 컵의 손잡이와 의자의 등받이 모두 필요에 따라 일시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어느 순간 없으면 안 되는 필수요소로 남게 되었다. 이처럼 일상적인 사물에서 인간적 가치를 발견하는 큐레이터가 있다. 본교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한 임종은 독립큐레이터는 인간에 내재하여 있는 특성이 예술가들에 의해 작품화되는 것에 집중한다. 작품의 금전적 가치가 아닌 예술적 가치와 작가의 태도에 집중하는 독립큐레이터 임종은 동문을 만나보자.

 

Q. 대안공간 루프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객원 큐레이터 등을 역임하고, <인사이드, 아웃사이드>, <노마딕 레지던시>, <낭만도시(浪漫都市)>전 등 다양한 전시를 기획하는 독립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독립큐레이터의 길을 택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A. 처음부터 독립큐레이터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미학을 전공했기에 미술을 접할 기회가 많았고, 그 덕분에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친숙하게 생각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술계에서 일하게 되었다. 본교를 졸업하고 처음 일을 시작한 곳 역시 미술계인 ‘2004년 광주비엔날레’였다. 이를 시작으로 2006년부터 2007년까지 ‘홍대 앞 대안공간 루프’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그 이후에는 쌈지 국제 큐레이토리얼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해 <뻥화론 연구>라는 전시를 기획하기도 했고 사립미술관 ‘화이트 블록’에서 일하기도 했다. 큐레이터가 아닌 ‘독립’큐레이터의 길을 걷게 된 이유는 내 큐레이터쉽의 방향성과 맞는 전시를 하기 위함이었다. 

 

Q. 미술 전시 기획 외에 강연도 진행하고 있는데 강연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 강연은 본인이 접할 수 없는 영역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장이다. 그래서 나는 현장에서 활동하며 배운 것들을 많은 강연을 통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전해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다양한 곳에서 강연을 진행했다. 대학에서 10년간 강의했으며, 현재는 인천국립대학교와 인천가톨릭대학교에서 미술사와 현장 미술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대학뿐만 아니라 종로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전시자 양성 강의도 했다. 현장에서의 전시 기획을 원하시는 분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하기도 하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미술사 강의를 하기도 한다. 작년에는 고양아람누리에서 미술사 강의를 진행했다.

Q. 중국 현대미술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쌓은 연구와 활동 경력을 바탕으로 중국의 미술 기관과 협업을 하고 있다. 서양미술보다 동양미술과 관련된 활동을 많이 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A. 동양미술과 서양미술의 차이 때문에 동양미술 관련 활동을 주로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한국에서 발생하는 미술과 문화에 대한 비평적 시각이 동양이라는 지역과 관념에 관심을 두도록 한 것 같다. 그래서 지정학적으로 가깝고 실제로도 한국의 전통회화에 큰 영향을 미친 중국미술에 큰 관심이 갔다. 중국미술에 대한 관심은 대학생 시절의 연구로부터 시작되었다. 내가 미학과 학생이던 시절, 한국의 전통회화와 이론에 큰 영향을 준 등춘의 『화계』에 대해 연구하면서 한국미술을 넘어 동양미술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이런 동양미술에 관한 관심에, 전통을 키치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작품 경향과 전통을 벗어나고자 하는 최근 현대미술의 흐름이 더해지면서 동양미술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한국의 미술 교육은 서구로부터 유입된 미술 교육에 치중된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서구의 미술 교육과 시각문화는 우리가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시각문화와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서구의 미술 분석 방식만으로는 모든 한국미술이 해석되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과 지정학적으로 비슷한 위치에 있고 역사적으로 비슷한 사건을 겪은 중국과 일본의 미술 연구를 통해 한국미술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Q.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등 다양한 국가를 다니며 전시를 준비하는데, 한국에서 전시를 기획할 때와 다른 점이 있는가?

A. 한국과 다르게 중국에서 전시를 기획할 때는 미술관에서 어떠한 전시를 할 것인지에 대해 국가의 검열을 받는다. 한 일화로, 어느 작가의 작품 중 누드 작품이 있었는데 사전 검열과 작가와의 협의를 통해 해당 작품을 전시에서 제외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전시 기획을 할 때 이러한 조건들을 염두에 둔 채 기획을 하기에 진행에 크게 방해된 적은 없다. 다른 국가의 미술관도 각 국가의 정서에 맞게 적절한 조치를 한다. 한국의 경우 대안공간에서 전시할 때와 달리 미술관에서 전시할 때는 청소년 관람 불가 작품에 한해 어린아이들이 보지 못하도록 커튼을 친다.

 

Q. 다른 국가에서 전시 기획을 할 때 한국과의 연관성을 가지기도 하는가?

A. 일본 오픈 스튜디오에서 전시했을 때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접점을 활용하기도 했다. 과거 조선은 조선통신사를 통해 일본과 교류를 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서 영감을 얻어 조선통신사가 발굴한 편지를 해석한 것처럼 전시를 꾸몄다. 이렇게 문화 교류가 있던 지점을 활용하면 관람자도 전시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어느 국가, 어느 지역에서 전시 기획을 하느냐를 유념하여 전시 기획 및 작품 수집을 한다.

 

Q. 전시는 큐레이터의 관심사가 반영된 결과물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어떠한 것에 관심을 두고 전시 기획을 하는가?

A. 평소에는 주로 작가님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전시의 주제를 정한다. 최근의 관심사는 국경을 넘어 발생하는 사물의 예술적 가치이다. 일본의 한 작가는 해류를 타고 오키나와로 유입된 한국 소주병을 이용해 작품을 만든다. 하지만 소주병 자체가 질 좋은 유리가 아니기에 이를 이용해 작품을 만들면 열을 견디지 못해 터지기도 한다.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작품 또는 사물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작가는 불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작품을 만든다. 개인적으로 작가의 오브제에 대한 이러한 태도에 관심을 두고 있다. 

한 인도네시아 작가의 경우, 노동자의 편지로 작업을 한다. 이 노동자는 돈을 벌기 위해 대만까지 갔지만,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갇혀 있다. 감옥 안에서 노동자는 자신의 각질로 편지를 만들어 가족들에게 보낸다. 물리적으로 가족들과 떨어져 있지만, 노동자 신체의 일부는 가족과 함께 있게 된 것이다. 이렇듯 국경을 넘어 발생하는 사물의 예술적인 가치에 관심을 두고 있기도 하다.

이뿐만 아니라 스스로 ‘이것이 왜 예술일까?’라는 근원적인 질문도 하고 있다. 이러한 고민을 통해 <불멸의 임시변통>이란 주제가 나왔다. 이는 임시변통으로 사용한 것이 다른 것으로 대체되지 않고 불멸하는 것에 대한 전시이다. 예를 들어, 처음 컵에는 손잡이가 없었지만, 안에 담긴 액체로 인해 차갑거나 뜨거워 손잡이를 임시변통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손잡이라는 임시변통이 너무 적합해 임시적인 것이 아니라 불멸하게 된다. 이러한 임시변통은 창작과 통하는 면이 있다. 이러한 부분에 집중해 ‘작가들이 임시변통으로 만드는 것이 왜 예술일까?’ 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하고 있다.

Q. 큐레이터를 희망하는 본교 학우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가?

A.  독립큐레이터의 경우 연구하고 기획한 것을 실천해내는 힘과 끈기가 중요한 것 같다. 특히 독립큐레이터는 기관에 소속되어 일하는 큐레이터와 달리 사전 연구, 재원 및 공간 마련 등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한다. 그래서 독립큐레이터는 결재나 기안을 작성하지 않지만, 기금 신청서 작성부터 작가와의 협업 요청까지 모두 자신의 힘으로 이뤄내야 한다. 추진력과 끈기를 바탕으로 자신의 특징을 발전시키면 좋은 큐레이터가 되리라 생각한다. 미술계에는 다양한 큐레이터가 존재하기에 자신의 특징을 살려 본인만의 ‘큐레이터 상’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프로모션을 잘해 홍보에 능한 큐레이터도 있고, 깊이 있는 연구를 바탕으로 의미 있는 전시를 만드는 큐레이터도 있다. 자신의 특징이 곧 장점이기에 자신만의 개성을 살린 큐레이터 상을 만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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