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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잊은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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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방영된 <로맨스는 별책부록>(2019)이란 한 드라마의 대사는 평소 시를 좋아하던 기자의 심금을 울렸다.
“우리 출판사 시집 정말 안 낼 거냐? 다 죽는다. 어려워서 안되고 안 팔려서 안되고 안 팔릴 것 같으니까 안되고, 그러다가 시가 죽어. 시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출판 업계를 다룬 이 드라마에선 문학전문 출판사가 아닌 이상, 적자가 나는 시집은 간행할 수 없는 상황을 비춘다. 한편, 기자의 마음을 또 한 번 세게 두드린 드라마 속 장면은 한 젊은 무명 시인 이야기이다. 그는 자신의 시가 사람들에게 각광받지 못하고, 잊히더라도 계속해서 시를 써 내려가지만 결국 고독사하고 만다. 이때 흘러나온 독백 대사가 있다.
“가끔 아무도 원하지 않는 글을 혼자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그는 써야만 했다. 시(詩)는 매일 그의 마음을 쿵쿵 두드렸고, 그는 그것을 꺼내놔야만 했다. 세상은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 하나를 잃었다.”
인공지능이 발달하고 첨단 정보통신기술의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한 지금, 시는 점차 딱딱한 글자로만 여겨질 뿐 사람들에게 잊히고 있다. 물론 드라마나 영화 또는 유명 소설책을 통해 인용된 시집들은 한때는 사람들에게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초판 1000부조차도 팔리지 않고 사라져 가는 시집이 비일비재하며, 언론에서조차 시는 찬밥신세라는 것이다. 점차 시는 우리 삶 속에서 차지하는 영역이 더욱 좁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전의 시는 어떠한 역할을 하였는지 살펴보자. 먼저, 시는 우리 민족에게 빼놓을 수 없는 소통의 창구였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 대표적 저항시로 뽑히는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1926), 이육사 시인의 「광야」(1945), 윤동주 시인의 「쉽게 씌어진 시」(1942) 등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알법한 유명 시이다. 그들은 모두 시를 통해 희망을 노래하며, 민족의 얼을 공표하고, 그것마저 두려웠던 시대에 자신의 부끄러움이라도 당당히 고백했다. 3·1 운동 100주년을 맞이한 올해, 위 시들을 포함하여 서정시 100편의 시가 책으로 출판된다고 한다. 일제의 핍박 속에서도 끝내 살아남은 시가 역사의 한 부분에서 우두커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셈이다. 시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뜨거웠던 1970년대에도 활발하게 쓰였다. 유신 독재에 저항했던 김지하 시인은 1970년 풍자시 ‘오적(五賊)’과 ‘타는 목마름으로’ 등의 저항시를 낸 바 있다. 그 당시 지식인에게 시란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풍자하고 진실을 알리는 언론과도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현시대의 시인에게 시는 어떠한 의미를 가질까. 작년 첫 시집을 출시한 장은영 시인은 세계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시란 일상의 의미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삶을 이야기하는 독백이자 교감이라고 표현했다. 시작은 시인을 위한 글쓰기이지만, 타인이 시를 통해 공감한다면 더 없는 기쁨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시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 없이 타인과의 교감을 통해 이어지고 언제나 우리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통로이다. 
누군가는 시가 이성을 벗어나 감성만을 호소하는 글이라며 비난할 것이다. 하지만 시는 시대를 반영한다. 앞으로의 시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모르지만, 만약 기자가 세상을 떠난 후, 시가 사라진다면 매우 각박한 세상이 올 것만 같다. 언제나 우리 곁을 지켜온 시가 앞으로 우리 삶 속에서 함께 걸어가길 바라며 시를 잊은 그대에게 이 글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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