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출발선상에서 결승선을 바라보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드디어 3월이 시작된다. 지난주 학교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으로 꽤나 분주했고 기자들 역시 취재로 분주했다.

‘새 학기, 새 학년’. 본지의 기사들은 1학기의 개강을 알리며 2019년의 시작과 그 신선함을 담으려 하지만, 사실 이를 작성하던 기자들에게 설레고 수줍어할 여유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매년 3월, 편집국은 여느 때보다 능숙하고도 처절하다. 수습기자들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기자실에 새로운 구성원이 없다는 뜻이며 그만큼 모든 기자들이 숙련된 상태라는 것. 동시에, 인원이 가장 박한 시기인 것이다. 처절하지만 그 나름대로 자랑스럽다. 마치 쳇바퀴가 굴러가듯이 일처리가 척척 되는 듯 보일 테니 말이다.

우왕좌왕 어쩔 줄 몰라하던 수습기자들이 모두 정기자로 성장해 당연하게 일처리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면 스스로도 신기할 따름이다. 그러나 이들이 겪어온 빠듯한 기자 생활을 떠올려본다면 이 빠른 성장도 전혀 신기해할 일은 아니다. 학업과 취재를 병행하는 신문사의 학생기자로 살아가는 것은 고되다. 그중에서도 알고자 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기자’는 더욱 혼란스럽다. ‘알지 못하는 기자’가 수습기자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기자들이 활동 내내 ‘알고 싶어 하는 것’은 2가지인데, 바로 취재원의 답변과 기자의 역할이다. 기자가 취재원의 답변이 궁금한 것은 당연지사, 그런데 기자가 기자의 역할을 모르면 어찌하겠다는 것인가?

글쎄다. 기성 언론마저도 종이신문은 물론 방송국 뉴스조차 찌라시와 1인 방송, SNS에 묻혀가고 있으며, 자신들의 입지를 잃지 않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서 기자들은 그들의 입지와 역할에 대해 혼란을 겪는다. 과연 ‘기자’라는 신분이 이 시대에 의미가 있는가, 과연 지금 이 기자 명함이 당장 누군가에게 내밀어졌을 때 ‘팩트’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특권이 될 수 있을까. 실상은 다소 어려운 터다. 사실상 지금의 대학 신문은 학내의 여론을 이끌만한 압도적인 파급력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취재를 할 때에는 ‘기자’라는 말이 주는 압박감에 도리어 손사래를 치며 도망가 버리는 취재원들도 있다. 학생기자들에게 혼란을 주는 것은 그뿐이 아니다. 수습기자들은 묻는다. ‘신문사에서 활동하는 시간은 얼마나 되나요?’ 사실 늘 답하기가 어렵다. 기자에게 활동하는 시간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기사 마감시간만이 존재할 뿐이다. 신문사에 입사해 취재기자로서 기자실에 들어오는 순간, 학생기자로서의 활동은 시작된 것이며 여유롭고 순진하던 대학생은 기자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기자로 거듭나 여러 학기를 지낸 정기자도 결국 ‘잘 알지 못해’ 혼란을 겪는다. 기자가 무엇인지, 취재가 무엇인지. 그보다 기자가 되면 언론과 학생기자가 위와 같이 얼마나 열악한지에 대해 배우고, 학생기자의 역할이 무엇인지는 도리어 질문을 받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도 완벽히 알지 못한다. 우리 기자들은 그저 대학생이다. 일련의 교육을 받은 전문가도 아니며, 특수 요원도 아니다. 하지만 그저 막연한 ‘기자’, ‘언론’이라는 이름에 온 사명을 다하기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스스로 배우느라 바쁘고 처절하다.

홍대신문 학생기자의 활동 임기는 최대 3년, 즉 6학기로 하고 있다. 학생기자의 임기가 비교적 짧게 한정되어 있듯이, 편집국장 역시 올해 위임받아 활동을 막 시작하는 찰나에도 퇴임이라는 결승선이 머지않게 눈에 보인다. 마라톤이 아닌 강제 단거리 경주다. 설상가상으로 인수인계 절차조차 삐거덕댈 때가 있어 매년 새로운 데스크는 맨땅에 헤딩을 하며 새로운 신문을 만들고 있다. 이 때문에 대학신문은 뚜렷한 방향성이나 성격을 갖기도 어렵다. 그러나 결국 대학에서 학생들의 수명은 길어야 4~5년이다. 조상들이 역사를 남기고 지상에서 떠나듯이 학생들과 기자들은 그저 수명을 다해 이 학교를 떠나는 것이다.

대학신문은 이 찰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동시대의 학생들을 기록하고 쌓는 기록물이며 그 속의 학생기자는 마치 사립탐정과 같은 존재여야 한다. 전문기자가 아니더라도, 기자라는 이름을 달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기자는 경찰, 검찰 등의 공권력처럼 강제권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그저 국민들 속에, 학우들 속에 스며들어 ‘오지랖’으로 모든 이들을 연결하고 알리며, 현 사회를 파헤친다. ‘기자’라는 것이 어렵고, 그 수명과 한계가 짧고 명확해 출발선에서부터 그 결승선이 보여 두렵다 할지라도, 다른 계산이나 계획은 필요하지 않다. 신문은 계속 발간될 것이고 우린 그대로 달리면 되니까.

SNS 기사보내기

저작권자 © 홍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기사

하단영역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