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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이한얼인연과 소통을 담은 영화로 과거와 현재를 잇는

 

‘쉬운 일이었다면, 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인상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말이다. 저명한 화가였던 고흐조차도 슬럼프에 대해 언급하며, 계속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호우시절>(허진호, 2009), <암살>(최동훈, 2015), <덕혜옹주>(허진호, 2016) 등의 영화를 통해 과거의 이야기와 인연들이 현재의 사람들에 끊임없이 스며들고 있다고 말하는 이한얼 영화감독은 자신의 슬럼프에 대해 털어놓으며 젊은 예술가들을 위로한다. 더불어 그는 단순한 영상물을 넘어 개개인에게 삶의 일부로서 자리매김한 현대 영화의 존재가치를 재탄생 시킨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한 2019년 3월, 절망과 희망은 모두의 몫이라고 말하는, 그리고 현대에 남은 과거 이야기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이한얼 영화감독을 만나보았다.

 

Q. 2009년 영화 <호우시절>의 각본과 조감독을 맡으며 본격적인 영화 작업을 시작했다. 영화 창작을 시도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A. 어릴 때부터 꿈이 영화감독이었다. 전역 후 북경으로 여행을 다녀왔는데, 당시 북경을 보며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곳에서 영화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에 중국 유학을 다녀왔다. 유학기간 동안 당시에는 하나밖에 없었던 ‘북경전영학원’을 다니며 북경의 매력에 점차 매료되었다. 이후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에서 영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 후 허진호 감독님과의 만남을 통해 첫 발을 뗀 영화가 바로 <호우시절>이다. 

 

Q. 영화에는 다양한 인물이 나온다. 한 작품 안에서 인물들이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그리려면 각 캐릭터의 뚜렷한 개성이 두드러져야 하는데, 이러한 작업을 위한 본인만의 노하우는 무엇인가?

A. 스스로의 경험에 많이 의존한다. 영화의 핵심은 ‘누가 무엇을 하는가?’이다. <호우시절>의 경우, 캐릭터 설정을 위해 방문한 ‘두보초당’이라는 지역의 가이드 여성에게서 인상적인 느낌을 받아 ‘가이드’라는 직업을 가진 여성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남자 주인공의 경우 스스로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는데, 과거에 사랑했던 여성을 훗날 만났을 때 같은 경험을 다르게 기억하는 점을 재미있다고 느껴 영화의 소재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야기는 진실 될 때 가장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의 경험에서 캐릭터를 만들고 소재를 선택했기에 관객들에게 감동을 전달할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Q. 영화 <호우시절>(허진호, 2009), <두개의 빛: 릴루미노>(허진호, 2017)에서 섬세하고 잔잔한 문체(대사)가 인상 깊었다는 평이 많았다. 멜로·로맨스 장르의 각본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A. 멜로·로맨스 장르의 구조는 비슷한 경우가 많다. 사랑하는 연인의 만남, 사랑, 또는 이별이다. 대부분의 사랑 영화는 구조에 변화가 거의 없다. 영화를 각각 다르게 만드는 것은 캐릭터다. 주인공이 어떤 사람이며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줄거리와 마찬가지로, 진실된 캐릭터 자체가 감동을 줄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두개의 빛: 릴루미노>의 경우 시각장애인 인터뷰를 다니며 모르는 인생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많이 보냈다. 한번은 시각장애인 세미나가 끝나고 나오는 길에 시각장애인 부부가 손을 잡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았는데, 보이지 않아도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져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후 이 부부와 많은 인터뷰를 하며 캐릭터 연구를 했던 것 같다. 인터뷰와 대화를 통해 캐릭터의 진실성을 찾는 것이 멜로·로맨스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Q. 영화 창작 과정에서, 각본에 따른 인물의 캐스팅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가?

A. 캐스팅은 미묘한 과정이지만 개인적으로 ‘인연’의 힘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보통 각본을 쓸 때 인물에 맞는 사람을 생각하며 쓰는 경우가 많은데, 생각했던 사람과 성사되는 경우도 있지만 다양한 이유로 예상치 못한 인물과 함께 하기도 한다. 그리고 주인공이 두 명인 경우, 한 쪽이 결정되면 다른 한 쪽은 쉽게 연결되기도 한다. <호우시절>을 예로 들면 배우 ‘고원원’ 씨를 만나자 마자 ‘정말 각본에 맞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란 소통의 과정이기 때문에 자신과 잘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그 모든 과정이 인연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Q. 영화 <암살>(2015), <덕혜옹주>(2016) 등의 작품은 역사적 사실을 다룬다. 이처럼 실제와 픽션이 섞인 내용을 다룰 때, 사실과 허구의 비중은 어떻게 두는 편인가?

A. <덕혜옹주>의 경우 각본 작업에 1년 반이 걸렸다.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할 수도 없고 인터뷰를 구할 수도 없는 내용이다 보니 개인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작업이다. 이런 작업의 경우, 기록되어 있지 않은 부분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캐릭터가 탄생한다. 

‘Fact’와 ‘Trust’는 비슷한 말인 듯하지만 다른 말이다. 영화는 ‘Fact’보다 ‘Trust’를 다루는 분야이다. 역사적 사실에 대해 주관적인 견해가 들어갈 때 ‘Trust’가 되는 것이다. <암살>도 마찬가지이다. <암살>의 대부분은 허구에 가까운데도 관객들은 등장인물의 진실성에 인간미를 느꼈다. 이처럼 인물들이 현실성을 띠게 될 때, 그 인물은 실제 인물이 아니더라도 과거를 넘어 현재에서 되살아난다. 역사물에서는 있는 그대로를 담기보다 진실성 있는 캐릭터를 만드는 데 더 의의가 있는 것 같다.

 

Q. 최근 조감독 및 각본을 맡은 작품들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내용인데, 이러한 주제의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A. 영화 작업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현장의 분위기이다. <암살>의 경우, 현장 분위기가 끈끈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서로 말은 하지 않아도 사명감 같은 것이 자연스레 생겼던 것 같다. 미술팀, 배우, 감독 모두가 역사를 다루는 영화 현장의 일원으로서 한 마음으로 임했다. 이러한 끈끈함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영화를 만들 때 ‘이 영화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당연한 것이지만, ‘이 영화가 역사에 남을 영화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역사 영화에서 특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과거를 살아갔던 사람들이 오늘날 영화로서 남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예술가로 불리는 이외수 문학가의 장남인데, 아버지와의 관계가 영화 창작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하다.

A.  아버지의 독자로서 아버지의 글을 사랑하기도 하고 인간적으로도 아버지를 사랑한다. 그런데 어릴 때는 아버지의 영향력이 크다보니 다소 부담스럽기도 했었다. 

예술을 꿈꾸거나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모와의 정신적인 탯줄을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온전한 나’의 상태에서 비로소 예술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나의 예술’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의식하지 않아도 작품 속에는 예술가의 가족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다만 이러한 작품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며 예술적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부모와의 정신적 단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3·1절 100주년을 맞이하여 <말모이>(엄유나, 2018) 등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영화들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역사 영화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재미, 감동 등 영화의 존재 이유는 다양하다. 이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소는 영화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존재 가치의 보존은 미래에도 계속 꺼내볼 수 있는 역사 영화의 의무가 된다. 역사 영화가 끊임없이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는, 영화가 우리 사회에서 개인의 존재가치를 나타내는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역사 영화는 누군가에게 삶의 일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 영화는 이러한 면에서 어떤 매체보다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영화 자체만으로 개인의 삶과 가치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 영화는 누군가의 삶에 개입을 넘어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영화를 사랑하는, 영화감독을 꿈꾸는 본교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A.  영화를 꿈꾸고 사랑하는 일은 매우 피 끓는 일이면서 동시에 암울한 일이기도 하다. ‘태양에는 임자가 없다’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태양을 가슴에 품는 사람이 태양의 주인이다. 희망도 마찬가지다. 영화감독이 되겠다거나 각본을 쓰겠다는 각오와 함께 희망을 가지는 순간 그 희망은 본인의 것이 된다. 태양에 임자가 없듯, 희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이산희 기자  ddhh1215@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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