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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력근로제, ‘주 52시간 근무제’와 발맞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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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9일(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최대 3개월이었던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6개월로 확대하는 데 합의하여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지난 2월 19일(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최대 3개월이었던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6개월로 확대하는 데 합의하여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지난 7월 문재인 정부는 ‘저녁이 있는 삶’을 목표로 근로자의 주간 최대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했다. 재계는 이에 대한 부작용이 발생할 것을 우려했다. 특히 계절이나 시기에 따라 근무량이 달라지는 직종의 경우, 주 52시간 근무를 지속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다. 재계는 이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탄력근로제의 단위 기간을 확대할 것을 제시했다. 재계의 제의에 따라 정부가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확대하기로 하면서 탄력근로제를 둘러싸고 여러 갈등이 나타났다. 그렇다면 탄력근로제란 무엇이고, 그의 단위 기간이 확대되면 이전과 무엇이 달라지는 것일까?

 

주 52시간 근무제에 탄력근로제 끼얹기?

탄력적 근로시간제, 이른바 탄력근로제는 유연근로제의 일종으로 근로기준법 51조에 근거를 두어 일정 기간 업무량에 따라 근로시간을 조절하는 제도다. 도입 기간 중 일이 몰리는 특정일에는 근로시간을 늘리고 나머지 기간에는 근로시간을 줄여 결과적으로 평균 노동시간을 법정노동시간으로 맞추는 방식이다. 현행법상 탄력근로제를 도입할 수 있는 단위 기간은 최대 3개월이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 도입 기간 3개월 동안 평균 근무시간을 주 52시간으로 맞추는 선에서 유연하게 근무시간을 바꿀 수 있다. 즉, 노동자가 업무가 많은 6주 동안 주 64시간 근무를 한다면, 나머지 6주 동안 주 40시간 근무한다.

한편 재계는 주 52시간 근무제 연착륙 방안으로 현재 최대 3개월까지로 정한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최대 6개월에서 1년으로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작년 7월부터 근로시간 단축을 적용받고 있는 대기업 및 중견기업 317곳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24.4%가 ‘주 52시간 초과 근로가 아직 있다’라고 답했다고 밝혔다. 기업들은 근로시간 단축에 대응하기 위한 제도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48.9%로 가장 많이 꼽았지만, 실제 활용률은 23.4%에 그쳤다. 재계는 기업들이 근무시간 변화에 대한 대응으로 탄력근로제를 활용해야 하지만, 짧은 단위 기간과 복잡한 도입 절차로 제도 활용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주장했다. 또한 유럽연합(EU), 미국, 일본 등을 사례로 제시하며 대부분의 선진국이 탄력근로제의 단위 기간을 최대 1년으로 정했다고 뒷받침했다.

재계의 의견을 반영해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는 지난해 11월 5일(월)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첫 회의에서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그러자 노동계는 반발의 목소리를 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단위 기간 연장은 정부가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하며 내세웠던 ‘탈(脫)과로사회’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현재 노동부는 12주 동안 주 60시간을 일하다 노동자가 사망했을 경우 직업병으로 인한 과로사를 인정하고 있다. 만약 단위 기간을 최대 6개월로 확대한다면 3개월 동안 주 64시간을 일하고 나머지 3개월 동안 주 40시간을 일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또한 단위 기간을 조작해 6개월 내내 주 64시간 근무도 할 수 있게 된다. 단위 기간 6개월 중 첫 3달을 주 40시간, 이후 3달을 주 64시간 근무한 직후 다시 3달 동안 주 64시간, 나머지 3달을 주 40시간 근무하면 6개월 동안 연속해서 주 64시간 근무를 할 수 있다. 따라서 단위 기간을 확대하는 것은 과로사를 합법화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또한 노동계는 단위 기간 확대를 기업들의 이윤 추구 행위라고 주장한다. 주 52시간 근로의 경우, 주당 평균 근로시간인 40시간을 뺀 연장근로 12시간에 해당하는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탄력근로제 도입 기간에는 이에 해당하는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단위 기간을 연장하면 임금이 줄어들어 기업의 이득도 늘어난다.

이러한 이유로 노동계는 본인들의 목소리가 담기지 않은 해당 합의를 ‘정치적 야합’, ‘개악’이라고 비판했다.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최대 6개월로 확대하면 6개월 연속 주 64시간 근무도 가능하다.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최대 6개월로 확대하면 6개월 연속 주 64시간 근무도 가능하다.

대화가 필요해

정부는 노동계의 반발에 한발 뒤로 물러났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22일(목) 새로운 사회적 대화 기구로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를 출범시켰다. 경사노위를 통해 노동계도 탄력근로제 개정에 대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경사노위 첫 회의에 참석해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법적으로는 대통령의 자문기구이지만 최대한 힘을 실어 주겠다”라며 노사정 합의에 대한 기대를 보였다. 하지만 경사노위에서 합의안을 만들지 않을 경우 국회에서 강행처리 하겠다는 확고한 입장도 밝혔다.

경사노위는 출범 3개월이 지난 2월 19일(화) 탄력근로제 확대에 합의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을 제외한 노사정이 9차례 회의한 끝에 극적으로 나온 합의다.

이번 합의로 기존의 3개월이었던 단위 기간이 6개월로 늘어났다. 대신 근로자의 휴식권과 임금을 보장하는 항목이 추가되었다. 먼저 3개월을 초과하는 탄력근로제를 시행할 때는 근로일 사이에 노동자가 11시간 연속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의무화했다. 장기간의 근로로 인한 건강권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안이다. 임금 보전 방안으로는 3개월을 초과하는 탄력근로제 시행 시, 사용자가 보전수당, 임금할증 등의 임금 보전 방안을 마련해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의무적으로 신고하도록 했다. 이를 불이행할 경우 사용자에게는 과태료가 부과된다. 단, 근로자 대표와 임금 보전 방안을 서면으로 합의하면 신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재계가 지적한 복잡한 도입 절차 또한 완화되었다. 탄력근로제는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 합의를 통해 도입하는데, 기존에는 사용자가 근로일별로 근로시간을 사전에 지정해야 했다. 하지만 3개월을 초과하는 탄력근로제 시행 시 이에 어려움이 있어 주별로 근로시간을 정하도록 합의했다. 대신 최소 2주 전에 근로일별로 근로시간을 통보하도록 했다. 만약 서면 합의 당시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천재지변, 업무량 급증 등의 불가피한 사정이 발생할 때는 근로자와의 협의만으로도 주별 근로시간을 변경할 수 있다. 물론 이때도 근로일별 근로시간을 노동자에게 미리 통보해야 한다.

해당 합의안은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에 맞춰 단계적으로 적용하기로 했다. 기업의 규모에 따라 도입 시기가 다른 주 52시간 도입과 연동한다는 것이다. 또한 고용노동부에 전담기구를 설치해 3개월을 초과하는 탄력근로제의 도입과 운영을 3년간 자세히 분석해 개선 방향을 파악하기로 했다.

 

합의’를 둘러싼 ‘대립’… 이젠 국회가 껴안을 과제 

탄력근로제 확대 법안은 이제 국회의 입법 과정만을 앞두고 있다. 정치권은 합의 직후 합의안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이번 합의가 모든 숙제를 다 해결한 것은 아니다.

노동계와 재계는 각각 합의안에 대한 불만을 표했다. 특히 합의안 조항마다 붙은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 합의’라는 문구가 문제였다. 노동계는 근로자를 보호하는 조항마다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 합의가 있는 경우’라는 단서가 붙어 조항이 무력화될 것을 우려했다. 사용자가 무력한 근로자 대표를 세워 조항을 유명무실하게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또한 노조 조직률이 낮은 중소기업이나 미조직 영세사업장이 많아 노사합의에 따른다는 조항들이 오히려 노사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재계는 강력한 노조의 경우, 도리어 서면 합의를 해줄 리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노사 간 합의를 이루기는 했지만, 노조가 현장에서 합의를 해줄 가능성이 적다고 지적한다. 또한 일부 업종에서는 6개월의 단위 기간은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노동계 내부에서도 입장차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경사노위에 불참한 민주노총은 합의 다음 날인 20일(수) ‘박근혜 시절 노동개악 노사정 야합과 다른 게 무엇이냐’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게시해 이번 노사정 합의를 비판했다. 이날 오후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민주노총 간부 결의대회에서 오는 3월 6일(수) 총파업을 예고하며 삭발식을 진행했다.

반면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하 한국노총)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노동계의 목소리가 한낮 구호로 취급되는 경험을 수없이 해왔다”라며 “반대만 하다가 합의가 안 된 사안을 국회에서 개악할 수 있기 때문에 경사노위에 참여했다”라고 말했다. 한국노총은 이번 합의안에 모두 만족하는 것은 아니지만, 노동자를 보호하는 조항과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에 따른 후속 조치로 ‘과로사방지법’에 대한 논의 가능성에 초점을 두었다. 또한 민주노총에 대해서는 “민주노총의 우려와 주장은 이해하지만, 사회적 대화의 길이 열려있고 참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참여하지 않고 반대만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라고 전했다. 이어 민주노총과 대화 가능성에 대해 “민주노총이 반대만 하는 상황에서 대화는 불가능하다”라고 밝혀 양대 노총의 대립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달 31일(일) ‘주 52시간 근무제’의 계도기간이 종료된다. 이를 앞두고 주 52시간 근무제와 함께 단계적으로 시행하기로 한 합의에 따라 국회는 계도기간 종료 이전에 탄력근로제 확대 법안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그러나 국회 정상화 여부가 문제다. ‘손혜원 청문회’와 선거제 개혁안 등을 놓고 여야의 갈등이 커 3월 임시국회 소집 여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기 때문이다.

탄력근로제 개선안 입법 과정을 앞두고 여야, 노동계와 재계, 양 노총 각각 서로 간의 입장 조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모두가 완전히 만족하는 법안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양측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이들은 최선의 법안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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