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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임, 그 반짝임과 특별한 촉감 속으로

어린 시절 동네 문방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던 액체 괴물을 기억하는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초등학생 시절을 보낸 독자들은 아마도 일명 ‘액체 괴물’이라는 장난감을 가지고 논 추억이 있을 것이다. 물컹하고 투명하며, 자유자재로 모양을 바꿀 수 있던 신기한 그 장난감의 이름은 바로 ‘슬라임(Slime)’이다. 십여년 전만 해도 어린아이들의 장난감으로만 여겨졌던 슬라임은 최근 염료를 통한 화려한 색감과 글리터 등의 재료와 만나며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슬라임의 열풍에는 환경이나 안전성 논란 또한 존재한다. 그럼에도 슬라임의 미끈미끈하고 촉촉한 느낌은 여전히 이를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제 중독적인 슬라임의 세계로 빠져보자.

 

슬라임, 너는 누구니?

한번 만져보면 쉽게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촉감의 슬라임은 사실 과학의 산물이다. 슬라임의 주원료는 화학에서 알려진 수화젤(hydrogel) 또는 젤(gel)로 수화젤은 본래 식품, 의료, 그리고 산업 등 사회의 다양한 방면에서 활용된다. 그렇다면 수화젤은 어떻게 장난감이 되었을까?

본래 슬라임은 미국의 공포영화에서 연출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으나 이후 1970~80년대 장난감 회사들이 이를 장난감으로 생산하며 대중화되었다. 장난감 회사들 중 수화젤을 장난감으로 처음 개발한 곳은 미국의 장난감 회사 마텔(Mattel)이다. 마텔은 1976년 식품첨가제 ‘탄수화물 구아검(Guar gum)’에 소량의 붕사를 넣어 슬라임을 개발했다. 두 물질의 화학적 특성에 의해 물에 녹은 붕사에서 생긴 붕산 이온이 구아검의 고분자 사슬을 실타래처럼 만들어 준 것이다. 덕분에 슬라임은 지금과 같은 촉감과 형태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한편, 과학의 산물인 만큼 슬라임 만들기는 화학을 소개하는 시범용 실험으로 활용되며 과학 이벤트나 실험교실 등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이와 관련한 영화 <플러버(flubber)>(1997)에서 화학 교수가 만들어낸 주인공 ‘플러버’는 그 모습이 슬라임과 흡사하다.

 

슬라임, 스타가 되다

2000년대 초반 이후 슬라임의 인기는 한동안 하락세였지만 2015년부터 다시 슬라임 열풍이 불며 현재는 유튜브(Youtube) 인기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국내에서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의 주류 요소로 사용되며 많은 관심을 끌었다. 또한 새로운 조합을 통해 슬라임을 만드는 과정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 힐링 효과가 대두되며 슬라임은 세대를 막론하는 인기를 끌고 있다. 슬라임을 직접 만들 수 있는 슬라임 카페나 놀이교실 등의 공간이 새로운 창업 아이템으로 부상하기도 했다. 특히 슬라임 카페는 초기 창업 비용이 다른 아이템보다 상대적으로 낮고, 슬라임 재료 외에 별다른 시설이 필요 없다는 장점을 가져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이는 슬라임 생산의 산업화로 이어져 관련 분야가 호황을 누리는 원인이 되었다.

또한 슬라임은 장난감에서 그치지 않고 그 활용 분야를 넓혀가고 있다. <케니 샤프, 슈퍼팝 유니버스>展 에서는 미국 팝아트 작가 케니 샤프의 대표 작품 속 도넛과 핫도그를 화려한 색감의 슬라임으로 재현해 볼 수 있는 관람객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도 했다. 슬라임 만들기가 참여 예술의 한 부분으로 확대된 것이다.

 

슬라임, 그 안전성 논란에 대하여

슬라임은 그 뜨거운 인기만큼이나 많은 논란을 가져왔다. 인체 접촉도가 높은 슬라임에 대해 안전 문제가 대두된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이하 국표원)은 지난해 12월 12일 ‘어린이 제품안전 특별법’에 따른 완구 안전기준을 제정했다. 그 결과 올해부터 슬라임을 포함한 모든 완구에 대해 붕소 허용 기준이 유럽 기준과 동일한 300mg으로 제한되었다. 또한 작년 말 서울대 보건환경연구소와 보건대학원 연구팀은 시중에서 판매하는 슬라임을 분석해 12월 18일 한국환경보건학회지에 『슬라임 중 붕소 함량과 어린이의 붕소 노출량 추정』 논문을 냈다. 해당 논문은 위험 물질 분석 결과 시중에 파는 슬라임 30개 중 붕사를 쓰지 않은 5개의 수제 슬라임만이 유럽연합(EU) 유럽 환경청의 기준치를 초과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러한 논문의 연구 결과는 슬라임 불매 운동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이후 국표원은 정밀조사를 실시해 시중 유통 중인 190개의 슬라임 제품에 함유된 독성물질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이하 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이하 MIT)을 확인하고 기준치 이상을 포함한 제품에 대해 리콜 조치를 내렸다. CMIT, MIT는 많은 인명 피해를 가져온 가습기 살균제 사태 이후 지난해 2월부터 액체를 포함하는 완구류 및 학용품에 대해 전면적으로 사용이 금지된 물질이다. 국표원은 리콜 조치된 제품을 ‘위해(危害) 상품 판매차단시스템’에 등록해 전국 대형 유통매장과 온라인 쇼핑몰에서의 판매를 금지했다. 이러한 리콜 대란에 일부 국내 관련 업체에서는 자신들은 안전한 국산 제품만을 사용하는데 부정적인 정부 발표의 낙인 효과로 피해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또 일부 업체는 슬라임에 대한 안전성 확보를 위해 KC 마크를 획득했다는 사실을 광고함으로써 해당 문제에 대응했다.

한편, 유럽 환경청의 기준만을 따른 정부의 조치와 유럽 환경청의 기준이 타당성에 대한 고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다. 여전히 슬라임의 유해성 논란에 대해 여러 나라의 언론은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슬라임의 유해성 논란은 주로 유럽의 언론에서 시작되었는데, 해당 주장의 타당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지난해 11월 미국에서도 슬라임을 두고 국내와 비슷한 논란이 있었는데 이에 CNN을 비롯한 미국 언론은 화학 전문가의 의견을 빌려 슬라임에 사용되는 붕사를 독성이 낮은 화합물로 규정했다. 

또한 서울대 보건환경연구소의 논문에 과학적 오류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며 소비자들에게 더욱 혼란을 가져왔다. 논문에서는 슬라임에서 최대 2,278mg/kg의 붕소가 검출됐고 이는 EU 기준인 300mg/kg의 7배에 달한다고 밝혔으나, 연구진이 논문에서 언급한 EU 표준 문서(장난감안전기준)에 따르면 300mg/kg은 슬라임에 있는 붕소의 함량이 아니라 ‘입으로 삼켜 위 속에서 2시간 머물 때 위산에 의해 녹아 나올 수 있는 붕소의 양’에 대한 기준치로 확인된 것이다. 이를 다른 말로는 ‘용출량’이라고 하는데 논문에서는 슬라임의 붕소의 ‘함량’을 ‘용출량’ 기준에 잘못 대조한 것이다. 이에 국가기술표준원은 논문의 오류를 지적했고, 해당 논문을 게재했던 한국환경보건학회지 측도 재심의를 통해 논문 철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인터넷 매체를 타고 빠르게 인기를 얻은 슬라임의 안전 문제는 여전히 확실한 결론을 내지 못했고, 많은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가져왔다. 그러나 미국에서 아이가 슬라임을 갖고 놀다 손바닥에 화상을 입는 등 슬라임과 관련된 피해 사례가 나오고 있기에 슬라임 사용에 각별한 유의가 필요해 보인다. 특히나 슬라임은 피부에 직접 닿는 경우가 많기에 어린아이들이나 피부가 약한 사람의 경우 비닐장갑을 끼거나 너무 긴 시간동안 가지고 놀지 않는 등의 주의가 필요하다. 슬라임은 재미를 위해 탄생한 장난감인 만큼 유의사항을 숙지해 모두 즐거운 감각을 경험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이덕환, 『낯선 장난감의 어설픈 유해성 논란』, 문화의 안과 밖 에세이 시리즈.
사마키 다케오, 김정환 역, 『재밌어서 밤새읽는 화학 이야기』, 더숲, 2013.
pmg 지식엔진연구소,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조수연 기자  suyeon98@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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