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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는 거리의 법칙

코엑스 광장엔 사람이 없다

필자는 삼성동 코엑스에 갈 때마다 1층의 텅 빈 광장을 보면서 참 답답하다는 생각을 한다. 코엑스는 호텔, 백화점, 오피스타워, 공항터미널, 대형지하쇼핑몰, 컨벤션센터, 카지노가 합쳐져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종합단지이다. 하지만 이 많은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시너지를 일으켜야 하나 실상은 다 제각각이다. 따로 노는 건물들 사이에서 외부공간은 제대로 이용되지 못한 채 휑한 것이 마치 왕따 당한 듯 보인다. 

코엑스 앞 도로는 왕복 16차선으로 서울에서 가장 넓다. 그리고 지하철 삼성역과 테헤란로가 만나는 코엑스의 유동인구는 엄청나다. 건축에서 사람은 자원이다. 사람이 많이 온다는 것은 많은 이벤트가 형성되고 그 만큼 중심적인 ‘장소성’을 구축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건축가들이 아무리 무대를 만들고 연출을 하려고 해도 사람이 오지 않으면 그 공간은 죽은 공간이다. 결국에는 사람이 공간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삼성동 코엑스는 흔히들 말하는 “목이 좋은 곳”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의 코엑스에서 넘쳐나는 사람 에너지는 낭비되고 시너지 효과 또한 전무하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각자의 빌딩에 갇힌 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코엑스처럼 여러 개의 건물로 형성된 콤플렉스는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대형 공간에 모여 섞여야 한다. 아마도 원래 계획은 모든 사람들이 지하 쇼핑몰로 모여서 섞이도록 하는 의도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점이 의문이다. 햇볕 잘 들고 통풍 원활한 1층 광장을 두고 왜 굳이 지하실에 사람들을 모아 넣었을까? 

비슷한 실패 사례로 프랑스 파리의 라데팡스 광장을 들 수 있다. 파리 시는 도심 내에 고층건물을 금지하는 규제 때문에 사무공간이 부족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파리 외곽에 현대식 고층건물 단지를 형성했다. 건축가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모든 자동차는 지하차도로 통과하게 하고 지상 층에는 대형 광장을 만들었다. 하지만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자동차만 다니게 만든 지하차도는 어둡고 냄새나며 치안이 걱정되는 공간이 되었고 활주로 같은 대형 광장에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걸어 다닐 뿐이었다. 건축가는 대형 건축물과 광장이 있으면 광장이 붐빌 것으로 생각하고 계획안 속 투시도에 사람이 가득한 광장을 그려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광장은 유기적인 갯벌 같아야 한다.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없는 광장은 사막이 되기 십상이다. 파리의 라데팡스 광장이나 서울의 코엑스 광장은 상업의 생태계가 없는 광야일 뿐이다. 

지하쇼핑몰의 한계

코엑스 지하쇼핑몰에 들어가면 거미줄처럼 짜인 도로망에 일단 짜증부터 난다. 보통 외부인이 한 도시에 애착을 가지기 시작하는 시점은 그 도시의 도로망을 완전히 이해하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한다. 그 이유는 자신이 어느 지점에 있는지 인식이 안 되면 길을 잃는다는 공포감을 느끼게 되어 주변을 즐길 여유 없이 경계만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뉴욕은 전 세계 여러 인종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 어느 곳보다도 경계심을 느껴야 하는 도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열과 갈등 보다는 융합의 상징으로 유명하다. 그 배경에는 뉴욕이라는 도시가 갖는 그리드 구조가 한 몫을 하고 있다. 몇 번 스트리트에 몇 번 애비뉴라는 번지수만 있으면 처음 도시를 방문한 사람도 어디든 갈 수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쉬운 뉴욕의 주소체계가 새로이 이주한 사람이 쉽게 적응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드로 구획된  도시는 자칫 지루하기 쉽다. 그것을 막아주는 것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 같은 랜드마크와 센트럴 파크 같은 자연,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하나로 엮어주는 대각선의 브로드웨이다. 보스턴의 경우에는 뉴욕과 달리 오래된 도시여서 그리드가 아닌 복잡한 도로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보스턴은 존 핸콕 타워와 프루덴셜 빌딩이라는 두 개의 고층건물이 현재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특히 존 핸콕 타워의 경우에는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서 모양이 시시각각 변한다. 그것만으로도 내 위치가 어디쯤인지 어렴풋이 파악된다. 

역사가 수천 년에 달하는 유럽 도시의 도로망은 더 거미줄처럼 엮여 있다. 길을 잃기 십상이다. 하지만 로마나 파리에는 뉴욕보다 더 많은 랜드마크 건물과 조각상, 분수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도시 전체의 이미지를 풍성하게 해주는 이러한 방식이 길을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심을 가라앉도록 한다. 무엇보다도 햇볕이 잘 드는 길들이 연속된다. 이런 도시에서는 어느 골목길에서나 하늘을 볼 수 있고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다. 

반면 코엑스 광장의 복도는 지루하지 않도록 거미줄처럼 그려졌을지 모르나 우리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하늘이 아닌 2.7미터 높이에 있는 형광등이다. 멀리서 우리에게 이정표를 제시해 줄 높은 랜드마크도 없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사실 코엑스 여기저기에 랜드마크 건물들이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는 무역센터가 있다. 만약 코엑스의 몰이 지하에 있지 않고 적당히 하늘로 오픈되어있는 거리였다면 골목길 사이로 보이는 무역센터를 중심으로 거닐며 기분 좋게 차를 마시고 쇼핑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천장이라도 뚫었어야 한다. 코엑스 몰의 일부를 외부 공간으로 개방하자고 하는 제안에 혹자는 이렇게 답변할 것이다. “지상으로 나오면 겨울에는 추워서 장사가 잘 안되지 않을까요?” 일리 있는 말씀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적당한 온도에서만 쇼핑을 한다면 왜 서울의 명동이나 신사동의 가로수길 가게는 한여름과 한겨울에도 사람이 많을까? 날씨가 변한다는 것은 불편한 요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건축에서는 그 같은 변화를 다양성이라는 긍정적인 요소로 인식하기도 한다. 우리나라같이 4계절이 뚜렷한 지역은 일 년 365일 같은 날씨가 하나도 없다. 같은 거리라 하더라도 날씨에 따라서 다르게 느껴져 찾아갈 때마다 다른 얼굴의 거리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코엑스 몰에 가면 일 년 열두 달 같은 풍경이다. 상업가로에서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이다. 

한결같다는 것은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외부 공간의 장점과 실내 쇼핑몰의 장점을 모두 확보한 거리가 될 가능성은 없을까. 현재의 지하쇼핑몰을 그대로 두고서 중간 중간에 선큰가든(sunken garden:지하나 지하로 통하는 공간에 낮게 꾸민 정원)을 조성해 외부의 자연이 지하실로 들어갈 수 있게 해 주고, 지상층에 만들어진 광장과 쇼핑거리와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하면 된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보스턴에 있는 뉴베리 거리와 푸르덴셜 쇼핑몰이다. 뉴베리 거리는 역사가 깊은 옥외 거리다. 우리나라의 북촌이나 인사동 거리에 비유될 만하다. 그리고 그 거리에서 한 블록 떨어져서 평행하게 위치한 프루덴셜 쇼핑몰은 실내 공간으로서 몇 개의 호텔과 백화점이 연결되어 있다. 관광객들은 뉴베리 거리를 거닐다 비가 오거나 추우면 프루덴셜 쇼핑몰로 들어간다. 반대로 쇼핑몰에 있던 사람들이 답답하면 뉴베리 거리로 나와서 걷는다. 이 둘은 상호보완하며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우리가 코엑스 지상층에 이와 비슷한 거리를 만들어서 지하의 쇼핑몰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네트워크를 만든다면 서로 상생할 수 있을 것이다. 삼성동 한전 부지에 현대기아차 사옥이 들어온다고 한다. 이번 기회에 위와 같은 계획들이 함께 이루어지기를 소망해 본다.

유현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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