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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는 거리의 법칙

쇼핑몰 색깔

코엑스 쇼핑몰이 새단장을 하고 나서 이전보다 더 안 좋아진 부분 중 하나는 모두 백색으로 처리된 마감재일 것이다. 현재 코엑스 지하쇼핑몰에 들어서면 벽체, 천장, 바닥 모두 백색이다. 그 하얀 공간 안에 서 있으면 백색 타일 바닥 위의 바퀴벌레가 된 느낌처럼 불안하다. 지나치게 백색인 공간에서 드는 불안감은 무엇 때문일까?

대형교회일수록 더 부흥한다는 말이 있다. 다른 것은 배제하고 건축적인 이유만 살펴보자. 작은 교회는 기존 구성원이 적고 서로 잘 알고 지내기에 ‘새신자’는 즉시 눈에 띈다. 오는 즉시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기존 구성원들은 너도나도 다가와서 말을 걸고 챙겨준다. 그런 분위기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마치 백화점에 물건을 구경하러 슬쩍 들어갔는데 지나치게 친절한 종업원이 와서 따라다니면 물건을 사야한다는 부담감이 드는 것과 비슷하다. 반면 대형교회는 내가 왔는지 안 왔는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에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군중 속의 익명성이 편안한 자유를 준다. 그래서 대형교회는 더 부흥한다.

사람이 많이 모여드는 쇼핑몰에 가는 이유 중 하나는 군중 속에서 익명성을 가지고 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숨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훔쳐보는 관음증을 만족시키기도 한다. 관음증은 농업혁명 이전 수 만년 동안 수렵의 시기를 거치면서 형성된 사냥꾼의 본능이라고 추정된다. 안전을 위해서 자신을 은폐하고 주변을 살피는 본능이 현대에 와서 관음증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결국 우리는 군중 속에서 자신을 은폐하고 다른 사람과 물건을 구경하며 관음증을 충족하기 위해 쇼핑몰에 간다. 그러려면 주변에 내 몸을 숨길 색상과 재료가 많아야 한다. 그런데 코엑스 몰에 가면 백색의 배경만 있어서 어디에 숨기 어렵다. 자신이 너무 노출된 공간에서 사람들은 불편하다. 점차 안 가게 되고 그럴수록 공간이 비어 더 노출이 되고, 그러면 더 안 가게 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그림이 돋보이고 색상이 정확하게 대비되어야 하는 미술관이 아니라면, 사람이 모이는 공간은 어느 정도 내 몸을 숨길 만한 재료와 색상이 있는 것이 좋다. 

죽은 광장 살리기

유럽 광장의 성공에서는 두 가지 법칙을 발견할 수 있다. 랜드마크가 될 만한 건축물이 있거나, 혹은 광장 주변으로 가게들이 위치해 있어야 한다. 성 베드로 광장은 주변 가게는 적지만 워낙 유명한 랜드마크인 성 베드로 성당이 있고, 로마의 나보나 광장의 경우 대단한 성당은 없지만 주변의 가게가 활성화 되어있으며 무엇보다도 천재 조각가 베르니니가 조각한 4대강 분수를 비롯하여 총 세 개의 분수가 자리하고 있다. 판테온 앞 광장은 랜드마크 건축물과 주변 가게들이 조화를 이루며 적절한 규모로 활성화된 좋은 예시다. 

결국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것은 건축물이 아니라 장소다. 장소가 만들어지려면 사람이 모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사람이 모일 목적지가 될 만한 가게나 랜드마크 건물이 필요하고, 사람이 정주할 식당이나 카페가 필요한 것이다. 서울시는 세종로에 어렵게 광화문 광장을 만들었다. 하지만 정작 이 광장은 주로 시위자들만 사용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워낙 우리나라에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만한 공간이 없기에 생겨난 것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정치가의 눈이 아니라 건축 구조를 살피는 눈으로 보면, 광화문 광장이 시위의 장소가 되는 이유는 광화문 광장에서 마땅히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광화문 광장은 세종대왕상이나 광화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엔 적당한 장소이다. 하지만 바람 불고 자동차 소음 심한 그곳에서 증명사진 찍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일도 갈 곳도 없다. 특별한 거리를 만들려는 의도로 유럽처럼 돌포장을 한 도로는 자동차 소음을 더욱 크게 만들 뿐이다. 광장은 만들었지만 별다른 콘텐츠가 없는 빈 공간이기에 시위라는 행위가 채워지게 되는 것이다. 

넓은 공간을 가지고 있되 특별하게 할 일이 없었던 구조를 가진 공간이 또 있다. 예전 여의도 광장이 그랬고, 북경의 천안문 광장이 그렇다. 이 둘은 여유롭게 정주할 곳이 딱히 없이 넓기만 한 광장의 대표적인 곳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여의도에서 백만 명씩 모이는 정치 집회가 있었고, 천안문 광장에서는 그 유명한 천안문 시위가 열린 것이다. 우리나라는 여의도에 공원을 만들어 여의도 정치집회는 없어졌지만 이제는 시청 앞 광장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시청 앞 광장 역시 주변으로 차도만 지나가고 광장 주변으로 가게가 없는 곳이다. 그래서 행사 때마다 임시 매점 키오스크를 세워야한다. 우리나라의 광장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문제라기보다는 제대로 된 광장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혹자는 우리나라에 광장문화가 없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맞는 말일까? 예전에 장터가 열릴 때에는 사당패들이 공연을 열면 장을 보러 온 사람들이 구경하고 놀았었고, 김홍도의 그림을 보아도 씨름을 하면 주변에서 아이들이 엿도 파는 등 다양한 광장 문화가 발전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미루어보아 예전에는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던 광장이 자동차가 등장한 후 속도감 있는 도로로 분리되면서 광장이 없어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세종로 역시 과거 흑백기록사진을 보면 사람들이 광화문 해태상 앞 넓은 공간을 자유롭게 활보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산업화를 거치면서 전면이 경복궁으로 막힌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빈 땅이다 싶어 도로를 엄청나게 깐 결과 광화문 앞은 모두 지금과 같은 도로가 되었다. 제대로 도시계획을 했다면 광화문으로 큰 차선이 모이게 하지 않고 주변으로 우회하도록 하는 디자인을 했을 것이다. 그나마 최근 들어 차선 몇 개를 줄여서 광화문 광장을 복원했지만, 주변으로는 세종문화회관, 정부서울청사, 미 대사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을 비롯한 대형 건물들만 있다. 광화문 광장이나 코엑스 광장이 시민들에게 더욱 사랑받는 장소가 되려면 세종문화회관 앞과 미 대사관 앞길 1층에 앉아서 광장을 여유롭게 바라 볼 수 있는 식당이나 카페가 생겨야한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세종로는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처럼 바뀔 것이다. 

 

유현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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