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세상에 소소한 행복을 전하는

KBS PD 구상모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카메라를 통해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비추는 사람. 네모난 화면 속에 시청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담는 사람. 바로 ‘방송 PD’다. 여기 세상의 작은 변화를 꿈꾸는 PD가 있다. KBS 시사교양국에서 <우리가 태어난 곳>과 <문화빅뱅 더 콘서트>, <나를 따르라>, <걸어서 세계속으로> 등 다수의 교양 프로그램으로 소소한 행복을 전한 구상모 방송 PD를 만나보자.

 

Q. 현재 KBS 방송 PD로 일하고 있는데, PD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 철이 들고 난 뒤 막연히 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대학생 때는 언젠가 내가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될 줄 알았고, 방송국을 포함한 유명 기업에 입사한다는 것은 나 자신을 배신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내게도 돈은 필요했다. 결국 취업시즌 내내 갈팡질팡하다가 홍보 대행사에 들어가 취업에 성공했지만, 취업했다고 내 고민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런 과정에서 나는 타인의 시선을 이겨낼 만큼 강한 인간이 아니고 세상을 바꿀 만큼 엄청난 희생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여전했다. 그리고 내 안의 상반된 두 모습 사이에는 곧 방송국 PD가 있음을 깨달았다. 이후 회사를 그만두었고, 1년의 준비 끝에 방송국에 입사할 수 있었다.

 

Q. KBS에서 방영된 <우리가 태어난 곳>은 북한 이탈 청소년들의 대안학교인 여명학교를 배경으로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북한 이탈 청소년들이 낯선 타지에서 상처와 슬픔 속에서 단단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그려냈는데, 여명학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A. 이태원에 살 때였다. 전날 선배들과 술을 잔뜩 마시고 일어나 해장을 하려고 순댓국집에 갔다. 마침 식당에서 우연히 본 TV 프로그램에서 북한 이탈 주민을 다루었는데, 그들을 비추는 시각에서 꽤나 깊은 편견이 느껴져 불편했다.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공영방송인으로서 ‘나는 왜 한 번도 북한의 상황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었을까?’라는 죄책감을 안고 숟가락질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배에게 다큐멘터리 기획 제안을 받았는데, 우연히 봤던 그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바로 자료조사를 시작한 결과, 서울 한복판 남산 바로 아래에 위치한 여명학교를 발견했다. 학교에 찾아가 교실 책상 사이를 깔깔거리면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자 이곳에서 촬영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확고해져 촬영을 진행하게 되었다.

 

Q. <우리가 태어난 곳>은 약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여명학교의 생활을 담았다. 긴 시간 동안 촬영이 이어졌는데 촬영 기간에 어려움이나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

A. 탈북 과정에서 생긴 물리적인 상처부터 정착 과정에서 겪은 여러 가지 마음의 상처까지, 북한 이탈 주민 아이들에게는 상처가 많다. 특히 카메라가 아이들을 배신할 때가 많아 학교 선생님들도, 카메라를 드는 나도 이 부분을 가장 신경썼다. 아이들이 촬영을 허락했다고 해서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경계심까지 허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PD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카메라를 들어야 하는 직업이다. 그래서 항상 머릿속에서 ‘이 장면은 무조건 담아야지’라는 생각과 ‘혹시라도 상처가 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부딪혔다. 또한 내가 제대로 아이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인지, 선의로 포장해 오히려 아이들을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질문들을 제작 기간 내내 자신에게 던지며 성찰하고자 노력했다.

 

Q. <우리가 태어난 곳>이 방영된 지 1년이 지났다. 방영 후, 여명학교 학생들과 선생님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A. 북한 이탈 청소년이 자신이 북한 출생임을 언제, 어떻게 이야기할 것이냐는 관계 형성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우리가 태어난 곳>은 주인공 효정이가 대학을 다닐 때 방영됐는데, 당시 효정이가 북한에서 왔다는 걸 모르는 친구들이 있었다. 방송을 본 친구들은 효정이에게 먼저 다가와 인사를 하고 다독여 주었다고 한다. 다큐멘터리가 효정이와 친구들을 연결해주는 좋은 연결고리 역할을 한 것이다. 요즘은 아이들이 효정이에게 방송에 나왔던 예쁜 애는 어디 갔냐며 놀리기도 한다고 들었다.

이제 나에게 여명학교 사람들은 소중한 인연이다. 아이들과는 안부를 주고받고, 선생님과는 소주잔을 주고받는다. 평소 연락은 통 안하다가 뜬금없이 핸드폰 게임초대만 보내는 친구도 있는데, 그러면 내가 타박을 하며 안부를 묻는다. 아무것도 아닌 일일 수 있지만, 내게는 소중한 순간들이다. 아이들이 그만큼 나를 편하게 생각한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편히 말을 건넬 사람 한 명이 아이들에게 생겼다는 것도 꽤나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Q. 여행 프로그램 <걸어서 세계속으로>는 한 회당 한 여행지를 소개하는데, 한 회가 제작되는 자세한 과정이 궁금하다.

A. 프로그램의 처음부터 끝까지 PD 혼자 모든 것을 맡는다. 가장 먼저 어느 곳을 갈지 정하는데, 이때 피디마다 나라를 정하는 나름의 기준이 있다. 나는 직접 몸으로 체험하는 것을 좋아해 활동적인 여행이 가능한가를 우선 고려한다. 나라가 정해지면 출장 계획을 짠 후 출장 당일 카메라, 배터리, 노트북 등을 챙겨 홀로 여행을 떠난다. 촬영은 보통 2주 정도 진행되며, 그동안 PD가 직접 촬영한다. 물론 통역 등 현지 코디네이터의 도움도 받는다.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면, 구성과 동시에 편집을 한 후 자막을 넣는다. 자막을 넣은 영상이 나오면 거기에 맞춰 원고를 쓴다. 완성된 원고로 내레이션을 맡은 이광용 아나운서가 녹음을 한 후 영상, 자막, 내레이션을 모두 하나의 파일로 합치면, 한 회가 완성된다.

 

Q. 지난 3월 2일 <걸어서 세계속으로> 593회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특집이 방영되었다. 해당 특집에서의 여행은 다른 여행들과는 의미가 남달랐을 것 같은데, 제작 당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A.  <걸어서 세계속으로>는 여행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임시정부 100주년 특집을 진행하기에 알맞은 프로그램이라고 보긴 힘들다. 하지만 <걸어서 세계속으로>는 보통 평균 시청률이 7~8%가 나오는, 고정 시청자가 많은 프로그램이다. 이 때문에 임시정부의 역사와 독립 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자료를 찾다가 발견한 독립 운동가들의 일기들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우리는 보통 ‘독립 운동가’라고 하면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이미지만을 떠올리지만, 일기 속 독립 운동가들은 그 누구보다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다만 그들의 의지가 평범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어쩌면 새로운 시도였는데 다행히 내·외부의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셔서 개인적으로 뿌듯한 기획이다.

 

Q. PD로 활동을 하면서 가장 보람 있다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

A.  내 프로그램이 누군가를 즐겁게 할 때 보람을 느낀다. ‘누군가’는 시청자일 수도 있고, 내가 촬영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6시 내고향>을 맡았을 때, 시골에 있는 오래된 이발소를 찾아간 적이 있다. 촬영을 하러 가니 그곳의 할머니는 나를 당신의 손자처럼 반기셨다. 물론 내가 그곳에 할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간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해 월급을 받고 일하러 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나의 발걸음을 기다리고 그 발걸음에 행복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진심으로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얼마 뒤에 한 시청자가 방송을 보고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잘랐다는 사연을 들었다. 그곳을 찾아가셨던 분도, 그분을 맞이한 할머니도 모두 행복해 하셨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이 일을 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과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솟아오른다.

 

Q. 마지막으로 방송 PD를 꿈꾸는 본교 학생들에게 해줄 말이 있는가?

A. 자신의 진짜 욕망과 마주하는 게 필요하다. 바라보기 싫은 자신의 민낯과 마주해야한다. 스스로에게 왜 PD가 되고 싶은지 가혹하리만치 질문을 던졌으면 좋겠다. 아니, 그래야 한다. 직업의 선택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상 만들기를 좋아해서 PD가 되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왜 PD인가? 최근에는 유튜브 제작 같은 다른 길이 열리면서 영상을 다루는 직업이 수없이 많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왜 PD가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영상을 좋아해요’라는 대답보다 훨씬 더 깊이 있는 이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PD라는 직업에 투영된 자신의 진짜 욕망을 마주하고 그것이 진짜 나의 것인지 고민해야 나중에 후회가 없다. 이는 PD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청년들이 내가 이 직업을 왜 원하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었으면 좋겠다.

SNS 기사보내기

저작권자 © 홍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기사

하단영역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