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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은 균열일터 노동자입니다기업과 노동자, 그들의 좁힐 수 없는 간극에 대하여

빈센트 스미스라는 29세 남성은 허쉬(Hershey Company) 초콜릿 생산공장에서 일하다 발을 헛딛는 바람에 초콜릿 용해탱크 속으로 떨어졌다. 통이 너무 깊어 동료들이 바로 꺼내지 못하고 소방관을 기다리며 10분을 흘려버리는 사이 그는 사망했다. 감사 결과 작업상 여러 건의 보건안전 위반이 드러났지만 허쉬는 이 사건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자신들과 무관한 하청업체 소관이었으니까. - 『균열일터 당신을 위한 회사는 없다』 中

대기업은 더 이상 일선 직원들의 고용주 역할을 하지 않는다. 기업이 핵심역량 개발에만 몰두하는 동안 고용 및 서비스, 상품 제조 등을 담당하는 노동현장에는 깊은 균열이 발생했으며 그 안에서 노동자들은 위태로운 입지와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비즈니스 핵심역량에 초점을 맞추려는 기업들의 대대적인 움직임과 함께 노동자들의 노동현장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197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점차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져가고 있다. 이에 노동자들은 소속감을 잃은 채 위험을 감수하고 열악한 작업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 우리는 이곳을 ‘균열일터’라고 부른다.

어느 날 일터에 균열이 생기다

미국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와일(David Weil)은 기업이 고용 업무를 분리함으로써 노동자에게 임금, 복지, 고용안정, 최저임금, 초과수당 등을 제공하지 않는 구조조정의 시대를 ‘균열일터’라고 정의했다. 고용주와 노동자로 엄격히 분리되던 전통적 고용의 가치가 사라지고 하청이 또 다른 하청을 낳으며 끊임없이 분리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하청사회에서 노동자의 개념은 ‘상품 생산을 하는 임금 노동자’라는 통념을 넘어 그 범위를 확장하게 된다. 상품을 생산하는 과정이 복잡한 분업을 통해 이루어지는 오늘날, 어떤 노동자들은 직접 최종생산물을 생산하지 않지만 그 전제 조건이 되는 많은 노동을 담당한다. 예컨대 운수 노동자가 물건을 생산지에서 소비자에게운반하는 일이 생산 과정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현재 ‘노동자’는 재화뿐만 아니라 일부 서비스를 생산하는 노동자들, 상품을 생산하기 위한 복잡한 분업에 육체적·정신적 노동을 담당하는 사람들을 모두 포함한다.

대기업에서 뿌리내린 회사들로부터 또 다른 노동의 분화가 생기고, 이로 인해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권리가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 현장은 ‘균열일터’로 정의되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 노동현장의 ‘균열’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이는 현대 자본시장의 거센 압력에 대한 대응의 결과물로 해석할 수 있다. 대부분의 고용주가 인건비와 그에 따른 책무를 소규모 비정규인력 조달회사나 제3의 인력중개업체로 전가함으로써 사회적 지불 의무를 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을 독립계약자로 분류해 산업재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도 있다. 첨단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을 균열 발생의 원인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들은 기술의 진보로 비즈니즈 거래 비용이 하락하며 상대적으로 부차적인 활동이 기업의 핵심 업무에서 떨어져 나갔다고 분석한다.

고용 관계의 분할과 노동과정의 파편화에 따른 균열일터 발생의 구체적인 요인들을 찾아보자. 먼저 기업의 비즈니스 핵심역량 집중 등 수익창출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면, 청소·경비·경리·인사 등을 외부 계약업체로 넘겨 필수 전략에만 초점을 두고자 하는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또한 고용 업무가 중소영세기업으로 분산되는 과정에서 대기업은 ‘고용 털어버리기’를 시도하는데, 대기업이 통상 제공하던 높은 임금과 복지혜택, 각종 근로규정 엄수 의무를 하청 업체의 책임으로 ‘털어버리는’ 것이다. 가령 현대자동차의 판매영업소에 근무하는 노동자는 300명 미만 규모의 영업소인 경우 중소업체 노동자로 분류된다. 은행 지점이나 기업 지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실제로는 대기업이나 공공부문 소속인데도 중소영세업체 노동자로 분류되며 대기업 복지의 사각지대에 위치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균열일터의 발생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노동의 분화와 노동현장의 분업화를 통해 핵심역량을 쥐고 있는 업계 선두기업들은 수익성을 높일 수 있었다. 그런데 기업이 외부화 하는 업무 중에는 숙련 기술을 요하는 것도 많은데, 기업 내부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하는 업무와 비슷한 업무에 비정규직 하청 노동력을 활용하는 경우도 흔하다. 다만 노동조건의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짐으로써 하위 하청업체들은 임금과 복지혜택 감소 등의 압력을 감당하게 되었다. 이는 결국 노동의 불안정화로 이어졌다. 균열일터가 고용과 근무조건에 대한 논의를 넘어 경제 기능에 미치는 영향력이 점차 커지며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노동 현장의 또 다른 이름, ‘하청사회’

‘하청’이란 수급인이 맡은 일의 전부나 일부를 제삼자인 하수급인이 맡는 것으로, 이 개념을 활용한 ‘하청사회’라는 단어는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간 생산 분업 관계로 자리 잡은 노동 현장 전반을 뜻하는 합성어이다. 이전부터 존재한 하청사회는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현상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는 유독 ‘을’인 하청업체가 원청업체 ‘갑’의 온갖 부당한 요구를 감당해야하는 상황이 두드러진다. 갑과 을은 계약거래 당사자 양쪽을 일컫는 명칭일 뿐이나 일거리를 주는 원청(갑)은 사회적 부를 누리는 반면, 하청(을)은 더 많은 희생을 감당하기 때문이다. 맨 위의 잔에 와인(소득)을 부으면 모든 잔에 와인이 떨어지는 ‘낙수효과’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와인은 맨 위 잔에만 남아있고, 아래의 빈 잔을 채우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인력과 노동이 필요해질 뿐이다. 양극화가 심화된 우리나라의 하청사회는 갑이 부와 이익을 챙기고 마땅히 책임져야 할 의무는 대폭 줄어드는 반면 을이 모든 고통과 희생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균열일터’에 희생된 청년들, 그들이 남긴 컵라면

‘균열’을 알려준 사건: 구의역 사망사고

故김모 군(사고 당시 19세)은 서울메트로(현 서울교통공사)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업무 위탁 하청업체 은성PSD의 계약직 직원이었다. 2016년 5월 28일(토) 오후 4시 58분, 김 군은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고장 신고가 접수되자 구의역으로 향했다. 오후 5시 52분, 고장 신고가 들어온 구의역 스크린도어에 김 군이 도착해 홀로 작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때, 구의역에서 약 9정거장 떨어진(지하철로 약 20분 거리) 을지로4가역에서 오후 5시 20분에 스크린도어 고장 신고가 접수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당시 서울메트로와 은성PSD 정비 기사는 고장 신고 접수 1시간 이내에 현장에 도착해야 한다는 계약을 체결한 상태였다. 이 때문에 을지로4가역에 오후 6시 20분까지는 정비 기사가 도착해야 했다. 스크린도어 점검업무는 2인 1조로 진행해야 한다는 매뉴얼이 있어 다른 직원이 구의역에 올 때까지 기다린 후 작업을 진행하면 을지로4가역의 도착 시각이 30분 이상 지연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김 군은 단독으로 작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했고, 오후 5시 55분 스크린도어 뒤편으로 가 수리를 시작했다. 그러나 오후 5시 57분, 그는 스크린도어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작업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전동차가 승강장에 진입하면서 김 군이 스크린도어와 전동차 사이에 끼어 즉사한 것이다. 숨진 김 군의 가방 속에 남아있던, 미처 뜯지 못한 컵라면은 끼니조차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는 노동자의 현실을 보여주며 안타까움을 더했다.

서울메트로는 구의역 사고 발생 4년 전부터 유사 사고가 지속해서 발생했음에도 사고 때마다 “무리하게 작업을 한 비정규직 근로자 개인의 책임이 크다”라며 책임을 회피해왔다. 그러나 근로자들이 무리한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제공한 것은 다름 아닌, 원청업체인 서울메트로였다. 서울메트로의 스크린도어 점검 업무를 수주한 하청업체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극도로 인력을 축소한 상태로 계약을 맺어 2인 1조 점검 매뉴얼을 준수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실제로 사고가 발생한 2호선은 50개에 달하는 역을 평일에는 6명, 공휴일에는 5명만이 담당하는 등 인력 부족 문제가 심각했다. 또한 앞서 언급된 ‘신고접수 1시간 내 현장 도착’ 계약도 인력 부족으로 인한 문제를 악화시켰다. 구의역 사건에서 김 씨가 단독작업을 한 이유도 해당 계약을 준수하기 위해서였다.

안전 업무의 외주화 과정에도 문제가 있었다. 김 군이 일하던 하청업체 은성PSD는 대부분의 직원이 서울메트로 퇴직자들로 구성된 회사로, 이들은 하청업체의 임원직으로 고용보장도 받을 뿐더러 서울메트로로부터 임금과 복리후생까지도 보장받았다. 그러나 용역을 따내기 위해 최저입찰가로 하청을 받으면서 서울메트로 출신을 제외한 다른 직원들의 인건비는 낮게 책정했고, 이는 서울메트로 출신과 비(非)서울메트로 출신 직원 사이의 월급 격차가 2배 가까이 벌어지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결국 서울메트로는 독점적 특혜를 통해 이익을 추구하려는 이른바 ‘지대추구행위’에 하청업체를 이용했고, 김 군이 그 희생양이 된 것이다.

알고 있었지만…고치지 못했다: 태안화력발전소 사망사고

故김용균 씨(사고 당시 24세)는 공기업인 한국서부발전이 운영하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KEPS)의 계약직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의 주요 업무는 4조 2교대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발전소의 발전기 순찰이었지만, 컨베이어벨트에서 바닥으로 떨어진 ‘낙탄(落炭)’을 삽으로 퍼내는 일도 해야 했다. 한국발전기술의 하청을 받은 낙탄 처리 업무 담당인 재하청업체가 있었지만, 인력 부족으로 김 씨를 포함한 한국발전기술 직원들이 해당 업무까지 도맡아야 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정비 업무를 겸하여 기기 이상까지 점검해야 했다. 2018년 12월 11일(화) 새벽, 김용균 씨는 여느 때처럼 순찰을 하며 기기를 점검하고 있었다. 그러나 몇 시간이 지난 뒤 그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석탄 이송용 컨베이어 벨트의 롤러를 정비하려다 벨트에 몸이 끼면서 변을 당한 것이다.

‘멈출 수 없는’ 컨베이어 벨트는 소중한 청년의 목숨을 앗아갔다. 주간지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그의 동료들은 “웬만큼 큰 고장이 아니면 정비를 위해 컨베이어 벨트를 멈출 수는 없다”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라인을 멈추면 그만큼 업무량을 채우지 못해 다음 교대조의 업무로 전가되다 보니 이를 섣불리 멈출 수 없었던 것이다. 부적합한 설비 설계도 김용균 씨의 죽음에 영향을 줬다. 컨베이어 벨트에 발생한 문제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직접 컨베이어 벨트 아래에 머리를 들이밀고 확인해야 해 안전거리가 확보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김용균 씨가 근무하던 새벽에는 조명이 약해 낮보다 더 가까이에서 기계를 확인해야만 했다. 이미 지난해(2018년) 김용균 씨의 동료 노동자들이 해당 설비를 안전한 것으로 교체해달라는 요구를 수차례 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외에도 해당 사건에서는 원청인 한국서부전력의 관리자가 하청노동자인 한국발전기술 노동자에게 직접 업무지시를 하는 이른바 ‘불법파견’ 정황도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원청이 정규직을 직접 고용하여 시행해야 하는 업무를 하청업체 노동자에게 맡긴 것으로 알려져 일각에서는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어긴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뒤늦은, 반쪽짜리 개정: ‘김용균법’ 통과 

▲ 2018년 12월 28일(금) 국회 산안법 개정에 대한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의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故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발언하는 모습 (출처: 연합뉴스)

故김용균 씨의 죽음이 알려진 후, 사회 각계에서는 하청업체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지난해 12월 27일(목) 산업안전보건법(일명 ‘김용균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고, 오는 2020년 1월 16일(목)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위험의 외주화 방지를 위한 도급 제한 △도급인 산업재해 예방 조치 의무 확대 △안전조치 위반 사업주 처벌 강화 △법의 보호 대상 확대 △대표이사의 안전 및 보건에 관한 계획 수립의무 신설 등이다. 이 중 ‘법의 보호 대상 확대’는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 대상자를 기존의 ‘근로자’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확대해, 특수형태근로종사자와 배달종사자, 가맹사업자 소속 근로자 등도 산업안전보건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사실 산업안전보건법은 2016년 구의역 사고로 그 필요성이 대두되어 관련 개정안들이 다수 발의됐지만, 기업들의 반발로 2년 동안 국회에서 계류 중이었다. 김용균 씨라는 또 하나의 희생자가 생긴 뒤에야 비로소 빛을 보게 된 것이다. 하지만 김용균 씨의 동료들, 구의역 사고의 김 군과 동일한 일을 하는 이들에게는 이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들은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적용대상인 9개 직종의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및 가맹사업자 소속 근로자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해당 법 개정의 필요성을 알려준 두 노동자의 직종을 법안이 돌보지 못한다는 모순이 생겼다. 배달노동자의 경우에도 이륜차를 제외한 수단으로 배달을 하는 경우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이에 일각에서는 적용 범위를 애매하게 늘리기보다는 노동자 안전을 위한 실질적인 보호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노동자의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2019년 현재, 균열일터에서 발생하는 사건은 얼마나 될까? 포털사이트에 ‘하청’을 검색하기만 해도 우리가 모르는 새 꽤 많은 사건이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CJ 대한통운의 하청업체 노동자 손가락 절단’, ‘GS건설의 하청업체 노동자 3명 추락해 사망’, ‘NI스틸 당진공장서 20대 노동자 사망’. 놀랍게도 지난 한 달 동안 일어난 사건들이다. 아무도 모르게 ‘위험의 외주화’는 반복되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균열일터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당신이 모르고 지나치는 수많은 균열들에 대해 알아보자.

먼저 청소경비 용역 노동자들의 일터이다. 일반적으로 청소경비 용역 노동자 대다수의 임금은 낮은 편이며 복지혜택 범위도 매우 제한적이다. 노동환경 또한 부상과 질병에 노출되기 쉽고 고용 안정성도 매우 취약하다. 또한 청소경비 용역서비스 부문은 근로기준 위반 리스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해당 업계 및 직종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식사 시간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며, 추가 근무에 대한 보상도 정상적으로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이 멀게만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본교 청소·경비 노동자들을 살펴보자. 

이들은 현재 ‘하청의 하청의 하청’ 형태로 근로 중이다. 본교는 KT텔레캅을, KT텔레캅은 굿모닝대양을 하청업체로 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본교 소속 청소경비 노동자들은 학교 소속이지만 직접적인 계약은 학교의 하청의 하청인 굿모닝대양과 맺은 상황인 것이다. 이렇게 불명확한 관계 때문에 본교 노동조합은 올해 초 임금과 근무시간에 대한 교섭을 정상적으로 진행하지 못했다. 또한 작년 여름 본교 노동자들은 냉방시설 부족으로 불만을 호소했지만 학교와 하청업체들은 서로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며 책임을 회피했다. ‘낙동강 오리알’이라는 관용구가 잘 들어맞는 상황이다.

또 다른 균열도 우리 가까이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청 구조의 맨 아래 단계에 피고용인이 아닌, 소위 독립계약자들이 존재하는 경우이다. 본래 독립 계약은 합법적 형태의 비즈니스 조직으로서, 특정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자체적으로 사업을 통제하고 다수의 고객을 관리하되 고객 요청에 자유롭게 응하거나 거부할 수 있으며 자체 장비와 도구,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하청 모델 맨 밑에 놓인 독립 계약은 이름뿐인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시가 배달대행업체이다.

1인 가구가 많은 대학동 고시촌에는 많은 배달대행업체회사가 존재한다. ‘배달의 ○○’이 적혀있는 오토바이를 탄 라이더들은 지금도 오르막길을 힘들게 달리고 있다. 대학동 고시촌의 수많은 라이더들 중 일부를 만나봤다. 

 

“배달의 민족 같은 큰 회사는 보험적용 되는데, 우리는 쉽지 않아요.”

“주변 동료들이 어느 날 그만둬서 사라지곤 해요.”

“일하면서 밥은 항상 근처에서 사 먹어요. 근데 신문에 나가요?”

 

음식을 받는 짧은 시간동안 나눴던 대화에서 그들의 근무 상황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지난 19일(화) 대리운전, 퀵서비스, 배달서비스 같은 플랫폼노동자*들의 사회안전망을 확보하기 위해 플랫폼노동연대가 출범했다. 이들은 “개인사업자로 분류되는 플랫폼노동자는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며 “4대 보험 적용과 적정 근로시간과 임금 적용을 위한 제도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플랫폼노동자: 앱, SNS 등 디지털 플랫폼에서 노동력이 거래되는 근로 형태. 배달대행 앱, 대리운전 앱, 우버 택시 등이 이에 속한다.

 
 
멀기만 한 ‘갑’과 ‘을’의 간극,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현대 사회는 원청인 ‘갑’ 아래에 하청인 ‘을’, 하청의 하청인 ‘병’까지 낳았다. 이들 사이에 벌어진 균열은 점점 커졌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균열의 틈새 아래로 떨어져 버렸다. 그렇다면 더는 이들의 회복을 기대할 수 없는 지경에 놓인 것일까? 본지는 『하청사회』(2017)와 『갑의 횡포, 을의 일터』(2018)의 저자 양정호 작가와 우리 사회의 균열일터와 해결방안에 대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Q. 하청제도는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유독 우리나라만 ‘갑’인 원청과 ‘을’인 하청업체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하청제도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A. 하청은 일거리를 나눈다는 점에서 긍정적지만, 나누는 방법이 인간적이지 못하면 서로 괴로운 관계가 된다. 현대 사회는 한 기업이 핵심역량이 아닌 업무를 다른 업체에 위탁이나 도급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위탁을 바라는 업체 수가 많을수록, 일을 맡긴 기업의 영향력은 커지고 원·하청 간에 서열 관계가 형성된다. 결국 필요에 의해 일을 나눈다는 계약의 명분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IMF를 지나며 금리 인상 등의 긴축정책으로 인해 서열과 경쟁의 문화가 강화됐다. 법적, 윤리 및 도덕적 가치를 효율성이라는 경제적 가치 하위에 두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원청이 하청기업을 어떻게 다루든 우위 서열에 있고, 부당한 일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됐다.
 
Q. 그간 균열일터는 우리 사회 속에서 드러나지 않다가 최근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A. 도급이나 위탁 같은 간접고용관계는 오늘날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이전부터 존재해왔지만, IMF 사태가 있기 전까지는 우리나라 경제가 비교적 호황기로 성장 위주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균열일터가 부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경제성장이 한계 상황에 닥치며 신(新)경제 체제로 노선을 바꾸게 되었다. 우리나라 역시 경영계에서 신자유주의 체제를 받아들이면서 핵심역량 외 모든 업무를 하청이나 외주에 주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이와 동시에 원청이 책임지기 꺼리는 분야 또한 자연스럽게 외주업체가 맡게 되었다. 사망사고와 같은 중대재해가 외주업체에서 발생하더라도 원청업체의 책임 없이 외주업체의 사고 건으로 처리하게끔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원청은 무분별하게 업종이나 업종의 위험도 등을 고려하지 않고 하청업체에 일을 떠맡길 수 있었고, 이로 인해 균열일터가 수면 위로 오른 것이다.
 
Q. 현재 우리나라 노동법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A.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노동법 중 가장 설계가 잘 된 법은 근로기준법이며 가장 규정이 잘 적용되고 있는 법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적용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법 또한 가장 설계가 잘된 근로기준법이다. 근로기준법에는 사업주의 의무가 많은데 그 의무가 지켜지지 않으면 아무런 효용가치가 없다. 이러한 의무 준수를 강화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나온 것이다. 개정안에는 현실적이라고 생각되는 부분들도 있지만, 의무 위주의 법 명문화는 사전 예방보다는 사후 조치의 성격이 강하며 근로기준법처럼 사업주가 그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는 건설현장 내의 하도급업체 소속 노동자가 사고를 당하면 원청업체 소속의 노동자로 간주해 산재사고를 처리하고 있다. 해당 법은 나름의 사고예방 역할을 하고 있지만, 건설업 이외의 업종에서는 하청업체에서 산재 사고의 책임을 떠맡고 있다. 사망사고와 같은 중대재해만큼은 원청업체에서 책임을 진다면 원청이 하청의 안전사고에 대해 엄격히 관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이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Q. 균열일터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에는 무엇이 있는가? 
A. 현재 대기업에서 행해지는 고용과 책임의 회피 경향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대세를 거스를 수 있는 방안을 찾기보다는 대세를 합리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그 누구보다 경쟁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갑의 위치에 있으면 을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균열일터가 성행하는 사회는 인간의 인정 욕구를 활용해 ‘을’ 간의 경쟁을 부추긴다. 이러한 시스템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변화해 가는 사회를 의식하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곧 불합리한 갑의 횡포를 견제할 수 있는 작은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작은 힘들이 모이는 과정에서 ‘갑’과 ‘을’간의 비대칭적인 힘의 균형이 평평해질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우리에게 큰 힘이 될 순간을 위해
 
‘김용균법’ 개정 결정 후, 노동자들의 근로 환경은 얼마나 변화했을까? 안타깝게도 개정 후 연달아 발생한 하청업체 사고 기사를 보며 그 변화가 미미한 정도에 그쳤음을 알 수 있다. 태안화력발전소는 최근 3년 동안 4건의 사고로 노동자 4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피해 노동자들이 모두 하청업체 소속이라는 이유로 보상받지 못하였으며 심지어 같은 기간 정부로부터 ‘무재해 사업자 인증’까지 받았다. 
균열일터는 비단 열악한 노동현장 속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불합리한 조건에서 노동에 임하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그를 지탱하게 하는 수많은 사회적 관계망이 균열일터의 영향력 안에 있기 때문이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회 구조 안에는 우리 모두의 삶이 담겨있다. 더 이상 균열일터의 틈새로 빠지는 피해자가 생기지 않으려면 원청과 하청의 요구를 모두 수용한 실질적인 법안의 마련과 함께 그들의 이야기에 주목하고 관심을 가지는 시선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 안정적인 노동 구조가 정착하는 최후의 순간을 위하여, 모든 이의 관심이 어느 때 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이산희 기자(ddhh1215@mail.hongik.ac.kr)
김주영 기자(B881029@mail.hongik.ac.kr)
박성준 기자(gooood82@mail.hongik.ac.kr)
우시윤 기자(woosy0810@mail.hongik.ac.kr)
 
[참고문헌]
김하영, 『오늘날 한국의 노동계급』, 책갈피, 2017.
데이비드 와일, 『균열일터 당신을 위한 회사는 없다』, 황소자리, 2015.
이상원, 「특수고용직 노동자는 유령이 아니다」, 월간 한국노총, 2013.
이승윤·김은지·박고은, 「한국 사회안전망 밖의 하청노동자 : 울산지역 조선업 하청노동자 사례를 중심으로」, 사회복지정책, 2017.
『시사IN』, 전혜원, 나경희,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 ‘죽음의 라인’을 탄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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