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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동 가로수길

뜨는 거리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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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간 소위 가장 ‘뜬’ 거리는 신사동 가로수길인 듯하다. 가로수길은 십 년 전만 하더라도 별로 유명하지 않은 갤러리 몇 곳이 있는, 압구정동에서 그닥 잘 나가진 못하는 거리였다. 1992년부터 시작된 오렌지족 열풍으로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가 각광받을 당시에도 신사동 가로수길은 변두리에 불과했다. 그러던 가로수길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면 ‘뜨는’ 거리의 법칙을 알 수 있다. 

신사동 가로수길은 이름처럼 가로수가 아름답게 줄지어 있는 거리도 아니고, 인도 폭도 좁아서 걷기도 어려운 거리이다. 그런 가로수길이 보행자들이 즐겨 찾는 거리로 변화한 이유로는 두 가지 요소를 들 수 있다. 하나는 지하철 3호선 신사역이고 다른 하나는 한강 고수부지 공원이다. 대중교통 정류장과 자연, 이 두 요소를 연결하는 길은 사람들이 걷기 좋아하는 거리가 된다.

미국에서 가장 고풍스러운 고급 쇼핑가로는 보스턴의 뉴베리 거리가 유명하다. 뉴베리 거리 서쪽 끝에는 지하철 역이 있고 동쪽 끝에는 보스턴 커먼이라는 도심형 공원이 있다. 뉴베리 거리는 원래 주택가였다가 지하철 개발 이후 화랑과 각종 명품 전문점이 들어선 쇼핑 거리가 되었다. 지하철 출구에서는 인파가 쏟아져 나오고, 사람들은 공원을 향해 걸어가며 번화가를 즐긴다. 보통 가고 싶은 목적지가 없이 걷는 사람들은 피곤하다. 하지만 쉴 수 있는 공원을 향해서 걷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신사동 가로수길의 변화에는 한강 고수부지로 들어가는 토끼굴의 위치가 가로수길과 같은 축선에 옮겨지게 된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기존의 토끼굴은 미성아파트 뒤편에 있어서 동네 아파트 주민들만 아는 굴이었다. 그런데 토끼굴이 가로수길에서 연결된 축선상의 도로로 확장 이동한 후, 가로수길을 걷던 시민들은 차도 옆으로 난 인도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고수부지로 오갈 수 있게 되었다. 

저녁시간에는 데이트를 하는 연인들이 끊임없이 가로수길과 고수부지를 오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걸어오는 사람들은 신사역에서 내려 가로수길에서 식사를 하고 쇼핑도 한 후 고수부지에 가서 쉬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자동차를 가지고 오는 데이트 족들은 고수부지에 차를 세우고 가로수길로 걸어간다. 신사동 가로수길의 경우처럼 자연과 대중교통, 이 두 가지 요소를 연결하는 거리는 사람들이 찾는 좋은 거리가 된다. 토끼굴의 위치를 몇 십 미터 옮기는 계획은 아주 작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정확한 혈맥에 놓으면 숨넘어가는 환자도 살리는 명의의 침처럼 가로수길의 기의 순환을 살리는 신의 한수였다.  

 

세운상가와 샹젤리제: 건축가들이 흔히 하는 두 가지 실수

세운상가는 1966년 김현옥 14대 서울시장 시절, 윤락업소가 난무하던 종로와 퇴계로 일대를 재개발하며 종로 3가와 퇴계로 3가를 공중보도로 연결한 주상복합건물이다. 상층의 주거시설에는 한때 교수, 연예인, 고위공직자들이 입주하고 국내유일의 종합가전제품 상가도 위치했던 곳이다. 하지만 강남개발 이후 사람들이 떠나고 전자제품관련 업종은 용산전자상가로 이전하면서 현재는 슬럼화되고 있다. 

필자 세대에게 세운상가는 전자부품을 사서 간단한 납땜으로 무전기나 라디오를 만들 수 있는 키트를 사던 곳, 혹은 음란서적들을 팔던 곳으로 기억된다. 필자는 감히 세운상가까지는 못가고 ‘용기 있는’ 친구가 사온 음란서적을 학교에서 빌려 본 기억이 있다. 이렇듯 남학생들에게 세운상가는 한때 성교육 서적의 메카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세운상가에 발길을 끊은 이유로 보통 예상치 못한 도시개발 등을 꼽지만, 그 안에는 건축가들이 흔히 하는 두 가지 실수가 숨겨져 있다.

먼저는 공중보도 조성이었다. 세운상가를 설계하신 김수근 선생님은 공중보도를 거닐며 서울의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거리를 만들겠다는 취지로 건축을 시작하셨다. 하지만 공중보도가 활성화되면 지상의 도로가 죽게 되고, 반대로 지상의 도로가 활성화되면 공중보도가 죽게 된다. 두 개의 도로를 경쟁하게 만드는 디자인은 두 거리 중 하나가 쇠퇴하게 되는 문제를 안고 있다. 둘째는 도심 축 선상에 건축물을 만든 점이다. 건축가들의 흔한 실수 중 하나는 중요한 축을 발견하면 그 축 위를 따라서 건물을 짓는 것이다. 세운상가가 그랬다. 중요한 축이 있다면 그 축을 따라서 비어있는 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 대표적인 성공사례가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이다. 샹젤리제는 오스만 시장이 파리를 리모델링하면서 만든 거리다. 샹젤리제 거리를 따라서 걸으면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과거 왕궁이었던 루브르박물관부터 시작해서 나폴레옹이 만든 개선문과 신도시 라데팡스까지 따라간다. 이 역사의 축을 따라 비워진 공간은 사람들을 서로 연결한다. 만약에 그 축 선상에 세운상가처럼 건축물을 만들었다면 시각적 연결이 막히게 된다. 시각적 연결이 없으면 아무런 관계도 남지 않는다. 관계가 사라진 도시는 단절된 부분 부분만 쌓여있는, 정신없는 건물들의 ‘더미’가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과거 오세훈 시장 시절 세운상가를 철거해서 종묘와 남산을 연결하는 녹지축을 만들겠다는 계획은 도시적 스케일에서 상당히 설득력 있는 안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근대건축문화유산인 세운상가를 보존하려는 건축적 스케일의 논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이 국제적인 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한 큰 그림을 그리는 차원에서 진행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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